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양강도, ‘삼륜 오토바이 택시’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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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초점>

-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에는 지난해부터 삼륜 오토바이 택시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짐과 손님을 태우기 위한 운송 수단인데요, 모두 개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택시'는 오래전부터 대중교통이 마비된 북한에서 개인적으로 오토바이를 마련한 주민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는데요,

"오토바이를 잘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죠. 재미있는 것은 오토바이 택시는 거의 다 개인 소유거든요. 개인이 소유해 운반업, 운수업으로 등록해서 운용하고 있더라고요.

이처럼 '오토바이 택시'는 북한 당국이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다 보니 북한 주민이 스스로 돈을 벌며 사회적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는데요, 북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식 경제방식이 많이 약해지고 자본주의식 시장경제가 많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와 함께 <지금, 북한에서는> 시간으로 꾸며봅니다.

- 원래는 화물 운반용, 무허가로 사람도 태워 날라

- 시내와 도시 근교, 장거리주행 이용

- 대중교통의 마비, 주민의 경제활동 맞물려 인기

- 운전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기름값'

- 모두 개인소유, 자본주의 경제활동 엿볼 수 있어


북한의 북부지방, 중국과 접경도시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바퀴가 3개 달린, 이른바 삼륜 오토바이 택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25일 전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에는 2013년부터 삼륜 오토바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요, '아시아프레스'의 취재 협력자가 취재한 내부 영상에는 북한 주민이 삼륜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아시아프레스'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공한 사진을 보면 실제로 역전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택시, 거리는 누비는 삼륜 오토바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륜 오토바이 택시는 주로 시내와 도시 근교에서 영업하고 있지만, 손님이 원하면 장거리 주행에도 나서는데요, 원래는 화물 운반용으로 당국에 등록됐지만 , 무허가로 사람을 나르는 것이 주 업무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운전수와 가격 흥정을 하는 여성. 2013년 10월 혜산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운전수와 가격 흥정을 하는 여성. 2013년 10월 혜산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실제로 촬영된 영상에는 역전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삼륜 오토바이 운전사와 손님이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요, 손님과 운전사의 대화 내용을 짧게 재구성해봤습니다.

- 손님: 00동까지 3천 원에 타고 싶은데...

운전사: 3천 원이 아니라 5천 원이오.

- 손님: 보통이면 5천 원이란 것을 알지만, 3천 원에 타자는 소리지...

운전사가 3천 원으로는 안 된다며 등을 돌리자 손님은 운전사가 말하는 대로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불평을 계속하는데요,

- 손님: 5천 원 낼 테니까 빨리 갑시다. 다른 운전사는 3천 원으로도 태워주는데...

2009년경에 처음 등장한 삼륜 오토바이 택시가 북한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애초 '인민의 발'인 국영 버스가 노후화와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지금 북한에서 다니는 오토바이는 거의 중국제입니다. 장사를 하거나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 또 장사로 성공해 돈을 번 사람이 중국제 오토바이를 사는 것은 일반화됐는데요, 중국에서 가까운 국경도시뿐 아니라 평양과 평안남도 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교통마비가 10년 넘게 계속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동하는 데 있어 고생을 많이 합니다. 서민 계층은 자전거로 이동하지만,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10년 전부터 중국제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 일반화됐고 이용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잘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죠. 재미있는 것은 오토바이 택시는 거의 다 개인 소유거든요. 개인이 소유해 운반업, 운수업으로 등록해서 운용하고 있더라고요.

다시 말해 개인적인 이동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구매했지만, 이동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와 상업 활동의 활성화가 맞물려 돈이 있는 북한 주민은 새로운 이동 수단인 삼륜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한다는 겁니다.

삼륜 오토바이 택시의 운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 안에서만 이동할 경우 대략 북한 돈으로 5천 원 이하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1000원 = 약 $0.125) 물론 기름값은 운전사들의 가장 큰 부담입니다.

[Ishimaru Jiro] 역시 운전사들의 가장 큰 부담은 기름값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름은)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데, 매년 값이 올라가거든요. 기름값을 계속 부담하면서 돈벌이를 하려면 계속 짐과 손님을 싣고 운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촬영된 동영상에는 운전사들이 기름값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며 불평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역전에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모두 중국제다. 뒷좌석에 손님을 태운다. 2013년 10월 혜산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역전에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모두 중국제다. 뒷좌석에 손님을 태운다. 2013년 10월 혜산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사람을 태워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 삼륜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군용 차량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차량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건데요, 삼륜 오토바이도 원래는 짐만 싣고 다니도록 허락을 받았지만, 북한 당국이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다 보니 북한 주민도 무조건 당국의 지시대로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돈을 벌며 사회적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오토바이라는 생산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이제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식 경제방식이 많이 약해지고 자본주의식 시장경제가 많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요,

[Ishimaru Jiro] 북한 당국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개인의 장사를 다 통제하면 사회가 마비되죠. 이번에 오토바이 택시의 경우도 원래는 짐을 싣는 것으로 허락했는데, (불법은 아니죠.) 하지만 손님을 태워주는 것은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건데, 북한 당국에서도 개인 소비에서 돈벌이를 하는 부분이니까 크게 통제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평양과 가까운 평성 시내에서는 삼륜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택시'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택시'는 시내뿐만 아니라, 평양과 순천까지 이용할 수 있고 버스나 트럭보다 가격이 저렴한 500~1천 원으로 이용이 가능한데요, 대신 자전거의 짐칸에 앉기 때문에 승차감이 나쁘고, 오르막길에서는 내려서 걸어야 하는 등 불편한 점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을 듣고 계십니다.

<한국전 미군유해 275명, 가족 품으로>

- 2014년 6월 현재 275구 신원 확인

- 여전히 7천882명 실종․신원확인 기다려

- 북한에서 발견된 미군 유해 중 214구 신원 확인


6월 28일,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 한 명이 60년이 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고향 땅에 묻힙니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미군 병사, 윌리엄 보너 씨 유해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지난 23일 밝혔는데요, 이로써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병사 중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모두 275구입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와 실종자 담당국은 북한과 한국, 중국 등에서 발견한 미국 유해 중 현재까지 275구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아직 7천882구의 미군이 실종됐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특히 미국의 유해발굴단이 북한 지역에서 가져온 유해와 북한이 일방적으로 보낸 유해 가운데 214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신원이 밝혀진 미군 유해 중 약 80%가 북한 지역에서 발견된 건데요, 실종자 담당국은 앞으로도 북한 지역에서 발견된 미군 유해의 신원 작업을 거쳐 한국 전쟁에서 숨진 미군 병사를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올해 6.25 전쟁 6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6․25전쟁 참전용사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유해발굴사업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6․25전쟁 기념일을 맞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기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