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지난 2월 20일자 2면 하단과 3면 일부에 실린 ‘혁명적 사상공세로 만리마시대 본보기정신의 위력을 더욱 높이 떨쳐나가자’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2월 1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기남, 강원도 당위원회 위원장 박정남과 도 내 당 선전일군, 학습과 강연 강사, 선동원, 선전원 등 사상과 관련된 중앙 핵심간부와 도내 최 일선의 일군들까지 모두 참석하여 개최한 ‘강원도사상일군회의’를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강원도정신’을 더욱 높게 발휘하기 위한 대책 등을 토의하는 회의였는데요. 기사 작성자가 본지 기자나 특파 기자가 아닌 ‘조선중앙통신’으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이 기사가 갖고 있는 대내외 중요성과 비중이 다른 기사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성우: ‘강원도정신’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걸 강조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되나요?
이현웅: 이 기사에서 밝힌 ‘강원도정신’은 “김정일의 유훈과 당의 노선 및 정책을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려는 강원 땅 인민들의 결사투쟁정신”을 일컫습니다. 또한 ‘강원도정신’의 명명과 ‘강원도정신’을 ‘시대정신’으로 부르게 한 사람이 김정은이라는 점을 높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강원도정신은 사상을 혁명승리의 만능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사상중시노선을 일관하게 구현해온 김정일과 김정은이 심어주고 폭발시켜 주었다“며 두 사람을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 통치자만이 갖고 있는 ‘사상 창조자’로서의 ‘김정은 만들기’가 시작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북한은 사상을 가장 중시하는 ‘이념 또는 사상 국가’입니다. 당규약과 헌법에 북한 정권의 최종 목적을 ‘온 나라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고 규정하고 있듯이 앞으로 김정은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김정은주의’라는 ‘사상창조’일 수밖에 없는 데요. 무슨 무슨 ‘주의’라는 것은 갑자기 나타날 수 없습니다. 먼저 이를 받쳐줄 풍부한 ‘정치적 또는 정책적 업적’들이 있어야 하고 이를 ‘사상’으로 만드는 작업 과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북한이 ‘강원도정신’을 김정은의 ‘사상창조’ 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강원도, 특히 원산 지역에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원산구두공장, 갈마식료공장, 원산군민발전소 건설 등 김정은 집권 이후 집중적으로 건설한 정책적 업적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다시 말해 위에서 말씀드린 ‘풍부한 정치적 업적’을 강원도에서 찾게 된 것이지요.
조선노동당 선전비서 김기남의 ‘강원도사상일군회의’ 참석은 중앙당 차원에서 쏘아올린 ‘김정은 사상창조 업적 만들기’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주의도 처음엔 1995년 1월 1일 평양 근처 ‘다박솔 초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군정치, 선군사상, 김정일주의로 단계를 밟아 격상되었지요.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김정일의 구상과 상징으로 되었기 때문에 김정은의 사상창조 업적은 ‘애민과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여 차별화하려는 의도에서 ‘강원도정신’을 앞세우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박성우: 아직까지는 ‘강원도사상’으로 격상하진 못하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되겠군요?
이현웅: 그렇습니다. 아직 ‘강원도정신’이 ‘강원도사상’으로 격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로써는 ‘노력동원 구호’에 불과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원도정신’은 이 기사에서 부제로 달고 있는 “강원도사상일군회의 진행”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앞으로 ‘강원도사상’으로 그 위상과 역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노동신문을 통해 주장해온 ‘강원도정신’은 만리마속도 창조, 자력갱생 실현, 불굴의 정신력 발휘, 주체사상의 정당성 과시, 사상사업과 정치사업에 기반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등으로 요약됩니다. 특히 ‘강원도정신’의 기풍은 ‘항일의 연길폭탄정신’과 ‘전화의 군자리 혁명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강원도정신’은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시절에 창조된 각종 정신과 주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상창조의 ‘전통계승성’ 때문이지요. 김정일의 선군사상도 그 시원을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에서 찾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경우도 ‘혁명전통 계승’이라는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김정일의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치적’을 부각시킬 것입니다. 이 같은 징후들은 ‘정신’을 ‘사상’으로 만들어 갈 때 나오는 것들로, 앞으로 ‘강원도 정신’이 ‘강원도 사상’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그러면 앞으로 강원도사상이 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건가요?
이현웅: ‘강원도정신’이 ‘강원도사상’으로 격상되더라도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체에 비유하면 주체사상이 머리와 뇌수 역할을 한다면, 선군사상은 골격에 해당하고, ‘강원도사상’은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 시점에서 ‘강원도정신’이 ‘강원도사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노력동원 ‘구호’의 성격에서 벗어나 ‘사상’의 반열에 오를지는 주민생활 향상을 위한 뚜렷한 업적을 얼마나 많이 쌓느냐에 달려 있다 할 것입니다.
박성우: 북한이 ‘사상’을 하나 더 만드는 과정에 있다는 건데요. 이런 시도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이현웅: 북한에서 어떤 정신이나 사상의 창조 활동은 김씨 일가에게 있어서 독재 권력의 아성을 지키고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해당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정치적 자유와 인간존엄성을 말살하는 억압기제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정신과 사상 창조가 활발할 때일수록 주민생활이 향상되기보다는 더욱 궁핍해지고 정신까지 피폐해진다는 슬픈 역설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에서 ‘사상’이라는 게 주민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역할을 해왔는지 한 번쯤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신문 다시 보기’,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