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담화 담은 ‘노작’, 뒤늦게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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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초점>

- 북한이 최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중앙당, 인민내무군 공병부대의 간부들이 나눈 담화를 노작화한 '학습제강'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습제강에는 제대군인에 대한 칭찬과 신뢰를 나타내고, 제대군인이 앞으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주문했는데요, 이와 함께 제대군인에 대한 복지에도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이번 학습제강의 배경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업적을 쌓으려는 시도와 함께 제대군인에 대한 나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하지만 이에 관한 책임과 의무는 북한 주민과 사회에 돌리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다시 말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말 잔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도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와 함께 <지금, 북한에서는> 시간으로 꾸며봅니다.

- 김정은 제1비서가 나눈 담화, 학습제강으로 배포

- 제대 군인 칭송․신뢰, 사회적 선도 역할 주문

- 제대 군인에 대한 관심과 복지 주문

- 김정은은 '말 잔치', 책임은 사회와 일반 주민?

- 노작에 '김정은 업적', '제대군인 문제' 반영

- 노작의 사전적 의미도 집권자의 우상화로 연계


북한이 지난해 7월 1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중앙당과 인민내무군(인민보안부 산하 부대) 공병부대의 간부들이 나눈 담화를 노작화한 학습제강, 즉 학습지도안을 뒤늦게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지난 8월 18일 북한 내부 취재협력자를 통해 입수한 학습제강을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공개했는데요, 학습제강의 표지에는 '병사시절의 한 모습으로 조국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기수, 돌격대가 되라'란 제목이 적혀 있으며, 조선로동당 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이 책자에는 학습대상과 학습시간은 물론 학습에서 어떤 부문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의 주요 요점까지 지적해 놓았는데요, 학습대상은 간부와 당원을 비롯해 대학과 전문학교 제대군인 학생이고 학습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또 학습을 통해 주입해야 할 기본 사상에 관해서는 '제대군인들이 사회에서 혁명적 군인 정신과 투쟁 기풍이 차 넘치도록 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주민들의 정신력을 발양시키고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앙양을 일으키게 하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말입니다.

[Ishimaru Jiro] 이번 자료보고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김정은에 대한 노작을 계속 만들려고 하는구나.'라는 부분인데요, 김정은의 구체적인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서도 노작 발표가 계속돼야 함을 북한 당국이 의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김정은이 직접 말한 담화와 강연, 문장 등은 2~3년 전 김정은이 등장했을 때 하나도 없었던 것 아닙니까? 이런 업적을 만드는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느꼈고요,
두 번째는 역시 제대군인 문제가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현안이라고 느꼈습니다. '10년간 고생한 제대군인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라가 군대와 제대군인을 늘 생각하고 있고, 사회에서도 잘 대우해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요, 제대군인이 사회에 나가자마자 소외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프레스'가 공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노작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시마루 기사 원본)

맨 왼쪽의 병사는 한국군 병장에 해당하는 상급병사다. 복장이 풀어져있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에서, 제대시기를 앞둔 권태감이 느껴진다. 2013년 6월 한 지방도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촬영
맨 왼쪽의 병사는 한국군 병장에 해당하는 상급병사다. 복장이 풀어져있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에서, 제대시기를 앞둔 권태감이 느껴진다. 2013년 6월 한 지방도시, 사진-아시아프레스 촬영

1장에서는 군 복무 기간이 지났음에도 군 복무를 계속한 공병부대 군인들을 소개하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를 치하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들이 건설한 건물의 이름까지 소개하면서 '제대를 미루고 군 복무를 한 군인의 위훈은 부대의 군기, 부대의 연혁과 함께 빛날 것'이라고 추켜세우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핵심내용이 담긴 2장에는 제대군인에 대한 당의 믿음이 크다는 것과 제대군인이 사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과업이 적혀 있는데요, 비록 군인이 제대를 해서 군복을 벗었지만, 영원히 혁명을 함께할 전우이기에 사회에 나가서도 새로운 직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겁니다.

또 2장에는 이밖에도 제대군인들이 대중의 정신력을 발양시키기 위해 실천적 모범을 보여야 하고 언제나 긴장된 상태에서 생활해야 하며 전쟁에 대비해 전투임무를 완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훈련에 성실히 참가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Ishimaru Jiro] '학습제강'이라는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 지도자의 지침을 교육하는 자료잖아요. 이런 교육을 계속하지 않으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학습제강의 마지막 장에서는 사회와 당 기관에서 제대군인들이 정책 집행에 앞장서도록 잘 교양할 것과 이들을 간부로 키우기 위한 사업을 잘 시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대표는 마지막 장에서 특이한 점으로 '장군님(김정일)께서 평가했고, 당(김정은)에서 내세워 준 제대군인들에게 특히 관심을 돌릴 것'이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이는 제대군인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살림집 해결과 영예군인, 즉 상이군인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겁니다.

[Ishimaru Jiro] 우리 북한 내부 협조자 중에서도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30살 가까이에 제대해 사회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어느 기업소에서도 환영하지 않는 데다 살림집 문제, 결혼 문제가 생기고, 장사도 잘 모르고... 결과적으로 이것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 하니까 사회가 돌봐줘야 한다는 '말 잔치' 정도를 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작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민내무군 공병부대 지휘관과 정치 간부들이 당의 영도를 받들어 군 복무를 잘하기 위해서는, 선대 지도자들의 위대성을 포함한 사상교양을 잘 받아 과업수행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과거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도 전쟁 이후 복구 건설과 고난의 행군 등 어려운 시기마다 제대군인을 믿고 일을 맡겼다면서 앞으로도 제대군인들이 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대중을 이끌어 나간다면 강성대국의 건설은 문제가 없을 것이란 내용으로 학습제강은 마무리하는데요, 편집자 측은 '이 노작이 모든 간부와 제대군인들이 철저히 구현해야 할 지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는 북한 당국이 이번에 노작을 발표한 배경에는 군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나쁜 것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오랜 기간 열악한 환경에서 복무해야 하는 북한 군대는 기강이 약할 뿐만 아니라 현역 군인과 제대군인이 범죄를 자주 저질러 사회적 인식도 매우 나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최근 발표된 노작이 이같은 사회적 인식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시마루 대표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심각한 경제난과 권력투쟁으로 두드러진 지도자의 부정적 이미지를 반전시키기 위해 사회의 기본 역량을 이루고 있는 제대군인에게 집권자의 의도를 앞장서서 실현할 것을 주문하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거든요. 매년 10%씩 제대하는 군인들을 보살펴주려면 경제력도 뒷받침돼야하고, 군 자체도 당국에 대한 불신이 깊을 텐데, 말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Ishimaru Jiro] 그렇죠. 사실 제대군인이 매년 10만 명씩 생긴다고 할 때 나라가 책임지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 북한에는 재정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없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 결국은 사회와 일반 주민, 지방에 많이 노력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가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일반주민과 지방에 강요하는 수단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일반 주민도 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보다는 실제로 나오는 것이 있어야 이것을 보고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할 겁니다. '아무리 교육 기회를 만들어봐야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 제대군인도 많은 생각을 할 겁니다.

북한에서는 노작의 사전적 의미도 집권자의 우상화로 연계하는 모습입니다. 1962년 북한에서 출판된 조선말 사전에 따르면 '노작'의 원래 의미는 '많은 힘을 들여 지은 우수한 작품이나 저작'인데요, 이후 60년대 말 김일성의 유일 지배체제가 완성되면서, 1992년 판 조선말 사전에서는 '로동 계급의 혁명 이론발전에 커다란 이론 실천적 의의를 가지는 고전적 저서'로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원래의 의미에서 변질해 최고지도자의 저서나 담화, 정권의 통치구상을 밝힌 모든 발표문을 '노작'에 포함하고 있는데요, '노작'조차도 김 씨 일가의 우상화는 물론 선전과 통치 지침의 발표문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