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서울에서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고등중학교 여학생 홍주원 양. 3월 새학기에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이 된 홍주원 학생은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큰언니뻘 되는 탈북 여성들에게 기초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원래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말은 영어에서 유래된 외래어가 숱하기 때문에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이 탈북 여성들에게는 이만 저만한 장벽이 아닙니다. 남한의 탈북자 정착지원 민간단체 '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 마련한 영어교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홍주원 학생을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기자:지금 영어를 배우고 있는 탈북자 학생들은 어떤 분들인지 소개해 주시죠.
홍주원: 아줌마 분들입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요 그분들께 영어를 기초부터 가르쳐 드리고 있습니다.
전: 몇 분이나 가르칩니까?
홍: 팀과 함께 가르치는데 현재 8-10명 정도입니다. 수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전: 일주일에 몇 번 가르칩니까?
홍: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세시간 정도씩합니다. 전: 가르치는 것은 일상적인 회화입니까 아니면 문법입니까?
홍: 회화를 배우시기엔 영어 수준이 아직 높지 않습니다. 일단 에이.비.씨와 단어 읽기부터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진짜 못하십니다.
전: 북한이나 중국 난민생활 때 영어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모양이죠?
홍: 네. 전혀 모르세요. 기초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전: 그분들 가르칠 때 교과서나 자료는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합니까?
홍: 지금은 파닉스(PHONICS)라고 아이들이 에이.비.씨 배울 때 쓰는 교재로 사용하는데요, 교습을 하면서 추가로 필요한 것을 그때 그때 적어놓고 있습니다. 영어 발음 위주의 교재입니다. 나중에 탈북자 학생들만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 제 후배들이 가르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전: 직접 영어를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홍: 그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지않아 외래어를 전혀 모르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설명 중간 중간에 무의식적으로 들어가는 외래어 때문에 설명을 못알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전: 그러니까 영어 낱말 설명에 들어간 외래어 자체를 몰라서 설명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네요.
홍: 네. 예를 들어 제가 에스컬레이터를 설명하는데 그분들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의 차이를 몰라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전: 한국말 중에는 외래어, 특히 영어에서 유래된 외래어 참 많은데요, 홍주원양도 실제 탈북자에게 영어 가르치는 과정에서 한국말에 외래어 많다는 걸 느꼈겠네요?
홍: 네. 무의식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도 인식을 못했습니다.
전: 실제 가르칠 때 북한에서 사용되지 않는 한국말 표현도 탈북자들이 못 알아 듣는다고 하던데요.
홍: 그렇습니다. 어떤 동료가 설명을 하다가 '진흙'이란 말을 했는데 그분들은 뜻을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 뜻을 묻기에 물컹물컹한 흙이라 설명했더니 북조선에서는 그것을 '찰흙'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 저희들도 북한식 표현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 그밖에 가르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홍: 사실 그분들은 한국어를 잘 하십니다. 한국에서 사신 지가 오래되는 분들입니다. 짧은 분은 2년도 있지만 대부분 4-5년 이상 됩니다. 탈북자 상담사 자격증도 따신 분들입니다. 탈북한 지 오래된 분들이 새로 탈북해 입국한 분들에게 생활 상담을 해주시는 분들입니다. '진흙' 예는 예외적인 경우였고 한국말은 능통해요. 우리처럼 해요. 외래어 소통이 어려울 뿐입니다.
전: 그런데 탈북자 상담해 주시는 분들에게 왜 영어가 필요합니까?
홍: 탈북자들에게 상담해 줄 때 영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외래어를 모르면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탈북자들에게 좀더 잘 설명해 주시도록 영어와 함께 외래어를 가르쳐 드리는 겁니다. 영어 배우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살아 가시는 데 기초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구요. 상담과는 별개로 배우는 것이죠. 그분들 말로는 상담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여러 직업을 찾게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컴퓨터만 해도 영어가 많이 나오고 어떤 직업에도 영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전: 그런데 이분들이 영어 배울수 있는 기회는 학교 말고도, 교회나 '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 같은 민간 지원 단체를 통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홍: 민간 단체와 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지만 체계적이고 교육적인 영어 프로그램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탈북자분들이 체계적인 영어 학습에 접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민간 단체가 많다고해서 그것이 곧 탈북자들의 영어교육 기회가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탈북 여성분들에게는 한국에서 나오는 화장품들이 대개 영어나 외래어로 돼 있어 알아 듣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홍: 네. 잘 알아 듣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화장품 가게에 가서도 어떤 물건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입술에 바르는 화장품만 해도 립밤, 립스틱, 립글로스 등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 어렵습니다. 립밤은 손가락으로 입술에 바르는 것이고, 립글로스는 좀 더 액체같은 물질이고, 립스틱은 단단한 고체로 된 것인데 이분들은 헷갈려합니다. 모든게 입에 바르는 것 같기는 한데 무엇이 다른지 구분이 안되는 것이죠.
전: 탈북자 영어 가르치기는 언제부터 했습니까?
홍: 작년 3월고등학교 입학한 뒤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한 것은 친구들과 함께 겨울방학때 부터 시작했습니다.
전: 지난 1년 동안 성인만 가르쳤습니까 아니면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가르쳐 봤습니까?
홍: 중고등학생도 가르쳐 봤고 대학생도 가르쳐 봤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탈북 대학생들과 영어토론을 하기위해 친구들을 모아 매주 주제를 갖고 준비했지만 그 대학생들의 시간이 맞지 않아 무산됐습니다. 또 그 뒤에 탈북 중학생을 가르치게 됐는데, 일 대 일로 개인 교습을 하다가 그 학생이 열심히 따라하지 못해 중간에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새조위의 신미녀 대표님과 상의를 해 학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그만두지 않기로 못을 박고 끌고 가고 있습니다.
전: 그 중학생을 가르친 경험을 얘기해 주시죠. 기초부터 가르쳤나요?
홍: 그 아이는 한국 온 지가 오래됐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기초는 있었습니다. 영어로 회화하는 시간도 갖고 문법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단어도 같이 외우고 했습니다.
전: 탈북 대학생들은 중고등 학생들보다는 영어 실력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홍: 따지고 보면 대학생들은 아는 건 더 많은데 영어 말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자 대부분이 영어를 못합니다. 어떤분은 잘 하는데 그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는 잘 못합니다.
전: 탈북 학생들이 영어 배우는데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홍: 한국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렸을 때부터 영어 발음과 듣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에이가 뭔지 비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이고 제가 발음을 해 드려도 자꾸 까먹고 해서 시작 단계에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한 예로 알과 엘 발음의 경우 구분을 못하고 혀를 어떻게 놓아야 하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음 교정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전: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언제부터 배우나요?
홍: 요즘은 태어나서부터 배우는데요, 제 때는 대여섯살 때 부터 배웠습니다.
전: 학교에서 그렇게 어릴 때 부터 배운다는 건 아니겠죠?
홍: 엄마가 따로 시킵니다.
전: 사설학원이나 돈주고 배우는것 말고 실제 학교에서 배우는 건 몇학년부터입니까?
홍: 4학년, 그러니까 열 살이나 열 한살때부터 에이.비.씨 등 기초부터 배웁니다.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소학교 때 부터 배우는 군요.
홍: 네.
전: 홍주원양은 어떤 외국어를 하고 있습니까?
홍: 제일 많이 배우고 있는 것은 영어고, 중국어도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전: 앞으로 대학에 가면 어떤 전공을 할 계획입니까?
홍: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는 인권쪽으로 전공 과목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전: 어떻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홍: 사실 처음부터 관심을 가진 건 아닙니다. 학교 봉사활동을 하다 탈북자분들을 알게 됐는데요, 그 과정에 많은 걸 느꼈고 더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영어교습 봉사활동도 1년으로 끝나지 않도록 후배들에게 전통을 이어주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서울에 있는 탈북여성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여학생 홍주원 양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