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외 부담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

50대 가량으로 추정되는 여인 등 북한 주민들이 지게와 삽 등을 이용해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50대 가량으로 추정되는 여인 등 북한 주민들이 지게와 삽 등을 이용해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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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시작합니다.

- 김정은 정권의 세외 부담, 이전보다 늘어

- 물건으로 못 내면 돈으로, 돈도 못 내면 몸으로

- 세외 부담금이 가정까지 파괴

- 높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세외 부담 더 키워


북한에서 살다 지금은 중국이나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 그리고 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 주민에게 "북한에서 살아가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식량난 외에 "내라는 것이 너무 많이 고달프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시기나 날에 따라 내야 할 것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렇듯 기본적인 세금 외에 국가에 내는 돈을 '세외 부담금'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한 이후 초기에는 세외 부담금이 줄어드나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요즘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합니다.

요즘 북한 주민에게는 어떤 세외 부담이 있는지, 또 북한 주민이 이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을 연결해 자세한 소식을 들어보겠습니다.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안녕하세요.

[김준호 특파원] 네. 안녕하십니까? 중국입니다.

- 저도 북한 주민들이 세외 부담금 때문에 큰 부담을 갖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거든요. 기본적으로 계절에 따라, 특별한 날에 따라 내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북한 주민이 어느 정도로 어려움을 호소하나요?

[김준호 특파원] 네. 제가 북한에서 살지는 않지만,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간접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민반장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또 뭐를 내라고 하려나?"란 생각이 들어서라고 합니다.
친척 방문차 중국에 나온 함경남도의 한 주민에 따르면 이전에 내라는 것을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더라도 인민반장 집 근처를 피해서 간다고 하는데요, 만약 인민반장 눈에 띄면 '그동안 못 내고 있는 세외 부담금을 언제까지 낼 거냐?'며 다그침을 받기 때문이지요. 북한 주민은 "제발 국가에서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좋으니 내라는 것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네. 북한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최고 지도자가 된 지 2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김정은 제1비서가 '인민 사랑'을 자주 강조했는데요,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세외 부담금이 줄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보거든요. 요즘 세외 부담은 어떻다고 하나요?

[김준호 특파원] 네, 실제로 김정은 제1비서가 지도자가 되면서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실제로 한동안 내라는 것이 많이 줄어서 젊은 지도자에게 찬사도 보내고, 기대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 가지 못했는데요, 북한에서 대대적인 국토환경 개선사업을 펼치면서 북한 주민의 세외 부담금이 급격히 늘었다고 합니다.
국가에서 벌이는 국책사업은 물론 각 지방에서 벌이는 대다수의 크고 작은 사업들에 국가 예산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그 부담이 고스란히 주민에게 전가된 건데요, 큰 사업을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주민들의 세외 부담금은 늘어나게 됩니다.

- 예를 들면 김정은 정권 시절에는 어떤 세외 부담이 있는지요?

[김준호 특파원] 북한 당국에서는 돈을 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함경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예를 들어 '마식령 스키장 건설에 필요한 잔디를 한 가구당 열 평방씩 내라', 또 '마식령 스키장의 건설 일꾼들에게 지원할 손 장갑을 한 가구당 10켤레씩 내라'란 식입니다. 다만 잔디를 떠올 수 없으면 대신 돈을 내야하고, 장갑을 만들 수 없으면 장마당에서 사오든지 아니면 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돈을 내야 하는 것이죠.
이밖에도 '자갈을 두 톤씩 내라', '모래를 세 톤씩 내라', 학생들에게는 '토끼 가죽을 바쳐라', '파철을 내라'는 등 세외 부담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 중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에게는 도토리 방학, 화목 방학이라 명목으로 일주일씩 쉬게 하고 도토리나 화목을 바치라고 하는데요, 할당량이 매우 많기 때문에 사실상 이에 해당하는 물건을 수집할 수 없으니까 돈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세외 부담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월급을 모두 털어도 다 감당할 수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월급을 받고 기업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직장생활을 한다"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 그렇군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도 대형 공사가 많아서 세외 부담금이 컸던 것으로 아는데요, 김정은 제1비서 시기에도 변함이 없군요.

[김준호 특파원] 그렇습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희천 수력발전소와 평양의 만수대 지구 아파트를 건설하느라 많은 세외 부담금이 부과됐는데요, 김정은 제1비서가 집권하면서 는 지방마다 남새 온실 건설과 롤러 스케이트장을 비롯해 각종 위락 시설을 짓지 않았습니까? 특히 최근에는 마식령 스키장 건설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각종 세외 부담금이 많이 부과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스키장 건설 공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김정일 위원장 시절과 비교해 세외 부담금이 '더하면 더했지 줄지 않았다'는 말이 북한 주민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 만약 없어서 못 내면 처벌을 받나요?

[김준호 특파원] 세외 부담금과 관련해서는 '없어서 못 낸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다못해 남에게 빌리던지, 도둑질을 해서라도 부담금을 내야지, 만약 안 내고 버틴다면 '국가와 당에 충성심이 없는 불순분자, 즉 정치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가장 엄격하게 처벌하는 범죄가 정치범이고, 정치범의 경우 가장 경미한 처벌이 노동 교화형인 데다 심지어 관리소라 불리는 정치범 수용소에까지 보내지는데 '누가 감히 내라는 것을 안 내고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래도 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가정이 붕괴해 가족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는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최악의 상황이 무조건 세외 부담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과중한 세외 부담금이 북한의 가정을 붕괴시키는 하나의 커다란 요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 어찌 되었든 북한에서 세외 부담금이 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어려운 형편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것을 거둬들이는 관리들도 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준호 특파원] 네, 실제로 직접 주민에게 세외 부담금을 내라고 전달하고, 이를 직접 거둬야 하는 인민반장들이 가장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고 합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은 특히 인민반장들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는 않지만, 대신 이같은 세외 부담에서는 제외된다고 하는데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악역을 도맡아야 하니까 이게 싫어서 인민반장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자칫 국가에 대한 항명으로 비춰져 잘못하면 정치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기 싫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위에 있는 관료들의 부패인데요, 예를 들어 100만 원이라는 세외 부담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면 실제로는 150만 원을 모아 50만 원은 관료들이 착복하기 때문에 주민의 세외 부담금이 더 늘어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최근에는 가을 수확 직후에 군량미 명목으로 곡물은 물론 옥수수와 감자까지 바쳐야 해서 농민들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렸는데요, 이밖에도 시도 때도 없이 징수하는 세외 부담금이 정말 북한 주민에게 큰 부담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고맙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고맙습니다.

- 지금까지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세금을 조금 올리는 것도 국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입법 기관을 통해 절차를 밟는 등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운영되는 원천이 바로 국민이자, 국민이 내는 세금이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북한처럼 국가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사업을 펼치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은 '세금'도 '세외 부담금'도 아닌 말 그대로 '착취'와 다름없다는 것이 북한 주민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