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7년전 엄마와 탈북해 한국에 들어간 염하룡군. 그는 자신이 정착한 서울의 한 마을을 살리는 운동을 벌여 지난 9월 여성가족부장관 상을 받았습니다. (장관은 북한으로 치면 부장에 해당하는 고위관료입니다.) 이 상은199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라는 행사에서 한국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고생 (고등중학생) 자원봉사자들 중에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 시상하고 있는데요,
탈북청소년 출신이 이런 큰 상을 받은 것은 지금까지 이 대회에 참여한 12만명 중고생 자원봉사자 중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마을살리기란 어떤 봉사활동인지 궁금하시죠?
현재 서울의 동성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 염하룡군을 초대석에 초청해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자원봉사를 하신 겁니까?
염하룡 학생: 정릉동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미술전시회도 하고 미술가르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 주제로는 마을살리기 프로젝트로 진행 중입니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일입니다.
전: 미술지도는 어떤 걸 합니까?
염: 처음엔 단순히 미술수업만 하려 생각했습니다. 원을 그리거나 수채화 작업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미술을 진로로 정해 나갈 아이들이 아니니까 그런 것 만으로는 봉사활동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원래 꿈이 미술 쪽이어서 전시회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런 전시회를 하고나면 성취감이 큽니다. 미술전시회나 음악회 같은 것은 선택 받은 사람만 한다는 그런 인식이 있어서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성취감을 맛보이고 싶어서 미술전시회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전: 그런데 주민들과의 마을살리기 프로젝트, 사업이란 건 무엇입니까?
염: 마을살리기 사업 구상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다보니 주민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살더군요. 근데 윗층 아래층에 사는 이웃을 서로 모르는 겁니다. 허나 제가 살던 고향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마을의 형태가 없고 그냥 아파트에 혼자만 생활공간을 가지고 사는 삭막한 분위기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을 형태가 있는 지역을 찾고 싶었는데 정릉 지역이 다소 그런 분위기를 갖췄더군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 마을이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도 소통하게 하고 아이들의 작업을 통해 어른들끼리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어서 마을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또 미술전시회나 인테리어 작업 정비사업 벽화사업을 통해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작정 마을에 가서 ‘소통을 합시다’고 주장해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들에게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럼 그린 그림을 갖고 마을사람들과 전시회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어디에다 그림을 그리는 건가요?
염: ‘성북갤러리’라는 곳을 빌려서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 갤러리란 것은 그림들을 모아 전시하는 전시관입니까?
염: 네. 저희가 예산을 받아 갤러리를 빌려 작업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그분들 아이들의 작품을 보여 드리는 것이죠. 그동안 서로 지나치기만 했던 이웃들이 전시회 참여를 통해 각자 자녀들의 작품을 놓고 어떤 이웃 자녀의 작품인지를 알게 하면서 서로 소통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죠.
전: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 보면서 누구네 집의 아이가 그렸구나 하면서 서로 이웃을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거군요?
염: 그렇습니다.
전: 아이들의 그림은 어떤 그림들입니까?
염: 저도 놀랐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학교나 미술학원에서 배운 그런 그림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작할 때 그림의 주제를 주었습니다. ‘분실물보관소’였는데요,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분실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도록 하는 주제였습니다.
예를 들면, 한 학생은 사춘기 소녀인데 다른 친구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색조 화장을 하다 보니 자신의 피부를 잃어버린 것을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다양성을 잃어 버린 그림을 그렸습니다. 중학생들의 그림이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서너명이 한 팀을 이뤄서 출품했고 중학생들은 개개인이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전: 중학생들인데도 제법 성숙된 생각으로 잃어버린 것을 표현한 아이들이 많았던 모양이죠?
염: 네. 다양성을 잃어버렸다는 그 학생은 이 세상 사회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다는 데 착안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친구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다른 건 잘하는 그런 다양성 있는 사회는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작품을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마을을 잃어버린 것을 표현했습니다. 사진작품으로 그걸 표현했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마을 형태가 없어지고 있으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도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마을 곳곳의 풍경을 사진 찍어 모아 전시회에 출품한 것입니다.
전: 그러니까 현대 도시의 삶이 콩크리트로 지은 아파트 촌이 되어 버리면서 삭막해지고 이웃과의 정도 없어지고 이웃을 마치 잃어버린 것과 같은 걸 표현한 것이군요.
염: 네. 방금 언급하신 주제로 작품을 만든 학생도 있었습니다. 전자 회로판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나무가 자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단순한 그림만으로의 미술전시회가 아니라 생각 자체를 바꾸는 걸 구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기술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 자체를 바꾸는 예술을 시작한 것입니다.
전: 중학생들의 창작품에 많이 감동을 한 모양이군요. 그 외에도 이 봉사활동을 통해 어떤 걸 느끼고 배웠는지, 또 봉사활동의 의미나 가치를 느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염: 솔직히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잘 하는 게 미술이니까 그냥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주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술전시회를 하면서 저는 아이들과 동반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을 통해 나도 배우고 내가 갖고 있는 작은 재능을 그 친구들과 주고 받는 그런 동반성장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해 있지만 저와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고 또 저 처럼 이런 봉사활동을 하려는 친구도 있더군요. 내가 늘 받고만 살았는데 이제는 받는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이런 생각을 학생들이 하고 있는데에 많이 놀랐고 또 보람을 느꼈습니다.
전: 봉사활동이라는 건 남을 위해 베풀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염하룡 학생도 일종의 베푸는 사업에 참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염: 저는 베푼다기 보다는 아이들과 친구라는 생각입니다.
전: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들었습니다. 3학년이 고교 마지막인데, 대학 진학하면 미술을 전공할 건가요?
염: 중학교때까지는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서 미술 학원에 5-6년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제 꿈은 사회복지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 어떤 사회복지 활동일지 구체적인 생각을 해 봤습니까?
염: 제가 현재 마을살리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제 고향에서 살던 마을과 같은 걸 여기에서도 직접 만드는 게 꿈입니다. 어떤 마을에 가서 제가 바라는 대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이죠. 어떤 틀은 짜여 있지만 그걸 구체화시키지는 못해서 이 분야에 진출해 좀 더 배우고싶습니다.
전: 고향처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이죠?
염: 그렇습니다.
전: 그 고향은 어땠는지 소개해 주시죠.
우리 고향은 울타리가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부족한 분들에게는 서로 그걸 채워주는 상생관계의 마을이었죠. 근데 한국에 오니 그런 마을은 전혀없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기에 바쁜 현대인들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시골에서는 서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마을을 세우고 싶은 겁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들이나 돌봄이 없는 아이들, 이런 게 한국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자체가 울타리가 되고 그들을 돌볼 수 있는 그런 마을을 꿈꾸고 있고 그걸 구체화시키는 걸 배우고 싶은 겁니다.
전: 이번 대상을 수상한 게 염하룡 군에게는 값진 것일 텐데요,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염: 제게 동기부여가 된 것 같습니다. 상을 기대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상을 받으면서 같은 자리에 온 다른 수상자 친구들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그 친구들이 하고 있고 그들의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또 수상의 의미는 여기에서 머물 게 아니라 좀 더 다른 방면으로 나가는 또 앞으로 확장하는 계기라는 것입니다. 봉사활동은 대체로 일회성으로 끝납니다. 노인들 목욕시키고 설거지 빨래 해 드리고 오는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전: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사회 학교적응에 어려움이 많다고들 합니다. 학업 따라가기도 쉽지 않고 또 새로운 환경에서 간혹 따돌림도 당하고 한다던데요, 이런 어려움을 염하룡 학생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탈북 청소년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것입니까?
염: 친구들을 보면 대체로 탈북학생을 위한 특수학교, 대안학교를 가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힘이 들더라도 일반학교에 와서 부딪쳐 보길 바랍니다. 새터민 친구들은 어차피 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렇다면 한 번은 부딪쳐야 하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딪쳐보길 바랍니다. 그저 피하고 편한대로만 살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부딪쳐보라는 것이죠. 그것이 학교생활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피하지 말고요.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지난달 한국 고등중학생들의 자원봉사대회에서 대상을 탄 탈북청소년 염하룡군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