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해 정착교육기관에서 석달을 보낸 뒤 남한사회에 배출되면 마치 외국에 온 것 처럼 모든 게 생소합니다. 북조선 고향과는 생판 다르게 사람 많고 자동차 붐비고, 또 남한사람 하는 말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자유. 하지만 어디서 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삶의 지표를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가 있습니다. 서울시 관악 경찰서의 조경숙 경위. 북조선의 인민보안부 격인 경찰서에서 14년 넘게 탈북자들의 신변보호 업무를 해온 조 경위는 이제 신변보호자로서보다는 탈북여성들을 보살피고 이끌어 주는 친정엄마 같은 후원자로 더 유명해 졌습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는 것이 바로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며 자신의 일 처럼 탈북자 돕기에 힘을 쏟고 있는 조경숙 경위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탈북자들 특히 탈북여성들을 많이 돕고 계신데 2년전부터 관악구 관내 병원들과 협약 맺어 탈북자들의 의료비 감면과 매년 무료 건강감진을 받도록 지원해 준다는 건 어떤 내용입니까?
조경숙 경위
: 탈북여성뿐 아니라 탈북자들 대부분이 우리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 많은 어두움이 있습니다.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요. 치료가 필요한 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운 때문이지요. 본인도 신체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니까 우리 관악구의 경우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 탈북자들은 병원을 찾는 게 힘듭니다. 관악구 거주 탈북자 대상으로 대형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무료진료와 무료 건강검진을 그리고 의료보험이 보장되지 않는 본인 부담금에 대해서는 할인혜택을 받게 지원해줍니다.
전: 또 명절마다 탈북자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돕는다던데요.
조
: 명절이 되면 탈북자들이 더 외로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기업단체나 사회단체의 협조를 받아 경제적 으로 취약하거나 몸이 불편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 한국에서 명절은 어떤 날이 있습니까?
조
: 설날, 추석입니다. 그리고 어버이날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연세 많으신 탈북자 어른들께 전화 안부 문자를 보내드려 그분들이 혼자가 아니라 이웃이 있다는 걸 느끼도록 해드립니다.
전: 전문 직업훈련을 무료로 받게 해준다는데 어떤 훈련입니까?
조
: 한국뿐 아니라 어디서든 가장 큰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마땅한 직업이 있어야 합니다. 탈북자들 자신이 어떤 분야의 일이 적당할 지를 파악해 그 분야에서 훈련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한식 중식 양식 등의 조리 전문학교나 IT 분야의 직업전문학교와 연계해 교육받도록 하고 교육을 끝낸 뒤에는 취업까지도 연결해 주어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IT라는 것은?
조
: 정보통신, 컴퓨터에 관한 것입니다.
전: 한국에선 그런 걸 모르면 안 되겠죠?
조
: 그렇죠. 여기서는 연세 드신분들도 기초적인 컴퓨터 활용법은 누구나 다 합니다. 북한에는 컴퓨터가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 한국에 도착한 탈북 청소년들이 배운는데 많이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에게도 장학금 지원을 주선하고 있다던데요.
조
: 네. 경찰서에 관련된 민간단체나 지역에서 여유가 있는 분들의 협조를 받아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탈북청소년들이나 탈북대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해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지원하고 있습니다. 책을 사서 본다든지 아르바이트로 뺐기는 시간을 절감해 주기 위해 장학금 지급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전: 최근 한국 언론에서는 탈북여성들의 친정엄마 구실도 하고 계신다며 좋은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부모가 없이 한국에 온 탈북여성들의 결혼식 때 엄마 역할을 대신해준다는 얘긴데요.
조
: 그렇죠. 제가 처음 탈북여성과 인연을 맺게 된 게 2002년인데 한 탈북여성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성과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의 결혼 풍습을 몰라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사야하는지 망막해 하면서 부탁하더군요. 자기는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자신의 친정엄마를 해주면 안되겠냐고요. 어렵게 부탁을 하더라구요. 저는 망서리지 않고 흔쾌히 승락했어요. 그가 나를 필요로 하고 또 그게 힘든 일이 아니니까요. 물론 그 당시 제 나이는 40세밖에 안돼 친정엄마 역할이 나이에 걸맞지는 않았지만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결혼 얘기 나오면서 신랑될 사람도 미리 한번 만나봤습니다. 혹시라도 탈북여성이 대한민국에 혼자 있다고 해서 쉽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그 탈북여성 뒤에 있다는 것도 인식 시켜줄 필요도 있었고요. 그래서 같이 만나 식사도 하고 그 뒤에 동대문 시장을 같이 다니며 이불과 그릇 또 신용여행에 필요한 용품과 혼수를 같이 준비한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 탈북여성들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합니다.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언제든 돕겠다고.
전: 특히 같은 여성이니까 혼수품이라든가 남한에서는 어떻게 남편과 가정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언니나 어머니 입장에서 지침을 주는 것이겠죠.
조
: 그렇죠. 지난 4월 30일에는 제가 최근에 관리를 맡게 된 다른 탈북여성이 본인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울더군요. 그래서 ‘내가 하루 결혼식 때 엄마가 돼주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 했습니다. 결혼식은 서울이 아니라 춘천에서 하게돼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나 미장원에 가서 머리 올리고 한복을 챙겨 갔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부모와 인사하고 친정엄마 자리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도 받았습니다. 가족사진도 함께 찍고 또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면서 신부의 엄마 역할 하고 왔습니다. 그게 우연히 알려지는 바람에 큰 책임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전: 그래서 마흔살 전후의 노총각을 둔 부모들의 중매 요청이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기 시작했다죠?
조
: 네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전: 그분들께 소개 할 탈북여성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 어떻게 합니까?
조
: 그렇긴 하지만 그분들께는 제가 전문중매인이 아니고 본분은 경찰관이라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관리하는 탈북여성중 한국 남성에 관심이 있고 또 여건이 맞는 상대 남자분이 있으면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상담은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전: 중매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하는데, 예비신랑에 대한 신상이나 이 사람이 탈북여성을 맞아 잘 살 수 있나를 따지려면 신경이 쓰일텐데요.
조
: 그렇죠. 하지만 그런 건 한 단계 뒤의 일이고 우선은 탈북여성이 결혼하겠다는 의사표시가 먼저입니다. 여기 남한 남자 장가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북여성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동안 200여명의 탈북여성들을 알게 됐다고 하던데 탈북여성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데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
: 탈북여성뿐 아니라 탈북자 전반적으로 제일 힘들어 하는 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인 것 같습니다. 자기는 여기 와서 잘 먹고 따듯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대해 미안한 감을 때때로 느끼며 많이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담당형사도 어떻게 해줄 수는 없고 옆에서 말로만 위로해야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 대부분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탈북자들이 빨리 돈을 벌어 가족을 데려와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쉽게 범죄에 유혹을 받고 그로인해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 경찰관이 예방교육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안타깝습니다.
전: 탈북자 2만명이 넘은 지금 이들이 한국에 들어가 전혀 색다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살아가는데 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탈북자들의 보험사기, 마약 거래, 정부의 고용지원금 사취 공모 등의 불법행위나 폭력 등으로 경찰서에 입건되는 경우가 가끔 보도되던데요, 이런 범법행위는 극히 일부에 제한된 것이겠지만 탈북자들의 한국사회 정착 실패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
: 그렇죠. 탈북자들이 한국에 대해 모르고 자본주의에 대해 몰라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이쪽에서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원 하나센터 신변보호경찰관들은 요즘 범죄예방 교육에 많이 치중하고 있습니다. 정착의 과도기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는 탈북자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탈북자들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같은 민족입니다. 다만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 먹고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우리 동포라는 점을 인식해 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들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잘못된 부분은 똑바로 갈 수 있게 가르쳐 주는 따듯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로써 이들이 더 빨리 우리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관악구에선 현재 탈북자 몇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조
: 정확한 숫자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3백여 명 됩니다.
전: 지금은 매년 2천명 넘는 탈북자가 입국하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한국 입국 탈북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탈북자 관리를 1998년부터 하셨다는데 당시에는 관리하고 돌봐줘야 할 탈북자들이 별로 많지 않았죠?
조
: 그 당시는 탈북자가 한 명 오면 그 한 명을 대상으로 업무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많이 늘어나 경찰관 한 사람이 본연의 업무를 하면서 여러명의 탈북자들을 관리하고 신변보호를 하다보니 업무량이 좀 많습니다.
전: 15년이나 탈북자 관리업무를 하신 경험이 있는데 신출내기 형사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자주한다고 들었습니다. 탈북자 보호에 조언이나 강연 내용은 주로 어떤 것입니까?
조
: 전반적으로 보면 인간 관계라는 건 똑 같습니다. 탈북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좋다 나쁘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 됩니다. 탈북자를 대할 때 내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또 그들의 도움 요청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진실성을 갖고 자주 전화하고 안부 묻고 또 살아가는 얘기와 식사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갖다보면 그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든든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면 신뢰가 생깁니다. 저는 그런 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 아직 한국에 입국하지는 않았지만 제 3국에서 한국행을 바라고 있는 탈북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
: 탈북자들은 정말 생활이 힘들어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잘 살아 보겠다고 왔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빨리 해서 성공해 보겠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기 남한사회에서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고 고단한 이들에게 입국하면 일단 휴식을 취하라는 권유를 많이 합니다. 하루 이틀 살고 떠날 것도 아니니까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무얼 할 지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또 가족을 북에 두고 온 데 대해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여건이 안돼 혼자 왔을 뿐이라는 것과, 또 북에 남은 가족이 한국에 왔을 때에 뭔가 성취해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족들에게 더 떳떳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전: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는 통일 이후 남북통합과 갈등해결에 큰 역할을 할 것” 이라는 말을 강조하셨던데 어떤 의미로 한 말인가요?
조
: 탈북자 2만 천명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인가는 앞으로 통일시대를 위한 실험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을 해야만 나중에 남북이 통합됐을 때 북쪽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정부의 정책홍보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살아보고 성공한 탈북자들의 한 마디가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결국 그런 것이 통일비용을 줄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가족사항을 물어 보죠. 친 딸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
: 딸 하나에 아들 하나 있습니다.
전: 나이가 다 들었겠습니다.
조
: 제가 결혼을 늦게 해 딸은 대학 2학년, 아들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 딸도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 시켜야 하겠네요?
조
: 네. 우리 딸 결혼 할 때는 제가 결혼식장에서 정말 노숙하게 잘 할 것 같아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요.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는 것이 바로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며 자신의 일 처럼 탈북자 돕기에 힘을 쏟고 있는 서울 관악경철서의 조경숙 경위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