북, 외국인에 환전거부·카드결제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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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당국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환전을 거부하는 대신 현금결제카드에 입금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은 시장보다 무려 80배 이상 높은 환율을 적용 받아 현금결제카드에 돈을 입금하고, 이 카드만 사용해야 했는데요,

"특별한 환율을 적용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제안한 뒤 전자결제만 허용한 이중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외화를 가진 사람을 표적으로 외화를 회수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늘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북한 당국이 외국인 관광객의 자유로운 환전을 규제하면서 북한 내부에 유입되는 외화를 거둬들이는 또 하나의 외화벌이 사업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와 함께 <지금, 북한에서는> 시간으로 꾸며봅니다.

- 북 방문한 중국인데 북한 돈 환전 거부

- 대신 현금결제카드(나래카드)에 입금․결제 추천

- 1유로에 118원․1달러에 107원, 시장 환율과 80배 차이

- 외국인, 카드결제만 할 수 있는 장소․일정 안내

- 사정 아는 외국 주재원들은 암시장에서 환전

지난 5월, 북한 평양을 방문했던 중국인 관광객은 북한을 여행할 때 필요한 북한 지폐로 환전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당했습니다. 대신 북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나래카드', 즉 현금결제카드에 외화를 입금해야만 했는데요,

중국인 관광객은 식사를 하거나 물품을 구매할 때, 또 택시를 이용할 때 등에서 모두 '나래카드'로 요금을 지급했습니다. 물론 같은 서비스를 이용한 북한 주민도 '나래카드'를 사용했는데요,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북한을 방문한 모든 여행자들이 자신이 소지한 외화 사용도 가능하지만, 북한에서 발급하는 현금카드에 입금할 것을 추천받고 있다고 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습니다.

실제로 '아시아프레스'가 제공한 '카드입금증'과 '카드계산서'를 살펴봤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동강3식당', '고려심청회사', '고려호텔' 등에서 현금을 나래카드에 입금했는데요, 30유로를 입금하니 북한 돈으로 3천543.6원이 환전됩니다. 또 미화 45달러는 북한 돈으로 불과 4천896.71원으로 입금됐는데요, 엔화의 환율 금액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 당국이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북한 돈에 관한 현금 사용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금결제카드인 '나래카드'를 발급해주면서 터무니없는 환율을 적용해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다는 건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이전부터 북한은 이중환율을 갖고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공식 환율이 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북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고정 환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됐어요.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북한 돈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위험성을 막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형식적으로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시장경제가 많이 활발해지면서 고정환율제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는데,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특별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한해 고정 환율제를 적용하고 강제적으로 고정 환율을 강요하는 제도가 돈벌이가 되는 거죠. 그래서 평양을 중심으로 '나래카드'라는 현금카드에 강제로 돈을 입금하게 하고 지정된 서비스 업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끔 제도화했는데, 요즘은 나래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업체가 상당히 많아졌어요.

'나래카드'의 지불 내역을 보여주는 '카드계산서'. 왼쪽 카드계산서는 '오리고기전문식당'에서, 가운데는 '대동강3식당', 오른쪽은 '고려심청회사'에서 계산됐다. 계산서에 찍힌 식당과 고려심청회사(안경판매회사)는 외국인 여행자의 주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나래카드'의 지불 내역을 보여주는 '카드계산서'. 왼쪽 카드계산서는 '오리고기전문식당'에서, 가운데는 '대동강3식당', 오른쪽은 '고려심청회사'에서 계산됐다. 계산서에 찍힌 식당과 고려심청회사(안경판매회사)는 외국인 여행자의 주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앞에서 소개한 '카드입금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북한 당국의 공식 환율을 살펴보면 1유로는 북한 돈 118.12원, 1달러는 107.62원, 1엔은 불과 0.887원입니다. 반면 5월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 당 환율은 8천200~9천 원 선입니다.

이처럼 북한이 지정한 공식 환율과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질적인 환율의 차이가 무려 80배가 넘는데요, 다시 말해 외국인이 직접 외화를 시장에서 환전하면 8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나래카드로 결제한 장소를 보면 고려호텔, 식당, 택시 등에서 대금을 결제했다고 합니다. 여기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서비스에 관해 호평을 받은 곳이거든요. 그런데 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하면 80배의 차이가 나는 이윤을 유지할 수 없거든요. 예를 들어 (카드는) 80배나 되는 비싼 환율로 서비스가 결제되지만, 암시장에서 실세 환율로 환전하면 굉장히 싼 값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외국에서 온 관광객은 북한 당국이 정해놓은 일정과 장소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철저히 차단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외화를 입금한 '나래카드'밖에 쓸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외국인은 '나래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만 찾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시마루 대표는 늘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 이같은 방법이 또 하나의 외화벌이 사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나래카드'의 앞면. 중국인 여행자 제공.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나래카드'의 앞면. 중국인 여행자 제공.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과거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사업을 통해 북한 내 외화를 회수한 것처럼 이번 사례도 내부에 유입되는 외화를 거둬들이기 위해 북한 당국이 외국인 관광객의 자유로운 환전을 규제하는 건데요, 물론 북한 주민도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비싼 가격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나래카드'로 결제해야 합니다.

[Ishimaru Jiro] 그래서 현금거래를 일절 금지하고 특별한 환율을 적용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제안한 뒤 전자결제만 허용한 이중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외화를 가진 사람을 표적으로 외화를 회수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이 아닌 대사관 직원, 국제기구 관계자, 기업 주재원 등 북한에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들은 북한의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임시로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과 달리 몇 십 배의 손해를 보면서까지 규정된 환율로 환전하려 하지 않는데요, 이들 주재원이나 그들의 가족들은 해당 지역의 지리에 밝고 이동도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시장의 암달러상에게 환전한 뒤 시장에서 북한 돈을 지급해 물품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shimaru Jiro] 장기적으로 평양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종합시장에 가서 구매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시장에 가서 80배나 비싼 환율로 물건을 산다면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주재원들은 당연히 실질환율로 바꿔서 물건을 구매하는 겁니다. 외국인이 특별한 서비스를 받을 때는 나래카드를 사용하고 이것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지만, 일상적인 소비 물품은 실질환율로 돈을 바꾸고 일반 시장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팔고 합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로 환전하는 시장은 '릉라시장'과 '통일거리시장'인데요, '통일거리시장'은 2010년 당시까지 평양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고, '릉라시장'은 평양의 일명 '대사관촌', 즉 대동강 구역에서 대사관이 밀집된 지역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외화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또 장사를 하는 북한 주민도 북한 돈보다는 외화를 선호하고 요구하는데요,

물론 일상적인 생활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는 실질환율이 작동하지만, 나래카드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 즉 서방국가에 걸맞은 특별한 서비스에는 북한 당국이 외국인과 북한 주민 모두에게 높은 환율을 적용하면서 이들의 주머니 속 외화를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