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장균입니다.
여름은 사람을 흩어지게 하고 겨울은 사람을 한곳에 모이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산과 강으로 혹은 바다로 사람들이 흩어지지만, 겨울엔 따뜻한 불가로 사람이 모인다는 뜻인데요,
불기가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면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죠, 그래서 가족은 살아가는 온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가까운 가족과 며칠, 몇 달도 아니고 수 십 년을 헤어져 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습니다. 남북 북단과 민족의 비극, 6.25전쟁 때문이죠.
남북으로 갈려 사는 이산가족의 애타는 한을 풀어주기 위해 가까스로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지속해 오다가 그나마 최근에는 남북 경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무렵,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아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어하는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슬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는 마음에서 오늘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는 이산가족의 슬픔과 한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합니다.
(음악 : 향수 / 이동원, 박인수)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수십 년이 지나도 그 가족과 살았던 고향이 헤어지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에 담긴 고향은 우리 모두가 가슴에 담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정서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운 풍경입니다.
이 노래 '향수'를 노래한 가수 이동원 씨는 고향은 인간에게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동원 :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영원한 게 있지요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인간의 어떤 기본 정서까지 변한 건 아닐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란 건 영원한 테마가 아닌가 싶어요
(Bridge Music)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에게 고향과 부모님, 특히 어머님은 둘이 아닌 하나로 늘 떠올려지는데요 실향민 가운데 한 분인 남궁 산 씨는 자신의 생사를 모르고 돌아 가셨을 어머님이 얼마나 가슴 아픈 세월을 살다 돌아가셨을까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이장균 : 고향을 떠올릴 때 마다 가장 생각나는 것은 뭔가요?
남궁 산 : 가장 생각나는 건.. 부모님 밖에 생각이 안나요 저는 제가 완전히 불효라고 느껴지는 것이 제 생사를 확인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제가 부모님 앞에서 죽었더라면 그 분들이 체념을 했을텐데 패잔 인민군의 습격이 들어와서 50년 10월에 교전하다 나왔는데요 나오니까 들리는 얘기가 어머니가 살해된.. 죽은 사람들 전부 가마니로 덮어 놓은 걸 일일이 들치면서 확인을 하셨다고 그러는데 그걸 보고 나왔다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 분들이 얼마나 속에 응어리를 안고 돌아가셨겠어요
며칠이면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영영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으니까 정말 본의 아니게 불효자가 됐어요
(음악 : 잃어버린 30년 / 설운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인 지난 1983년 6월 30일에 시작된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밤새워 보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남한 전국이 눈물바다였죠, 6•25전쟁 때문에 뿔뿔이 가족이 흩어졌고 그 이후에는 헤어진 가족보다 입에 풀칠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바빴던 날들이기에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지나서야 찾게 된 어머니 아버지, 삼촌 형님 누나 동생.. 텔레비전 화면에서 이들이 소리치며 상대를 부르며 반가움과 한으로 통곡할 때 보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웠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 대전에 사는 오빠 제주에 사는 누이의 만남)
1983년 6월 30일 KBS 방송이 휴전 30주년 기념으로 90분 단발성 특집으로 기획됐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예상을 뒤엎고 그해 11월 14일까지 4백53시간 방송이 되면서 무려 138일 연속 생방송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방송으로 모두 만 백80여 건의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 만남의 순간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6•25 전쟁이 남긴 상처가 당사자들에겐 얼마나 깊고 아픈 것인가를 새삼 실감케 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빈 주먹으로 모두 그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일어서게 했던 힘은 언젠가는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Bridge Music)
전쟁통에 헤어진 사람들이 남한에서는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다시 만날 수는 있었지만, 남북이 분단돼 양쪽에 헤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가까워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상봉지원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극히 일부가 만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만나는 이들이나 지켜보는 이들에게나 늘 애절하기만 합니다
( 이산가족 상봉 울음소리)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단됐다 거의 2년 만에 이루어진 지난 2009년 9월26일부터 10월1일까지 있었던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에서 60년 동안을 헤어졌다 겨우 2박3일을 만나고 헤어지는 최충원 씨 형제의 이별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최충원 씨 : 형님 이제 못 만나 자꾸 그러면… 형님 10분이라도 더 만나야지 )
(남측 가족 : 오빠 건강하세요… 우리 오빠 건강하세요… 오빠 손 좀 만져봐야지.)
현재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2만8천 여명에 이릅니다. 이중 5만1500여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80%가 70세 이상 고령입니다. 한 해에 3000명 정도가 이산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지난 2000년 이후 2010년 11월까지 모두 18차례의 상봉이 이뤄졌지만, 신청을 하고도 뜻을 이루지 못한 이산가족이 7만 3천여 명이나 남아있습니다.지금처럼 남북이 각각 백 명씩 만나는, 연간 한두 차례의 일회성 행사로는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만 5백 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산가족상봉을 주관하는 적십자사에는 기다리다 지친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북쪽 동생이 분명히 나를 찾을 텐데. 명단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 "10년 전에 신청했는데 왜 또 탈락했나. 적십자사가 힘 있고 특별한 사람만 상봉하게 해주는 것 아니냐." "아버지는 간암으로 투병 중이십니다. 북쪽의 가족을 그리면서 매일 울고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런 애절한 사연들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우려해 상봉 행사당 참가 숫자를 남북 100명씩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상봉의 행운을 잡기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지친 이산가족들로부터는 상봉은 포기하더라도 생사확인이나 편지교환이라도 하게 해달라, 또는 화상 상봉을 더 늘려달라는 간절한 바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음악 : 약수 뜨러 가는 길 / 안치환 )
안치환 씨가 부른 '약수 뜨러 가는 길'입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 살 돈은커녕 죽 끓여 드릴 양식도 없어 그저 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아들, 약수라도 떠드리려고 이른 아침 살을 에는 찬 바람을 맞으며 오리 길 약수터를 다니는 아들의 아픔이 묻어 나는 노래죠
병들어 누우신 우리 엄마 드리러 약수 뜨러 가는 이 길은 왜 이리도 추우냐
봄은 아직 멀었고 새벽바람은 찬데 오리 길 안개를 걸어 약수 뜨러 간단다
새벽마다 이슬을 모아 약수 떠다 드려도 우리 엄마 아프신 엄마 병은 점점 더하고
봄이 와야 나물 뜯어다 죽을 끓여 드리지 기슭 밭에 보리 패어야 약을 사다 드리지
읍내에 병원은 재 넘어 삼십 리 멀기도 멀지만, 돈이 없어 못 간다
순이네 달구지에 엄마 모시고 가면 고갯길 삼십 리야 반나절이면 되지
종일토록 나물 뜯어다 한 푼 두 푼 모아도 우리 엄마 병원 갈 돈은 어림도 없구나
봄이 와야 나물 뜯어다 죽을 끓여 드리지 기슭 밭에 보리 패어야 약을 사다 드리지
(음악 : 약수 뜨러 가는 길 / 안치환 )
며칠이면 돌아오겠다며 나선 길이 몇 십 년,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신 어머님이 병들어 누우신 것 아닌지 눈물로 수많은 밤을 지샌 이산 가족들의 아픔과 한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지 오늘도 북한 땅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임진각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북에 두고 내려온 이산가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장균 : 원래 고향이..
실향민 : 황해도입니다. 황해도 장연읍이라고요 여기서 얼마 안되죠, 저기 강 건너는 장단이고 저희는 황해도 해주 근방인데 한 2백여리 채 안될 겁니다. 가보지 못하고 매년 와서 이렇게 봅니다 그냥..
(음악 : 직녀에게 / 김원중 )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칼에 찔린 상처도 불에 데인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무는데 사랑하는 피붙이,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깊이 패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인민을 위한 정치는 무엇인지 북한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지키지도 못하는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은 다들 이제 기대를 접었겠지만 눈을 감기 전에 그리운 그 얼굴 한번 눈앞에서 보고 한번 쓰다듬어 보고라도 죽겠다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외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연말기획 '아물지 않은 상처- 이산가족', 김원중의 직녀에게 들으면서 마칩니다.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
(음악 : 직녀에게 /김원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