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 부분 시행 '분조관리제', 반쪽짜리 '포전담당제'
- 여전히 일관성 없는 정책․신뢰 부족으로 정착 못 해
- 7:3 분배 멈추고 예전 분배 방식으로 돌아가
- 기업소 대상 '부업토지 운영'도 문제
- 말로는 '분조관리제', 실질적 시행과는 거리 멀어
북한이 2012년 6월 28일, 이른바 6.28 경제개선 조치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란 이름의 경제개선조치로 그해 10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해 당시 북한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조치는 식량 생산의 증대를 꾀하고자 기존의 대규모 협동농장의 운영방식을 바꿔 기존의 분조를 소규모 단위의 분조로 개편하고 소규모 분조에 일정량의 땅을 분배해서 경작하게 하는 포전담당제를 시행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렇게 생산된 농산물 중 국가가 70%, 분조원들이 30%를 갖게 하고 생산목표보다 초과 달성한 생산물도 모두 분조원들의 몫으로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습니다.
이는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북돋아 농산물의 생산증대를 꾀하자는 것이었는데요, 이 정책의 성공 여부는 북한 당국이 약속한 분배를 제대로 지키느냐 달려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이 정책이 발표된 지 3년째가 됐는데요, 추수가 끝난 요즘 이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관해 북한 내부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있는지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을 연결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준호 특파원,안녕하세요.
[김준호 특파원] 네, 안녕하십니까? 중국입니다.
- 조금 전 언급했습니다만, 올해는 북한의 협동농장이 분조관리제를 시행한 지 3년째가 됩니다.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2012년과 2013년은 이 제도가 전면적으로는 시행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시범적인 시행만 있었다는 말이 많았는데요, 올해 상황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말씀하신 대로 올해가 분조관리제가 시행된 지 3년째이지만, 실상은 애초 계획과 여전히 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을 통해 이에 관한 취재를 해 왔는데요, 직접 만난 북한 주민에 따르면 올해도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대규모 분조를 소규모 단위의 분조로 개편했지만, 분조원에게 일정량의 토지를 분배하고 경작토록 하는 포전담당제는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협동농장이 보유한 농지 중 벼를 경작하는 논은 포전에서 제외하고 있고, 밭 일부를 분조원에게 나눠 주는 반쪽짜리 포전담당제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지역마다 나눠준 포전의 면적도 일정치 않고요, 각 협동농장의 실정에 따라 1인당 나눠 준 포전도 몇백 평에서 1천 평이 넘는 등 제각각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직도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 네, 북한 당국이 제도를 도입한 동기는 농민의 생산 의욕을 북돋아 생산성을 높이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약속한 분배가 제대로 지켜져야 애초 목표한 대로 농민의 생산 의욕을 높이게 될 텐데요, 올해는 알곡털이가 다 끝나고 농장원에게 분배작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셨는지요?
[김준호 특파원] 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함경남도의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올해는 약속한 분배를 제대로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대부분 농장원이 의심해 왔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알곡털이가 일찍 끝난 일부 농장에서는 재빨리 7:3원칙에 따라 분배한 농장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곧 이같은 분배가 갑자기 중단되고 예전 방식으로 분배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량미 확보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한 군부의 입김이 작용해 그렇게 되었다'란 소문만 무성하다고 하는데요, 분조관리제를 시행하면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농민은 '역시나 도로 옛날'이라는 불만과 함께 '또 속았다'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함경남도 주민은 전했습니다.
- 예전 방식의 분배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김준호 특파원] 네, 농장원들이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한 시간을 '공수'로 따져 분배하는 방식인데요, 보통 하루 8시간 일을 하면 1공수로 환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잔업을 하거나 노동 강도가 센 일을 할 때는 1공수가 넘고요, 그 반대일 경우는 1공수가 채 안 되게 환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봄부터 가을걷이까지 일한 것을 모두 합산한 공수에 따라 일부는 현물분배를 하고, 일부는 현금분배를 하는 건데요, 여기서 문제점은 현물분배보다 현금 분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겁니다. 현금분배는 알곡을 시장가격이 아닌 국정 가격으로 환산해 현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현물로 받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을 분배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원이 일 년 치 식량의 2~3개월 정도의 식량밖에 분배받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졌고요, 북한에서 식량 부족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된 계층이 농민이란 지적도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분조관리제와 포전담당제로 농민의 생산의욕을 높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겠군요.
[김준호 특파원] 물론입니다. 또 이와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부업토지 운영'이라 해서 기관이나 기업소에 일정량의 토지를 나눠주고 생산된 농산물 일부를 국가에 바친 뒤 나머지는 해당 기업소가 나눠 갖는 제도가 있거든요. 이 부업토지 운영에 관해서도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 어떤 문제점입니까?
[김준호 특파원] '부업토지 운영'은 도회지의 기업소에 토지를 분배하고 이에 대한 생산목표를 정해준 뒤 생산된 물량의 70%는 국가에 바치고, 30%는 해당 기관이나 기업소 직원에게 나눠주는 제도인데요, 문제는 생산 목표가 너무 높아서 생산량을 모두 바쳐도 목표량에 미달한다는 겁니다. 그럼 결국 모자라는 양을 기관이나 기업소 직원이 돈을 내 시장에서 구매해 채워야 하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소 직원이 "우리 기업소는 부업토지를 받지 말자"고 기업소 책임자에게 강하게 요청하는데, 기업소 책임자는 "그렇게 하려면 내 목이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란다"며 성난 기업소 직원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린다고 북한 주민은 전하기도 했습니다.
- 네. 북한이 야심 차게 추진할 것을 약속한 분조관리제가 시행 3년째를 맞이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착을 못 하고 있군요. 생산량의 증대와 함께 생활이 나아질 것을 기대한 북한 주민의 실망만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고맙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고맙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분조관리제에 관한 일관성 없는 정책 탓에 일부 협동농장에서는 분조관리제를 포기하는 움직임도 감지됐습니다.
우선 분조관리제의 시행에 대해 농장원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일률적이지 못한 정책 지시는 물론 기계나 영농 자재도 턱없이 부족해 말로는 분조관리제를 강조하지만, 정작 시행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당시 자유아시아방송의 취재에서도 적지 않은 협동농장이 이미 도입했던 분조관리제와 포전담당제를 포기하고 기존의 농업체계로 되돌아간 것이 확인됐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분조관리제는 새로운 북한의 경제정책이란 기대감을 낳았지만, 결국 포장만 바꾼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성공이 아닌 실패를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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