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7월 15일자 5면에 실린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로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대남 협박성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6일 베를린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구상’과 관련하여 대통령 개인에 대해 상도를 벗어난 수준의 비난을 퍼붓고 있으며,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반미’와 ‘외세배격’이라는 폐쇄적 세계관을 기준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구상’에서 내세운 ‘대화의 조건’에 대해서는 전면 거부하면서 얼토당토않은 대화 조건을 역으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정부가 대북정책 기조와 방향을 제시하자마자 노동신문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공갈과 협박에 나선 것은 북한의 ‘신정부 대북정책 길들이기’ 책동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측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좀 더 내용을 소개해 주실까요?
이현웅: 먼저 ‘한반도 평화구상’에 담긴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데요. 첫째,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다섯 가지 방향으로 ①평화유지, ②한반도 비핵화, ③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④한반도 신경제지도 만들기, ⑤비정치적 교류 협력 등을 밝혔습니다. 둘째, 4대 대북원칙으로 ①북한붕괴 반대 ①흡수통일 반대, ③인위적 통일 불추구 ④대북 적대시 정책 불추구 등을 선언하였습니다. 셋째, 대북 제안으로 ①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교류, ②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 ③적대행위 중단, ④정상회담 등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기사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에 담긴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수용하기보다는 전면 거부하였으며, 그동안 드러난 대통령의 대북 발언과 조치 등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인격적인 비난에 많은 양을 할애했습니다. 북한이 선전하고 있는 ‘고매한 공산주의 도덕’과는 거리가 먼 매우 조잡한 기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한 평가인데요. “미국의 상전과 손발을 맞추어 북한의 핵 폐기를 유도하고 압박하는데 선차적인 관심과 목적”을 둔 것이 ‘한반도 평화구상’이라고 규정하며 현 남북대결을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소리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인격적 비난인데요.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불의한 용어를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내가 아닌 베를린에서 발표한 점을 꼬집어 “금수도 자기 둥지를 잊지 못한다”며 대통령을 금수에 비교하였고, “온갖 비굴한 모습으로 지지를 구걸한 민족의 수치”라며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비하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북 제안에 대해 “맥도 모르고 침통 빼드는 얼치기 의생”, “푼수 없이 놀아댔다”는 등 인격적 모독을 이어갔습니다.
셋째, 남북 정상회담 등 조건 제시와 관련해서는 “가소로운 망발”, “파렴치한 궤변”, “도적이 매를 드는 격”, “철면피하고 누추하다”는 등 본질적인 내용 평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인격비하의 막말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이 이런 비난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길들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지적하셨는데요. 그렇게 판단하시게 된 근거를 좀 더 설명해주시죠.
이현웅: 먼저 북한의 대남 ‘핵 공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을 “핵 강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는 게 “괴롭더라도 인정해야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다음은 핵 강국인 북한과 손을 잡고 미국과는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경우 “북한 핵을 두려워하거나 문제시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책임 있는 핵 보유국으로서 핵 전파방지의무를 지키고 세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처신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전임자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며 을러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 추종 행위를 반성하고,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한 태도와 입장을 대내외에 선포하며, 기존 대북 강경정책을 전환하고, 그 증표로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운영 재개, 탈북 여종업원 송환, 전민족적인 통일 대회합 개최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박성우: 내용만 놓고 보자면, 북측이 항상 남측 정부에 요구하던 바를 다시 한번 반복한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있는 듯 하네요. 남측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측의 비난이 예전 정권 때와는 달리 좀 일찍 시작됐다는 점이죠. 위원님, 북측이 이렇게 나온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이현웅: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에서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한반도 안보정책과 대북정책 구상을 밝혀온 바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주요국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를 계기로 자국의 정책 구상을 밝히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정상들의 일반화된 외교활동이기도 합니다. 이번 베를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도 여기에 참석하는 각국의 정상들에게는 자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무대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런 국제무대를 활용한 한국 대통령의 정상적인 외교활동을 인격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매우 비이성적인 태도이며 비난의 여지가 많은 불량국가의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의 비난 배경으로 첫째, 김정은이 집권 6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국제정치 무대에 정식으로 등단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북한이 한국과 ‘정체성 경쟁’을 지속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비판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데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엄청난 물자와 현금을 지원받던 시절에도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 정책에 대해 날 선 비난을 퍼부은 바 있습니다. 셋째,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높은 위상과 역할을 깎아내리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대통령에 대한 인격적 흠집내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길들이기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남측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북측의 기싸움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구태의연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 다시 보기’,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 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