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언론인협회 송광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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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올 1월 북한을 방문하자마자 억류된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의 임현수 목사. 아직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대북지원 사업을 해온 임목사의 활동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송광호 전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은 5월 초 한국에서 열린 재외동포언론인협회 모임에서 임 목사의 대북 지원활동과 그의 억류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임 목사처럼 캐나다 시민권자이며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는 송광호씨는 아무리 오랫동안 북한주민을 돕고 북한당국과 교류를 하는 해외동포라도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큰 위험이 따른다고 경고합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재외동포언론인협회의 송광호 고문을 모시고 임현수 목사 억류에 얽힌 얘기를 들어 봅니다.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송광호 고문 (사진-연합뉴스).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송광호 고문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수일: 임현수 목사가 110번이나 북한을 방문해 북한 주민 지원사업을 했다고 하는데 저희 청취자들은 이분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시죠.

송광호 고문: 임 목사가 북한을 처음 돕기 시작한 게1997년부터입니다. 북한의 고위층과 연관돼 있는 토론토의 친북단체장을 통해 북한 접촉을 했고 대북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임 목사는 그 후 계속적으로 평양과 나진선봉을 방문하며 건물과 공장을 세우고 호수를 땅으로 메워 농토를 만드는 간척사업도 후원하고 자금 지원도 했습니다. 그런데 임 목사는 2년여 전부터 평양에서 비자 –입국사증-를 받지 못해 안타까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은 경제특구라서 비자 없이 다닐 수 있습니다. 임 목사뿐 아니라 몇몇 장로들과 그밖의 사람들이 그동안 나진선봉을 드나들었고 그곳 체류증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평양 방문은 북측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아 방문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 그러니까 임 목사가 평양은 비자가 없어 못 들어 갔어도 나진선봉은 방문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송: 그렇습니다.

전: 근데 1월 27일 캐나다를 떠나 북한에 들어갔던 것이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고 또 들어가자 마자 당국에 억류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송: 북에 들어간 게1월 29일로 저는 기억하는데요. 북측에서 사업에 관한 상담을 하기 위해 만나자며 토론토 임 목사에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임 목사는 나진에 들어가 그들을 만난 것이죠. 임 목사 입장에선 그동안 북한이 평양 방문 비자를 내 주지 않아 힘들었는데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흔쾌히 간 것이죠. 마침 연변에 큰빛교회 소속의 개척교회가 있는데 거기 장로님과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근데 북측 당국자가 나진에서 임 목사를 보고 다음 날 평양으로 가서 얘기하자고 제의했다고 합니다. 임 목사는 '평양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한데 그것 없이도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근데 당국자는 걱정할 것 없다면 평양에 가서 논의하자고 해서 다음 날 평양에 갔고, 그 뒤로 10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소식이 완전히 끊긴 것이죠.

전: 그런데 송 고문님은 임 목사의 억류 원인을 세가지로 추정한다며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세미나에서 설명하셨는데요. 우선 그 첫 번째 이유로 임 목사의 북한 체제 비판 전력을 들었습니다.

송: 네. 북한 체제라는 건 새삼스런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알듯이 체제가 경직돼있고 자본주의나 남한사회와는 다릅니다. 근데 임 목사는 북한의 그런 체제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하도 자주 북한을 드나들다 보니 그런 민감한 대목에 대해 조심스러워해야 함에도 그 경계심이 느슨해 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항상 북한을 도와주는 입장이고 평양이고 나진선봉이고 간에 쉽게 다닐 수 있다 보니 북한 체제에 대한 두려움이나 조심성이 자신도 모르게 무뎌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 또 다른 억류 이유로는 캐나다 거주 탈북자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임 목사가 그들의 북쪽 가족들에게 편지나 돈을 전달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송: 임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큰빛장로교회는 토론토에서 가장 큽니다. 신도가 3천명을 넘습니다. 그런데 3, 4년전 한국의 탈북자2천여명 정도까지 토론토에 와서 난민신청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중 근 100여명이 큰빛교회에 다닌 걸로 압니다. 근데 임 목사와 장로들이 북한에 자주 다니니까 탈북자들 일부가 임 목사에게 북쪽 가족들에게 편지와 돈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죠. 제가 아는 60여세의 한 탈북여성이 있는데 자신도 임 목사의 방북 편에 자신의 고향에 1 -2천달러와 편지 전달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실제 전달이 됐다고 하던데요, 이런 부탁을 한 사람이 이분 말고도 여럿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탈북자 일부의 정체는 불분명할 수도 있고 이런 일 자체가 상당히 민감하고 위험한 일인데 임 목사님은 탈북자들을 도와준다는 것으로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특히 편지 전달 문제가 임 목사 억류의 원인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 하면 과거 연변과기대의 김진경총장이 1998년 북한당국에 구속됐었는데 바로 외부 편지를 북한 내부인 에게 전달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김진경 총장이 직접 한 건 아니었지만 같이 일하던 이명숙 사장이란 분이 남의 부탁을 받고 소지한 편지 때문에 김 총장이 40여일간 구금됐었던 사건입니다.

전: 또 그밖에도 임 목사가 2013년 12월 반역죄로 처형당한 장성택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설명도 하셨는데, 무슨 얘기입니까?

송: 임 목사가 1997년부터 대북 지원물자도 보내고 현지 공장도 설립하면서 북한 지원사업을 하게 된 것은 당초 북한의 고위층과 관련된 토론토 한인을 통한 것이었다고 앞서 언급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김용순 비서-나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밑에서 일했던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전경남 부위원장이 북측 고위층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 목사가 전 부위원장과의 접촉을 통해 일을 시작했는데 제가 듣기에 장성택이 김용순 비서와 전경남 부위원장과도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인맥을 통해 임 목사는 북한에 공장도 세우고 양노원 탁아소 유치원을 만들고 제가 알기로 건물만 7-8개 세웠습니다. 근데 건물만 세워서 되는 게 아니라 건물을 세운 뒤에는 그 운영을 위해 매달 물자를 대주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로 북한을 자주 드나들게 된 것이고요. 당초 북한의 고위급을 통해 대북접촉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런 과정에서 장성택과도 임 목사가 연줄이 닿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입니다. 더욱이 장성택은 나진선봉 사업을 맡아 많이 하고 있었고 임 목사는 나진선봉에 건물을 많이 세우고 지원사업을 했었지요.

전: 현재 임 목사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직접 외교관계가 없는 캐나다 정부는 자국 시민인 임 목사와 접견을 하기 위해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했다는데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알고 계신지요.

송: 처음 임 목사가 억류됐을 때는 지적하신 대로 캐나다 정부는 스웨덴 정부 대사관 통해 북측과 소통을 하다가 며칠 전 큰빛교회 장로의 전언으로는 캐나다 정부가 이제는 스웨덴 대사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북한 정부와 연락해 임목사의 소식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런 진전이 있지만 캐나다 정부는 북측과의 접촉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임 목사 가족과 교회측에도 임 목사 상황에 대해 일체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올 1월 북한을 방문해 억류된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의 임현수 목사의 대북지원활동과 그의 억류 배경에 대해 임 목사의 활동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송광호 재외동포언론인협회 고문을 모시고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