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 영화 레미제라블 가운데 '혁명가' )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 ‘레미제라블’이 중국에서도 상연됩니다. 천안문사태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 때문에 중국 당국의 고민이 많습니다.
(Act : 영화 '가족의 나라' 예고편)
-재일교포 여성영화감독 양영희 씨가 만든 ‘가족의 나라’가 내달 7일부터 한국에서 상연됩니다.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 청소년 시절 북송선에 올라 북한에서 사는 세 오빠와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자전적 영화입니다.
( 이미영 : 원래의 그런 거 말고 이래야 하는 거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예술활동가 이미영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순응하고 산다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합니다.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
(Bridge Music / 세상에 이런 일도)
' 화장실엔 파리 3마리 만'…중국 새 위생기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고도 성장의 이면에는 여전히 낙후된 그늘도 많습니다. 중국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관광지에 공중화장실이 부족하고 위생시설도 불결한 점을 많이 지적합니다.
최근 중국 보건 당국이 화장실 내 파리 숫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공중 화장실 위생 기준을 제시했다고 하는데요 22일 중국 남방도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위생부는 독립된 공중화장실 1㎡당 3마리를 초과하는 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위생 기준 초안을 마련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안에 따르면 다른 시설 내에 설치된 화장실에는 파리 한 마리만 허용된다고 하죠. 새 규정은 또 화장실을 냄새 정도에 따라 '냄새가 전혀 안 남', '약간 냄새 남', '분명히 냄새가 남', '강한 냄새가 남' 등 4등급으로 분류하고 모든 공중 화장실은 약간 냄새 나는 이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화장실 냄새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 특별팀도 만든다고 합니다만 글쎄요 세계 경제대국 미국을 넘본다는 중국에서 내놓는다는 화장실 개선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이번 규정은 지저분하기로 악명 높은 공중화장실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일부에서는 파리 숫자 제한 등의 내용을 두고 '파리 산아 제한'이라는 식으로 비꼬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中도 영화 '레미제라블' 개봉‥천안문의 트라우마
중국 천안문사태를 떠올리게 해 주는 영화가 중국 전역에서 28일 오늘부터 개봉을 하게 됩니다만 중국 당국의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인데요, 자유를 갈구하며 혁명을 꿈꾸는 청춘들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서는 특히 바리케이드, 즉 방벽을 쌓고 진압군과 대치하는 장면은 1989년 6월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천안문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Act : 영화 중 바리케이드 쌓고 진압군 대치하며 부르는 노래)
‘인민들이여 손을 잡고 정의와 자유를 쟁취 하자..’ 라는 내용의 이 영화 주제곡은 당시 시위곡으로 쓰였고 이후에 반정부 집회에서 단골 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빈부격차 문제로 시위가 잇따르는 중국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 제목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고 중국어 자막도 일부 수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중국 당국은 지난달 중국의 부정적인 면을 묘사한 영화 ‘007스카이폴’의 일부 장면을 삭제해 비난이 일기도 했습니다.
검열 왕국이라는 오명을 받아온 중국은 시진핑 체제 출범에 맞춰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될 지 계속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Bridge Music / 라디오 문화마당)
재일교포 북송사업과 가족의 재회 다룬 ‘가족의 나라’ 다음 달 개봉
1960년대 재일교포 북송사업과 가족의 재회를 그린 영화가 다음 달 7일 한국에서도 개봉됩니다. 재일교포 2세 여성 감독 양영희 씨의 자전적 얘기를 담은 ‘가족의 나라’ 라는 이 영화는 지난해 일본 최고의 영화에 선정됐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2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2003년 일본에서 방송제작에 참여하다가 타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첫 번째 극영화인 ‘가족의 나라’는 15개국 18개 영화제에 정식 초청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화 ‘가족의 나라’는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2세로 살아가야 했던 양영희 감독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를 재구성해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한국 상영을 앞두고 시사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양영희 씨는 YTN 방송에 출연해 영화의 제작 배경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털어놨습니다.
양영희 : 이 영화 ‘가족의 나라’는 저의 실제 체험, 경험이 토대로 왜 있고 제가 처음 만든 극영화인데 재일조선인가족의 얘기예요, 무대가 도쿄고.. 오빠와 여동생이 있는데 오빠는 1960년대에 있었던 북송사업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25년만에 가족이 사는 일본으로 돌아와요. 특별한 허락을 받고.. 탈북이 아니라.. 바로 다시 북한에 돌아간다는 약속 아래 뇌종양 치료 때문에 특별허가를 받았는데 감시자가 따라 와요. 25년만에 일본에 돌아와서 옛날 친구들 만나고 첫 사랑 애인도 만나고 가족과 보내는 며칠 간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았습니다.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 후회의 말 남겨
양영희 씨는 실제는 북송된 오빠가 세 명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한 명으로 줄거리를 이끌어갔습니다.
오빠 셋이 북한으로 떠날 때 양영희 씨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양영희 씨의 아버지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를 평생을 보내다 얼마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영희 씨의 오빠 세 명 가운데 큰 오빠도 몇 십 년 동안 정신분열증세로 고생하다 지난 2009년 숨졌습니다
양영희 씨는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했던 아버님이 북한에 있는 아들들 때문에 속 마음을 다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아들들을 북한에 보낸 데 대한 후회의 말은 남기셨다고 말했습니다.
양영희 : 아버님도 어머님도 만나러 북한에 몇 번 가시니까 북한 실정을 알고 그래도 이북을 선택한 자기들의 인생을 다는 부인은 못하고, 부정은 못하고 아들들을 안 보냈었어도 됐는데 그 때는 너무 기대를 가졌다, 자기가 너무 젊었다.. 너무 믿었다 그런 말을 조금은 하셨어요. 딸이 그걸 가지고 영화를 만드니까 그 후에 제가 북한 입국 금지가 되고 지금은 가족을 못 만나게 됐어요
양영희 씨도 북한에 있는 오빠들과 그들 가족 걱정 때문에 ‘디어 평양’ 과 ‘ 굿바이 평양’ 그리고 이번 ‘가족의 나라’까지 영화를 제작하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오히려 오빠들 얘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그것이 오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양영희 : 오빠들이 걱정이긴 하지만 오히려 정부 승인을 받은 문제아로서 제가 유명해지면 오빠들도 유명한 가족으로 만들고 아무도 다치지 못하게 열심히 해보자고 해서.. 이번에 이렇게 많이 수상을 한 것도 좀 어색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오빠들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것과 이어지지 않을까..
북한 국적인 어머니는 한국을 오고 싶어 하지만 인질처럼 잡혀있는 북한의 아들 손자들 때문에 북한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영희 : 아들 손자들이 있으니까 북한에 가셔야 하니까요, 저는 못 들어 가지만 어머니께서는 아직 가실 수 있고 작년에도 갔다 오셨어요 말하자면 아들 손자들이 인질같이 많으니까 어머니는 국적도 안 바꾸고 일단 그렇게 사세요,
양영희 감독은 북한 국적으로 있다가 2004년 한국 국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가 과거에는 조총련에 반항하는 자신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활동을 인정하고 응원을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지난25일 서울에서 가진 영화 가족의 나라 시사회에서도 그 동안 고민해 오던 많은 얘기들을 털어놨습니다.
북한은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정전상태의 암흑과 같다
양 감독은 지난 1959년부터 20년간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9만4000여명의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북송 됐다며 이들은 일본정부와 북한의 협정에 의해 일본으로의 귀국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감독은 그 중 몇 십 명만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이 조총련이나 북한에 엄청난 기부를 한 덕에 가족을 만나러 올 수 있었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막대한 돈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양 감독은 그나마 이들은 북한에서도 그래도 괜찮게 사는 이들이라며 지방에 보내진 정치범, 사라진 사람들, 연락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을 다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도 나중에 현실을 알게 됐지만, 자신도 남들을 많이 보낸데다가 아들 셋에 손자 여러 명까지 ‘인질’이 많아 심경은 복잡한데 하고 싶은 말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며 자신도 거기 가족이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싸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항의하는 것도 아니고 내 느낌쯤은 말하고 싶었다는 심경도 털어놓았습니다.
양 감독은 ‘디어평양’을 만든 이후 가족과도 못 만나고 북한으로부터 사죄문을 쓰라는 말도 들었다며 깨져도 미워해도 가족이고,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족 얘기로 3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겨우 얻은 결론이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3월 남한에서 ‘굿바이 평양’ 이 개봉됐을 때 양영희 감독은 인터뷰에서 북한을 정전이 된 깜깜한 암흑에 비유하면서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따뜻하게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양영희 : 정전 장면이 있어요, 그 정전 장면이 저는 아주 상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전 그 장면이 우리 가족의 지금 상태고 북한의 지금 상태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까맣고 어둡고 빛이 없는데 사람들은 웃고 있어요. 물론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살아가자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 장면을 언제나 잊지 마시고 어두운 데서도 열심히 웃자고 한다 그렇게 따뜻하게 봐 주시면..
(Bridge Music / 용기를 주는 한마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 이미영 생활예술활동가
생활예술활동가 이미영 씨는 세상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건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 안에 있는 질문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이미영 씨는 편안한 직장생활에 안주하던 생활을 벗어 던지고 인터넷을 통해 후원금을 받아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와 준 분들에게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열심히 그림 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영 씨는 여행을 다녀와 ‘어슬렁의 여행 드로잉’ 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미영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나 작가도 화가도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강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미영 : 사람에게는 혹은 사회에는 나이와 위치에 따른 역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원래 그런 것들, 그냥 이래야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는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할 것도 많았습니다. 호기심도 많았고요. 하지만 나이가 먹고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사라져 가죠
저도 세상이 정해 놓은 어떤 길을 따라서, 정답을 따라서 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가슴 떨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제 스스로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 때 그리고 내가 선택한 줄 알았던 것들이 남의 요구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느라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럴 때 마다 저는 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무엇에 제가 끌리는지 그리고 어떤 것에 행복해 하지 않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봐 주는 게 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창작자가 돼야지 하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가 예술가가 돼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어른들은 한 우물만 파라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 우물만 파면 그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다들 못 그린다고 하세요. 나는 그림을 못 그려 라는 얘기를 대부분 많이 입에 달고 사시거든요. 하지만 못 그리는 게 아니라 다들 안 그려 보신 거에요. 글씨체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겐 다 자기의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꺼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 역할이 나눠져 있잖아요, 정치도 딴 사람이 해야 되고 글은 기자가 써야 하고 예술은 예술가가 해야죠. 여러분도 글도 쓸 수 있고 나도 정치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그림도 그리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에게 묻기도 합니다. 남이 설정해 놓은 질문에 대한 답, 그런 것 말고 원래의 그런 거 말고 이래야 하는 거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내가 어떤 상자에서 길러지고 있는지 원래 그런 게 무엇인지 왜 그런 건지를 알아 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서 내 안의 소리를 들어야만 내가 다음에 어디로 발걸음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보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질문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Bridge Mussic / 내가 최고야)
지난 22일 방송된 노래자랑 프로그램인 MBC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에서 한동근과 박수진이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제 결승만 남겨 놓고 있는데요, 두 사람 중 우승을 차지하는 사람에게는 3억원, 미화 30만 달러의 상금과 고급 자동차가 상으로 주어지고 곧바로 가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뒷받침도 받게 됩니다. 박수진 양이 이날 불렀던 가수 박미경의 노래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 들으면서 오늘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
( 음악 :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 /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