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과 교육, 의료,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는 재미한인의사협회의 최치시 박사. 최 박사는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심장내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네차례 북한의 의료진을 미국에 초청해 종합병원과 주요 대학을 방문하고 연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최 박사는 또 2004년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을 돕기 위해 미국 민간 협력을 이끌었고 휴스턴 시 박물관에 북한의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는 문화교류사업의 성사를 위해 2008년에는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미래에는 북한과 에너지 협력 사업을 펼쳐 그 수익금으로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는 최치시 박사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수일 기자
: 처음 북한의 의료단을 초청한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최치시
: 2천5년입니다. 처음에는 3박4일 단기간 방문으로 초청했습니다. 이곳 메디칼 센터와 라이스 대학을 보여줬습니다.
전
: 초청한 분들은 북한에서 무엇하는 분들이었습니까?
최
: 북한에서 가장 크고 좋은 병원이 적십자병원이라고 합니다. 한 분은 그 병원의 외과 부원장이고, 또 한 분은 내과 부원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 관료 한 분 해서 모두 세 사람이 왔습니다.
전
: 그 분들의 의학지식이나 전문 기술 수준은 어떤지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까?
최
: 대부분 그분들은 구라파 그러니까 유럽에서 교육을 많이 받았더군요. 내과 부원장은 의과대학을 체코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북한은 동 구라파 국가들, 그러니까 동독, 소련 등과 외교관계가 있어서 거기와 교류하면서 서양 의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 북한 의사들이 미국에 와서 공부도 하고 배우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교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북한의 의료 수준이 떨어지니까요. 미국의 의사들도 북한을 방문해 주면 좋겠다고 하고요.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전
: 그 다음, 2007년에도 초청하셨죠?
최
: 처음 초청은 3-4일밖에 안되니까 관광처럼 보고 지나가는 식이 되더군요. 그래서 그 보다는 장기간 머물도록 해보자고 해서 3개월 연수 목적으로 다시 초청했습니다. 2천6년에도 하려 했지만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해서 초청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안했습니다. 2천7년에 텍사스 대학교의 엠디 엔더슨 암 연구소장이 북한의 암전문의 두명을 초청했습니다.
전
: 그 분들이 연수 기간에 연구를 좀 했습니까?
최
: 연수라고 하지만 연수 오는 분들은 미국의 의료 허가증이 없으면 환자를 보거나 진료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오는 연수자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미국인 의사를 따라 다니며 회진이나 컨퍼런스 회의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전
: 그러려면 영어를 잘 알아듣고 말을 해야 할텐데요?
최
: 그분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영어를 잘합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합니다. 자기 의사를 확실히 표현할 정도로 영어를 잘 합니다.
전
: 2007년 3개월 연수 이후 추가로 초청한 연수가 있었습니까?
최
: 그러니까 그해 3월부터 6월까지는 이들 암전문의가 왔고 그분들이 돌아간 뒤, 7월부터 3분이 심장 전문의 세 분이 왔습니다. 심장외과 한 분, 심장 내과의 두 분이었습니다. 텍사스대 의과대학 학장과 유명한 미국 심장 전문의인 닥터 쿨리가 함께 초청했는데요, 이 분들도 3개월 있었습니다.
전
: 그 후에도 초청이 있었습니까?
최
: 네, 2007년 12월에 7명을 단기 방문으로 초청했습니다. 의사 다섯 분과 의료관계 관료 두 분이었습니다.
전
: 의사분들은 어떤 분야 전공이었습니까?
최
: 그 때 온 분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었습니다. 폐 전문, 위장 전문, 심장 전문, 뇌 전문, 또 북한 의학협회의 고위 간부 등이 3박 4일로 와서 보고 갔습니다.
전
: 미국의 의료진을 북쪽에 보낸 경우도 있습니까?
최
: 이곳 휴스턴에서는 가지 않았지만 북한에 의료를 지원하는 의사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저희가 연락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북한에 갔습니다.
전
: 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최
: 플로리다주에 닥터 정이라는 심장외과의사가 계신데, 9년 전부터 평양에 직접 들어가 심장 수술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초청으로 휴스턴에 왔던 북한의 심장외과 의사도 닥터 정이 계시는 플로리다에 가서 견학하기도 했습니다. 닥터 정이 미국 의료진을 동행하고 북한에 가서 진료 지원을 하는 분이니까 잘 알죠. 현재도 계속 연락하고 있습니다.
전
: 심장 전문의 말고 다른 분야의 의사도 북한에 의료 지원한 분들이 있죠?
최
: 미조리주의 닥터 박이란 분이 있습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데, 지난 3년간 북한에 가서 의료 지원을 해왔습니다. 신경외과란 뇌질환, 척추에 관련한 분야입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뉴올리언스의 비뇨기과 닥터 우란 분이 미국팀과 같이 북한에 가서 의료 봉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외에도 달라스의 닥터 노가 1년에 한번씩 미국의료진을 대동하고 북한에 갑니다.
전
: 이 분들이 북한에 가서 시술도 하고 의료봉사를 하게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최
: 어떤 분들은 기독교 신앙적인 면에서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부모들이 북에서 태어나 월남해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온 경우로 부모들에게 북쪽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제 경우는 북한에 친척도 없고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냥 그쪽이 우리보다 힘드니까 도와줄 방법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의사분들마다 동기가 다 다릅니다.
전
: 아까 잠시 언급하셨지만 의료 교류는 정치적인 것이 되선 안되겠지만 북한이 핵 실험하고 미사일을 쏘면 미국 국무부에 초청 북한사람들의 비자를 신청하는데 영향을 받게되고, 결국 북한 핵문제에 따른 양국 긴장관계가 의료 교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최
: 미미합니다. 국무부에서는 다른 분야보다 의료분야 교류에 대해서는 훨씬 관대합니다. 핵문제를 떠나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경색된 상황에선 교류가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시도를 안하는것입니다. 국무부가 비자를 안 내주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이곳 텔레비전 방송국이 보도를 하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는데 그러면 미국인들에 대한 북한의 이미지가 안 좋게되죠.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초청을 삼가는 것입니다.
전
: 앞으로도 북한 의료진을 초청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최
: 저희들이 그 문제에 관해 이달 초 휴스턴에서 열린 재미한인의사협회 연차 총회와 학술대회 때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번 행사를 주관하면서 메디칼 미션, 즉 의료선교를 회의 의제에 넣어 다른 미개발국가도 있지만, 특히 북한에 대한 의료선교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나눴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의사분들 중에 북한을 공식적으로 방문해 의료봉사나 지원을 한 번이라도 하신 분들은 모두 이번 행사에 초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들은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보다 체계적이고 총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과 또 회원들 간 유기적인 연락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토론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북한과 교육 교류에 참여했습니다.
전
: 어떤 교류였나요?
최
: 평양과학기술대학입니다. 김진경 총장이 2천1년 설립을 위한 일을 시작한 뒤 그동안 자금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힘들어 하실 때 우리가 2천4년 휴스턴에서 평양과기대를 살리기 위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처음에 김진경 총장 혼자서 모든 일을 주로 했습니다. 우리들은 김 총장이 평양과기대를 추진하는데 협력자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아 당시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학교 총장인 말콤 길리스박사와 한국 포항공대의 박찬모 총장을 평양과기대 공동설립위원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저와 지금은 서울에 계시는 최광철 에스케이 건설 사장하고 주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과기대의 조직을 확장한 셈이죠. 그러면서 제가 휴스턴에서 길리스 박사와 후원자들과 함께 평양과기대 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의사니까 북한과 의료 교류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북쪽 관계자들, 특히 유엔대표부의 관계자들과 북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타진했는데, 그쪽 얘기가 의료관계는 핵문제와 상관없이 교류할 수 있다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전
: 북한 의료진의 차후 미국내 연수를 위한 초청 시기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최
: 북한 의료진 초청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초청한 데 따르는 비용은 모두 개인적인 후원금을 받아 충당했습니다. 북한에서 방문단이 오면 그분들 여기서 먹고 자고 머무는 동안에 드는 비용을 우리가 보증한다는 재정보증서를 국무부에 내야합니다. 그래야 국무부가 비자를 내줍니다.
전
: 개인적으로 후원한 분들은 누굽니까?
최
: 저희가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헌금을 받아 북한의료인 방문단의 여행비와 체제비를 댔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헌금만 받아 하다보니 재정적으로 충분하질 않습니다. 미국기관처럼 개인 독지가의 기부가 있으면 쉬울텐데 말입니다.
전
: 초청하는 대학에서는 그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습니까?
최
: 그것까지 부담하면서 초청하려하지는 않습니다. 독지가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라이스대에서 초청하는 경우, 초청에 관련된 서류는 해주는데, 재정적 부담까지 해주긴 현재로선 어렵습니다. 왜냐면 학교가 비용을 지출하기 위해선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학교에는 특정인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 규정에 맞아야 하는데 북한인의 초청은 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북한과 교류해 대화의 길을 트자는 뜻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제일 먼저 평양과기대 설립을 돕는 교육 교류로 시작했고, 그 다음이 의료 교류, 세번 째는 문화 교류입니다.
2006년에는 길리스 박사 부부와 우리 부부가 김진경 총장과 함께 평양에 갔었습니다. 북에 가서 평양과기대를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작년 2천8년에 두번째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문화교류 목적이었는데요. 그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희가 북한의 유엔대표부 관리들을 휴스턴에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부의 대사 공사 참사를 초청했었는데요, 휴스턴에 장기 연수온 북한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휴스턴을 방문한 김에 라이스 대학교와 텍사스 대학교 메디칼 센터도 둘러보는 일정도 있었습니다. 북한의 대표부 고위관리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을 보여주면 앞으로 대북 의료 교류도 지속적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또 미국내 굴지의 에너지 회사가 모두 휴스턴에 있습니다. 엑손 등 기름회사는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 여기 왔을 때 큰 에너지회사의 회장들과 간담회도 저희가 주선했습니다. 북한 대표부 분들도 외교관이니까 이런 기회가 미국과의 대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북 대표부 분들에게 휴스턴에 있는 박물관을 보여줬습니다. 거기에 한국 전시실이 있는데요, 그걸 보여주면서 전시실에 남한 것만 말고 북한 것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 사람들도 북쪽의 미술품이 있으면 전시해보겠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때가 뉴욕필하모닉 관현악단이 평양에서 연주한 2008년 2월에서 두 달이 지난 4월 정도였습니다. 북한 대표부 관리들은 북한의 고구려 유물을 전시한다면 1년까지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휴스턴 박물관 관계자들을 데리고 작년에 북에 갔습니다. 박물관측에서는 전시하기 전에 직접 유물을 봐야 한다고 해서 간 것입니다. 북한 정부차원에서 당국자들이 소장돼 있는 국보급 유물을 우리 방문단에 보여줬습니다. 주로 고구려 것이고, 발해 것과 고려 것도 있었습니다.
전
: 유물 종류는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골동품이나 도자기 같은 것이었습니까?
최
: 모든 종류가 다 있었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왕관을 비롯해. 신라시대 국보 유물과 마찬가지로 거의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고구려 유물이 많았습니다. 휴스턴 박물관 관계자들은 답사를 마친 뒤 전시 기간 6개월은 휴스턴에서 하고, 3개월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리고 3개월은 로스엔젤레스 박물관에서, 그래서 모두 1년 정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막 추진하려는데 북한 핵 문제가 터졌습니다. 우리가 작년 여름에 평양 갔는데 그해 말과 2009년 초에 핵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북한 유물을 전시 사업을 하려면 국무부에서 허가를 해야하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죠. 거기다 작년 8월부터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서 박물관 운영이 어렵게 됐습니다. 비영리 단체로서 운영자금의 바탕이 되는 헌금이 줄었기 때문이죠. 모든게 생각대로 잘 됐다면 올 4월에 전시를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사업은 보류상태입니다.
전
: 그럼 전시 계획이 취소된 건 아니죠?
최
: 죽은 건 아니고 한국이나 미국에서 재정적인 독지가가 있어 헌금을 한 다면 이곳 박물관 입장으로는 언제든지 전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데 정치적상황이 올 봄에 안 좋았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잘 될까 희망했었는데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도 북한과 관계가 호전이 안돼고 있습니다. 저는 인도주의적인 교류, 특히 교육, 의료, 문화 교류를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북한 유물을 미국 박물관에 전시하는 계획만 해도, 만일 성사되면 북한 유물이 1년간 전시되면서 미국내 언론도 많이 보도할 것이고, 그러면 핵으로만 알려진 북한이란 나라가 5천년의 문화 유산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미국 사회에 알릴 수도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북한측에 별도의 대가를 주지는 못하더라고 북한 유물을 전시하는데 드는 운반비와 보험비 등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전
: 하지만 아직 그 계획이 사장된 건 아니니 다행입니다.
최
: 여하튼 독지가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전
: 마지막으로 평양과기대는 언제부터 개교돼 가르칠 수 있습니까?
최
: 지난 9월에 [데디케이션 세러모니]건물 개관식을 했습니다. 준공식을 끝내고 개관식을 했습니다. 북에서 그때 공식으로 김진경 씨를 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내년 4월 경에 학생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고 6월 정도에 평양과기대에서 인터내셔날 심포지엄 국제학술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이 학술대회에 미국의 석학과 한국과 유럽의 유명 교수들을 초청하기위해 노력 중입니다. 한국은 아이티 정보통신의 강국이고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께서 현재 한국재단 이사장이니까 그 분야의 관련 인사를 불러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하는데 돈이 듭니다. 한국분은 자기돈 내고 방문할 수 있지만 미국의 유능한 교수에게 자비로 평양에 가서 강의하라면 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여행경비와 호텔 비용을 대줘야 합니다.
북한 사업하는데 모든 게 돈입니다. 돈이 있으면 인도적인 좋은 사업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해봤자 산발적으로 소규모로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평양에 가서 의료선교나 고아원 도와주는 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그쪽과 대화하면서 의료봉사 하려면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돼야합니다. 그래서 재정적인 후원자를 개인적으로 만들기 어려우니 경제사업을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너지 사업을 추진해 거기서 이익이 있으면 이런 교류부분에 재투자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입니다. 여하튼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봐야죠.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과 교육, 의료, 문화 교류 사업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재미한인의사협회의 최치시 심장내과 전문의사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