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 북한의 피복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북한 당국의 약속 불이행을 이유로 출근을 거부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2013년 함경북도 샛별군의 피복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북한 당국이 약속한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자, 집단으로 출근을 거부하고 직장을 그만뒀는데요, 오늘날 공장은 끝내 문을 닫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례를 처음 들었어요. 그만큼 여성 노동자들의 계약 의식이 높아지고, 노동에 대한 생각과 관념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는 제시된 노동 조건에 따라 근로자들이 지원하고 그만둔 특별한 상황인데요, 직장을 통한 북한 당국의 인민통제가 조금씩 무너진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다룰 <오늘의 초점>입니다.
- 함경북도 샛별군 피복 공장 노동자, 출근 거부
- 약속한 현물과 급여 위반에 반발, 집단 직장 포기
- '약속 불이행' 소문 확산, 대체 근로자 모집 어려움
- 중국인 투자가, 끝내 공장 포기하고 문 닫아
- 직장 통한 인민통제도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
2013년 10월, 북한 함경북도 샛별군의 피복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일제히 출근을 거부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노동자에게 약속한 현물과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자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한 것인데요, 결국 이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1990년대에 시작된 경제 파탄 속에 오랫동안 가동을 멈춘 이 피복 공장은 2012년 샛별군 간부들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공장을 재가동하기로 하고 직접 간부가 중국을 방문해 작은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의 죄수복과 작업복 등의 가공을 맡았는데요,
이 공장에서 근무한 친족을 현지에서 취재한 내부 취재협력자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초기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강냉이(옥수수) 국수를 세 끼 제공하고, 월급은 한 달에 백미 30kg이며 현금 지급은 없다'
당시 많은 현지 여성이 이 조건에 만족해하며 서로 지원한 탓에 노동자들을 채용할 때 뇌물이 오갈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물론 채용 조건에 '현금 지급'이 없었지만, 당시 시장에서 백미 1kg당 약 5천 원 정도로 실제로는 15만 원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영 공장에서 근무하는 일반 노동자의 국정 월급이 2천 원 안팎임을 고려하면 약 75배나 되는데요, 참고로 당시 실세 환율은 1달러당 약 9천 원이어서, 달러로 환산하면 백미 30kg은 16.7달러 정도 되기 때문에 이를 되팔아 현금 수입을 얻었다는 겁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함경북도 샛별군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이 중국입니다. 중국 투자가를 유치하는 좋은 조건에 있어요. 그런데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각 지방에 '외화벌이 기지를 만들어라'라는 지시가 있었는데요, 이것은 중국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당시 중국 사업가가 투자해줬어요. 그런데 중국 투자가는 돈벌이가 목적이니까 일한 만큼 돈을 주는 시장경제식 투자를 한 거죠. (이번에는) 새 직장이 생겼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조건으로 사람을 급하게 모집한 사례인데요, 하다 보니 군 당국이 중간에서 착취한 거죠. 노동자들은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으니까 (직장을) 포기한 사례가 된 겁니다.
이처럼 북한에서 집단으로 직장을 이탈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요, 이시마루 대표도 20년 이상 북한을 취재해왔지만, 이처럼 '집단에 의한 출근거부' 움직임을 파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아시아프레스' 취재협력자의 현지 조사에 따르면 이 피복 공장은 2013년부터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최초의 채용 인원은 135명으로, 그중 남성은 10명 정도. 그런데 생산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급여 대용이었던 백미가 약속대로 지급되지 못했고, 이에 화가 난 여성 근로자 대부분이 출근을 거부한 건데요,
[Ishimaru Jiro] 대부분 노동자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마자 출근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장 경제에서 '노동쟁의'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례를 처음 들었어요. 그만큼 여성 노동자들의 계약 의식이 높아지고, 노동에 대한 생각과 관념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 '월급용 백미'는 중국 기업이 들여와 해당 군(郡)의 관리를 통해 노동자에게 지급한다는 약속이었지만, 관리는 군량미 명목으로 절반을 떼고 지급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이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여성 노동자들의 출근 거부에 당황한 간부들이 노동자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출근할 것을 설득했지만, 여성 근로자들은 '보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공장에 왜 가나?' '보수 없이 나가면 굶어 죽게 된다'며 간부들을 돌려보냈다고 취재협력자는 덧붙였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지금의 북한에서는 누구라도 똑같이 공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란 게 취재 협력자의 설명입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출근 거부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벌도 없었습니다.
[Ishimaru Jiro] 처벌이 있었느냐고 물어봤죠. 결국, 그만두고 출근을 거부한 사람에 대해서 처벌하지 못했대요.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당국이고, 여성 노동자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설득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국에서 다시 새로운 노동자를 모집했어요. 그런데 인근 노동자들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까 공장에 가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와 일을 시작했는데 역시 조건이 맞지 않았지만, 그만두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래서 중국 투자가도 이런 식으로 하면 공장 운영이 잘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투자가가 철수한 거예요.
실제로 지난해에도 계속된 취재에 따르면 직장을 포기한 대부분 근로자는 간부의 설득에도 복귀를 거부했고, 중국 투자가들은 급여에 해당하는 백미를 직접 샛별군 당국에 전달하면서 근로자에게 지급할 것을 부탁했지만, 군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북한 당국은 다시 노동자를 모집했지만, 당국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근 지역에서는 지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먼 지역에서 노동자를 모집했고, 끝내 중국인 투자가가 공장을 포기하면서 공장은 가동을 멈췄습니다.
[Ishimaru Jiro] 결국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거죠. 그것도 보장 못 하면서 출근하라고 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직장을 포기한 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겁니다.
원래 북한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연줄이나 돈이 없으면 당국의 지시대로 배치돼 직장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이지만 , 이번 피복 공장은 제시된 노동 조건을 바탕으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지원했고 그만 둔 건데요,
이는 중국 기업의 투자를 받았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북한 정부와 노동당이 통제하기 어려운 노동 현장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해석했습니다.
[Ishimaru Jiro] 전통적인 북한식 기업운영에서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공장들은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전기나 자재도 모자라고 기계도 다 낡아서 새로운 투자가 필요합니다. 현재 북한의 전국 방방곡곡에 서 있는 공장이 엄청나게 많은데, 복구가 잘 안 되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자체 해결식 공장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운영권과 재량권을 주고 돈주, 즉 외국 사람의 투자를 받고 운영하는 형식이죠. 기본적으로 배급을 주지만, 조건을 제시하면 일하고 싶은 사람만 가죠. 이것은 북한의 노동과가 하는 일이 아니고 전통적인 북한 공장과 운영방식과 다릅니다. 이같은 자체 해결식 공장에서는 아마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직장 배치는 인민통제 수단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배급을 줬는데요, 하지만 배급은 물론 인건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오늘날 직장을 통한 인민통제도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김정은 정권은 최근 주요 경제특구에 대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불안정한 내부의 정치 상황과 나쁜 투자환경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오늘날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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