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시작합니다.
- 넉넉하지 않은 혜택과 삶의 제약 탓, 제대 선택
- 당국의 억제로 뇌물을 줘야 제대할 수 있어
- 제대군관에 대한 당국의 혜택이나 배려는 기대 이하
- "제대를 안 해도 문제, 제대를 해도 문제"
- 가능성과 융통성을 보고 선택, 군관 부인들의 성화도 한몫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과거의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당을 중심으로 한 통치방식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 제1비서의 말처럼 더는 인민의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당 중심의 국정운영이 불가피할 것이란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름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요,
하지만 북한 정권에서 군이 차지하는 큰 영향력과 군의 고위관리에 대한 각종 특혜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군관은 북한 주민 사이에서 특권층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북한의 군관들이 앞다투어 제대를 하려는 현상이 확산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을 연결해 자세한 소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안녕하세요!
[김준호 특파원] 네. 안녕하세요. 중국입니다. (날씨, 많이 쌀쌀해졌나요?)
- 북한에서 '군관'이라 하면 한국에서는 보통 장교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은 군 조직을 이끄는 소대장 이상의 직책을 맡고 있는 군인들인데, 최근 군관들의 제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면서요? 왜 그런가요?
[김준호 특파원] 네, 말씀하신 대로 요즘 북한에서 제대를 하는 군관들이 부쩍 늘었고, 또 제대하려고 마음먹은 군관들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 정권이 나름 군관들에게 식량 공급을 비롯한 여러 배려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넉넉하지 않을뿐더러 군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오히려 가족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데요,
최근 친지 방문차 중국에 나온 청진의 한 주민에 따르면 군관들은 대개 도시와 떨어진 오지의 군부대가 있는 곳에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국가의 경제적 배려가 매우 열악해서 부인들이 장마당 장사를 하고 싶어도 장사를 할 만한 주변 환경이 되지도 않지만, 이는 군관들의 부인들이 해서는 안 되는 금지사항이라고 합니다. 겨우 돼지나 닭을 키우는 등의 부업 정도나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사료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녹록지 않다고 하는데요, 이러다 보니 '실속 없이 이름만 근사한 군관 노릇을 하느니, 차라리 제대하겠다.'는 군관들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경제적 어려움이 제대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 네. 이렇게 군 조직을 이끄는 군관들이 잇따라 제대하면 군대의 조직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김준호 특파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군관들이 제대하고 싶어도 북한 당국에서 이를 강력히 억제하기 때문에 제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결국 제대를 하는 방법은 뇌물이라고 합니다. 앞서 청진의 주민 소식통은 뇌물이 만연해 있는 북한사회에서 군관들의 제대도 뇌물을 주고받는 대상이라고 하는데요, 뇌물의 액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급 군관이라고 해도 최소 열 장, 다시 말해 미화 100달러로 10장 이상은 될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병과의 경우는 특별 관리대상이기 때문에 뇌물을 줘도 제대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최근 군관들의 제대현상이 급속히 확산하자 김정은 제1비서가 직접 군관들의 제대를 억제하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려 한동안 군관들의 제대 행렬이 주춤하기도 했다는데요, 그래도 뇌물이면 다 통한다는 것이죠.
- 결국,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군대 생활을 마친다는 말인데요, 그렇게 제대한 군관들의 삶이 더 나아지나요?
[김준호 특파원] 그것도 단정 지어 말하기가 어려운데요, 일단 군관들이 제대를 하면 기업소 등에 배치되는데, 제대군관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특히 제대 군관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바로 주택 문제라고 하는데요, 물론 중앙에서는 제대군관들의 주택문제를 우선으로 해결해주라'는 지시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소속 단위에서는 이들을 위한 아파트를 짓기도 하는데, 이마저도 몇 채 되지도 않을뿐더러 주택을 지을 예산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 한 동을 지으려면 몇 년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언제 지어질지 예측도 어려워 사실상 제대군관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각자가 알아서 집을 사거나 동거집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는데요, "조국을 위해 2~30년간 인생을 바쳤지만, 국가에서는 나 몰라라 한다"는 원망을 감출 수가 없다는 것이죠.
또 소식통에 따르면 제대 군관 중에는 피부병에 시달리거나 탈모 현상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화학 부대나 핵과 관련된 부대에서 근무한 것으로 의심되거든요. 이들에게는 '영예군관'이란 자격을 줘서 달랜다고 하는데, 식량 배급 등에서 다른 사람보다는 차별해서 배려한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결국 '제대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라는 말인데요, 그래도 굳이 제대를 하려는 이유가 있다면요?
[김준호 특파원] 네, 지적하신 대로 이래도 저래도 다 문제인데요, 그나마 제대를 하면 군대에 있을 때보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군관들의 부인들이 장마당에서 상업 활동을 할 기회가 생기고요, 또 아이들의 교육문제에서도 군 생활을 하던 오지보다는 환경이 좋은 도시학교에 보낼 수가 있고요, 때로는 간부로 있는 친인척의 도움을 받아 식당을 낸다든지, 무역일꾼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도 생길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또 신의주의 주민 소식통은 실제로 군대 생활을 청산한 제대군관 중에 많지는 않지만 잘 된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고 군 생활을 청산하려는 군관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특히 제대군관이 늘어나는 데는 군관 부인들의 성화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 그렇군요. 북한이 최근 13년 만에 중대장과 중대 정치 지도원 회의를 연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최근 군관들의 잇따른 제대현상과 개연성은 없을까요?
[김준호 특파원] 네. 이번 회의가 군관들의 제대를 막아보자는 것과 연관 짓기는 무리겠지요. 하지만 아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초급 장교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충성을 유도하려는 목적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 행사가 반짝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을 텐데요, 군관들의 처우개선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다 돈이 들어가는 일 아닙니까? 열악한 북한의 경제상황이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에 돈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일회성 행사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
- 네. 김준호 특파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고맙습니다.
최근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평양에 주둔한 건설부대의 상급병사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집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해당 부대에서는 오히려 "제대 절차를 밟아줄 테니 오지 않아도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데요, 이처럼 북한 군부대의 열악한 식량난과 바닥으로 떨어진 군 장병의 사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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