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25년 전 담화 다시 꺼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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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지난 3월 1일자 노동신문 3면 하단 중앙에 싣고 있는 "사회주의 위업수행에서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고귀한 지침" 제하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서두에서 김정일이 1993년 3월 1일 조선노동당의 정책 이론 기관지 '근로자'에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를 "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 노작"이라고 소개하면서 사회주의 수호를 위한 "강령적 문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내용부터 소개해 주실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작'을 집대성한 《김정일선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작'을 집대성한 《김정일선집》.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현웅: 붕괴 직전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회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생활에서 ‘집단주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끊임없이 발전 완성하여 인민대중을 무장시키며, ‘영도자’ 중심으로 일심단결하여 뭉치고, 사회주의에 대한 도덕적 의리를 지키며, ‘사회주의’는 금성철벽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북한이 처한 유례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모든 당원과 근로자들이 사회주의를 신념화, 도덕화하고 집단주의 위력을 높이 발휘하여 북한 땅에 인민의 낙원, 천하제일의 강국을 세우자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이 기사가 근거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는 김정일의 이른바 '노작'은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주의 붕괴 원인을 진단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대내외적인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북한 사회주의 체제 운영 제 원칙들을 지켜야한다며 그 정당성을 옹호 선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붕괴한 원인을 자유진영에서 사회주의 국가 인민들에 대한 사상적 동요와 혼란을 조장하였고, 사회주의 국가 내부에서는 사회주의 배신자들이 생겨나 반혁명 책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다음, 1990년대를 전후하여 활발하게 전개된 바 있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이며 '병영식'이고 '행정명령식'"이라는 비판에 대해, 전체주의는 공산주의가 대적하고 싸웠던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쇼 독재'를 말하는 것으로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보장하고 있어 '병영식'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이며, 또한 사회주의는 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듯이 관리에서도 주인이므로 '행정명령식'이라는 비판은 사회주의를 훼방하려는 궤변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사상과 체제운영 원칙들인 사회주의 신념 체득화, 도덕적 의리 고수, 사회정치적 생명체 인식, 주체의 사회주의사상 발전 완성, 민주집중제, 사회적 집단주의, 중앙집권적 계획제도 등을 철저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북측이 25년여 전에 발표된 김정일의 '노작'을 현시점에서 북한 사람들이 지켜야할 '지침'으로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현웅: 김정일의 '노작'이 발표된 1993년은 북한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직후가 됩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순식간에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역사적 상황이 '사회주의의 자본주의 회귀'라는 어느 정도 합의된 결론에 도달해 있지만, 당시로서는 어느 누구도 공산권 붕괴 도미노 현상을 정치사상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이 '강령적 문헌'은 북한이 이런 상황을 2년여 정도 관망한 다음 북한체제가 어떻게 나갈지를 밝힌 체제운영 방침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노작' 발표의 배경에서 볼 때 북한은 현재 자신이 처한 대내외 정세를 당시의 상황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를 자초하고 있고, 장성택과 김정남에 대한 극단적인 비정상적 제거로 인해 세습독재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근본적인 불신과 지배계층의 동요 현상 심화 등으로 사상적, 도덕적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 경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유일한 후원국 중국마저 석탄 수입 중단 등 제재에 적극 나서고 있어, 소련과 동구공산권이 몰락했을 때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면초가 국면에서 살길은 지금까지 고수해온 체제운영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역사상 가장 힘들었을 때 발표한 김정일의 '강령적 문헌'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낼 '모범적 지침'으로 평가하고, 이를 다시 꺼내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이현웅: 이 지침의 핵심은 사회주의의 몰락이 자유진영의 끊임없는 사상적 혼란 주입과 사회주의 내부의 배신자 출현 및 인민대중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의 부족 때문이지 사회주의 사상에 잘못이 있기 때문은 아니며,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졌어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으므로 기존 북한 사회주의체제 운영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며 사상적 신념과 도덕적 의리, 수령을 중심으로 한 일심단결을 통해 닥친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체제전환 직후 일시적인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곧바로 극복하였으며, '공산독재'의 사슬에서 풀려난 '인민'들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김정일의 1993년 '노작'은 북한과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 복지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폐쇄적이고 비인간적인 지침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이러한 케케묵은 '노작'을 다시 강조한 것은 북한 주민의 장래를 암울하게 만들 수 있는 실패한 지침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것입니다.

박성우: 북한 지도부가 꺼내든 25년이나 된 지침이 외부 정보가 시시각각 유입되는 현 시점에서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