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만나자] 북한에 번지는 한류, 희망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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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 이민복 : 거짓 역사로 그것을 다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넣으면 무너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북한도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진실이 들어오면 끝나기 때문에 그들의 최선 최후의 통치수법이 폐쇄입니다.)

총알이나 대포는 철벽을 뚫지 못하지만, 자유세계의 온갖 얘기들이 담긴 영화나 드라마는 그 철벽을 뚫고 북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까지 다가갑니다. 드높은 휴전선 철조망은 사람들의 왕래를 막고 있지만, 진실을 담은 전단은 철책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철새들처럼 가볍게 철책을 넘어 주민의 손에까지 이릅니다. 그렇게 철책을 넘어 전파되는 남한 사람들의 사는 얘기와 자유세계의 소식은 주민들의 가슴에 새로운 삶을 꿈꾸는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Act : 드라마 '겨울 연가' 가운데)

우연히 듣게 된 한 곡의 남한 노래,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한 장면이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져 삶의 새로운 희망을 키워주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라디오 문화마당 –세상을 만나자 오늘은 북한주민에게 다가가는 남한의 대중문화, 한류가 과연 북한 주민에게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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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리듬체조 선수로 또 김정일 위원장을 위한 이른바 기쁨조라는 무용단의 일원이었다 탈북해 2002년 남한에 입국한 오영희 씨도 그런 계기로 꿈을 이루었습니다. 국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외국에 나갔을 때 남한 선수들이 몰래 건네준 카세트 녹음 테이프에 들어 있던 남한 노래들이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오영희 : 저는 84년도부터 남한 노래를 들었어요, 몰래.. 나만 들은 게 아니라.. 우리 운동하는 사람들은 외국 경기를 많이 다니잖아요, 청소년 선수권 대회 같은 데 나가면 남한 선수들도 만나거든요. 그러면, 80년대 초반, 중반까지만 해도 테이프 있잖아요, 카세트 녹음기 테이프가 유행이어 가지고요 공 테이프를 받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지고 와서 틀어보면 노래가 들어 있는 그런 테이프를 주곤 했어요, 다섯 개, 여섯 개, 열 개씩 받을 때도 있는데 그 중에 어느 한 개는 노래가 들어 있더라고요.

오영희 씨는 장군님 찬양 일색 노래만 듣다가 실생활을 그대로 담은 남한 노래 가사 내용에 마음이 끌렸다고 합니다.

오영희 : 가사 자체도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과 너무 똑같이 만들었으니까.. 우리는 말끝마다 그냥 장군님이 좋다, 김일성이 좋다, 김정일이 좋다, 나라를 위해 뭐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남한 노래는 실생활을 그대로 표현해서 노래에 담았으니까 거기에 혹하는 거죠, 재미있고요.

북한도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 즉 고전음악은 많이 보급돼 있다고 합니다. 특히 무용 분야 가운데 발레는 한때 사치스러운 예술이라고 해서 중단시켰다가 음악과 무용 분야에 발레가 가장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 다시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리듬체조의 경우도 외국에 나가 경기를 가질 때 외국음악을 경기용 음악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분야의 음악은 따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두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차단돼 있다고 합니다.

오영희 : 북한의 예술이란 게 아주 닫혀 있다고 봐야죠. 국제 경기에 가면 아무래도 세계와 발맞춰 가야 하잖아요, 세계 선수권대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에 가려면.. 북한 노래 가지고는 국제 경기에 갈 수 없거든요, 북한 노래를 누가 알아요.. 그러니까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명곡 같은 곡은 많이 듣죠, 진짜 음악에 관련된 사람들, 연구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내가 있을 때는 디스코가 막 유행했을 때였거든요, 지금은 뭐 랩도 나오고 음악 종류가 많잖아요, 전문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걸 연구해요, 하지만 그걸 대중이 알게 하게끔은 안 하는 거죠. 그냥 자기네 속에서만 하고 김정일 우상화하는 거기에 맞게끔 하는 거죠. 그러니까 폭이 넓지는 않아요, 미국이나 러시아나 예술 하는 나라, 이탈리아나 여기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다 폭이 넓잖아요, 문화나 예술, 영화에 대해서.. 그러나 북한은 폭이 너무 좁거든요..

북한에서도 꽤 오래전에 이미 외국 영화를 몰래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영희 씨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한 영화는 북한으로 들어간 지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외국영화는 훨씬 이전부터 북한에서 볼 기회가 많았다고 합니다.

오영희 : 남한 영화는 못 봤어요, 그러나 홍콩 영화는 많이 봤어요. 그리고 1997년도에 미국 영화 타이타닉이 나왔잖아요. 99년인가 2000년에 그 영화를 몰래.. 비디오로 막 돌아다녀요, 남한에서 번역한 자막이 밑에 나왔어요, 97년도.. 96년도부터 미국영화, 홍콩 영화를 많이 봤어요.

물론 당시도 외국영화를 보는 건 위험 부담이 큰일이었습니다.

오영희 : 혼나요 그거 잡히면 진짜 죽는 거예요

오영희 씨도 최근에는 북한에서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는 얘길 들었다고 합니다.

오영희 : 최근에는 드라마도 막 몰래몰래 들어와서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진실 알려질까 두려운 북한 정권에 가장 큰 위협


최근 북한 주민이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은 중국을 통해 영상물이 저장된 DVD나 USB 등의 음악이나 영상 저장매체와 재생 기기들이 많이 흘러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이 '알'이라고 부르는 CD, DVD와 녹화 재생기 등은 장마당에서도 거래가 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하죠.

이렇게 외부로부터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닙니다. 종교 탄압이 가장 심한 나라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선교 자료가 이들 매체를 통해 들어가기도 하고 북한 정권의 거짓 실체를 폭로하는 내용도 따라 들어갑니다.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입니다.

오랫동안 북한에 진실이 담긴 전단과 함께 의약품 같은 구제물품 등을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보내고 있는 탈북자 이민복 씨는 작년 RFA 초대석 인터뷰에서 진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철저하게 폐쇄 전략으로 나가는 북한 정권의 철통같은 울타리를 자유롭게 뚫을 수 있는 것이 풍선 삐라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민복 : 거짓 역사로 그것을 다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넣으면 무너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북한도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진실이 들어오면 끝나기 때문에 그들의 최선 최후의 통치수법이 폐쇄입니다. 풍선을 사람들이 삐라만 생각하는데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종합적인 폐쇄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주민들에게 직접 들어가는 그런 좋은 수단이죠.

북한 당국은 남한 드라마나 영화가 주민들에게 펴져 나가자 잔뜩 긴장하고 엄격하게 단속하고 처벌을 시도하려 했지만 최근에는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속을 해야 할 단속반이나 고위층도 모두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뇌물을 받고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다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죠. 최근 조선중앙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봐도 주로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이 대부분이고 혁명 전적지 소개나 혁명 붉은 기를 받은 부대 소식을 전하는 병사의 고향소식, 큰물 피해를 막자는 과학영화 등 지도자 중심, 체제 선전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만든 인터넷 언론매체인 '바이트'가 지난 5월 게재했던 '북한, 한류에 빠지다' 라는 기사에서는 세 명의 탈북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북한에서의 남한 대중문화 열풍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6살의 이창섭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탈북자는 2003년부터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봤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나오기 전에 남한 텔레비전 드라마 '아이리스'와 '지붕 뚫고 하이킥'을 봤다고 하는데요, 아이리스를 보면서 남한 경찰의 기동력에 놀랐고 정보통신 면에서 많이 발전한 남한의 모습을 보고 남한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인공인 배우 이병헌은 남자가 봐도 정말 멋있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신의주에서 보안소 보안원으로 불법 영상물을 단속하면서 북한 주민 여러분이 알이라고 부르는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담긴 CD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창섭 씨는 남한 가요도 자주 들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효리와 장윤정의 노래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남한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 외국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소녀시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무들과 소녀시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북한에서 이른바 아이돌 그룹이라고 부르는 10대 인기 그룹보다는 트로트가 더 인기라고 하는데요 장윤정의 '어머나'. 설운도의 '누이' 박상철의 '자옥아', 김혜연의 '참아주세요' 등의 노래가 널리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탈북자 이창섭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는 친구들과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놀리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장윤정의 노래'어머나'입니다.

( 음악 : 어머나 / 장윤정)

대학생들의 인터넷 언론매체 '바이트'와 인터뷰를 가졌던 또 다른 여성 탈북자인 정수경 씨, 물론 가명인데요, 21살의 정수경 씨는 북한의 선전 영화에 질려 있다가 본 남한 드라마는 마치 '신세계'와 같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정 씨는 드라마 '유리구두' '황태자의 첫사랑' '완전한 사랑' 등의 남한 드라마를 봤다며 남한 사람들의 평상시 생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정수경 씨는 평양에서 비교적 형편이 좋은 고모 집에서 휴대용 컴퓨터인 노트북 앞에 모여 장마당에서 구한 DVD를 통해 남한 드라마를 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보위부에서 가택수사를 나오는 바람에 언니가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보위부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다가 뇌물을 써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 보위부 출신의 43세 이철호라는 가명의 탈북자는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장교들도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다 같이 보면서 얘기를 한다고 밝혔는데요,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본 사람은 머저리라고 불릴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철호 씨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옷차람도 따라 하고 말투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하고 다시는 것만 봐도 남한 드라마들 봤는지 안다고 말합니다. 이 씨는 우체국에서 전화를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몸에 붙는 바지를 입고 옷깃을 세운 남자가 '오빠야.. 어.. 알았어..' 하면서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그때 속으로 '저거 남조선 드라마 봤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이제 몰래 숨어 가슴 졸이며 남한 영화나 외국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끔 남북 분단을 다룬 영화에서 여전히 힘든 삶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모습, 고향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의 탈북 여성 오영희 씨는 남한에 온 이후 남북의 분단을 다룬 영화들을 자주 보면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나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면 중에는 북한의 현실과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남자 주인공이 북한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남쪽으로 가자고 얘기를 하는데 북한에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그런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오영희 : 노골적으로 남한에 대해서 그렇게 함부로 얘기 안 해요, 남한에 가자, 남한이 좋다 뭐 그런 거.. 누구한테도 얘기 안 하는 거죠, 그건.. 북한의 국경 지방에 있는 사람들 생각하고 평양 안쪽에 있는 사람들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국경 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좀 쉽게 생각할 수 있죠. 중국에도 왔다 갔다 하고.. 너무 못살고 못 먹고 그러니까 아예 이럴 바엔 그냥 탈북하고 말까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만 평양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생각 자체를 상상도 못하는 거죠. 남쪽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아요 그렇게.. 암만 친한 친구고.. 자기 가족 아니고서는 절대 남한이 좋다, 남한에 가자 이런 말.. 그런 말 했다가 그날로 없어지는데.. 그건 있지도 않은 거에요. 사랑하는 사이도 그런 말 안 해요, 그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인데.. 그 중점적인 걸 몰라요 남한 사람들은.. 쉽게 쉽게 다 얘기하는 줄 알아요, 그냥 생각은 하고 있겠죠. 함부로 밖에다 내뱉을 수 없죠, 언어에 대해 자유가 없잖아요, 북한은..

국제 경기를 많이 다니면서 외국에서 보고 들은 얘기가 많았던 오영희 씨였지만 가족에게도 그런 얘기는 조심스러웠다고 말합니다.

오영희 : 우리같이 외국에 많이 다니는 사람들도 불만이 있죠. 우리나라는 만날 잘산다고 선전하고.. 나도 그랬어요, 국제경기 갔다 오면 친언니가 물어보면 이불 뒤집어 쓰고 얘기했어요, 언니랑.. 이불 속 안에서.. '이번에 홍콩 갔다 왔는데 어때?' ' 그 나라는 어떻게 어떻게 산다..' 그러면 우리 엄마, 아빠는 진짜 막 그랬어요, 옛날 어릴 때부터 '말조심 해라, 말 조심해라, 벽에도 귀 있다..' 진짜.. 벽에도 듣는 귀가 있기 때문에 말조심하라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들었어요. 아빠 친구도 말 한마디 잘못 해서 영원히.. 정말 잘 아는 친구인데도 순식간에 없어진 것을 옆에서 아빠, 엄마가 다 봤기 때문에 우리 아빠,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진짜 그랬어요.. 저는 열네 살부터 외국 경기 다녔거든요, 그래서 외국에 대해 일반 사람보다 너무 많이 알고 진짜 깼었어요..

북한에서 11살 때부터 10년 넘게 리듬체조 선수활동을 했던 오영희 씨는 2002년 탈북해 남한에 입국했고 이듬해인 2003년 세종대학교 무용학과에 편입했고 현재는 세종대학교에서 리듬체조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영희 : 살아야 하니까 한국에 살려고 왔으니까.. 어린 나이에 온 것도 아니고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다시 선수로 뛰지 못할 바에는 무용 쪽으로 한번 전공해서 무용 쪽으로 하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더 낫지 않겠나라는 의견을 주는 거에요, 그래서 그 말 듣고 세종대학 현대무용과 3학년에 편입했어요.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외국에서 열리는 경기에 나갈 때면 북한 선수들과 마주칠 때도 있는데 편안하게 얘기도 나눌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합니다.

오영희 : 친구들도 왔었는데 (한숨).. 그냥 얘기도 하고 뭐..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했는데 결국은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오래 만나지 못했어요..

오영희 씨는 리듬 체조 선수를 하다 김정일 위원장을 위한 이른바 기쁨조에 뽑혀 생활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더는 말하기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래전 남한 언론에서 그 부분을 자세히 얘기한 후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 친지들이 큰 곤경에 처해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ACT : 국경의 남쪽)

남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치는 평양이나 북한의 고향 모습은 북한 땅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게는 가슴 아픈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고 반면 북한으로 들어가는 남한의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보이는 남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새로운 세상의 모습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에게 새로운 삶을 꿈꾸는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라디오 문화마당- 세상을 만나자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