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의 인권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인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한국의 탈북자 지원활동가 김상헌 씨.
유엔의 세계식량계획에서도 일했고 세계적인 인권단체 국제사면위원회 회원으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컸던 김상헌 씨는 2002년 중국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탈북자 25명을 진입시킨 이른바 기획망명으로 국제사회에 탈북난민 문제를 부각시켰으며 2003년 시사 주간지 타임의 아시아판은 그를 아시아 영웅의 한 인물로 선정하고 그의 탈북자 지원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현재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자료화하고 있는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이사장이기도 한 김상헌 씨는 석 달 전 탈북자지원활동가 두 사람과 함께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을 베트남 하노이 주재 덴마크 대사관으로 진입시켜 남한에 망명토록 해 다시 한번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78세의 고령에도 탈북자 지원활동을 쉬지않고 있는 김상헌 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수일 기자
: 10월에 입국한 탈북자 아홉명, 지금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까?
김상헌
: 그런걸로 알고있습니다. 우린 그 탈북자분들 한국에 안전하게 데려오는게 목적이었고, 그게 달성됐으니 우리일은 끝났다고 봐야죠.
전
: 그런데 9월 중국 베트남 국경지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위기에 있다는 탈북자 다섯명, 도문에 있다는게 마지막 보도였는데 현재 상황을 아십니까?
김
: 그동안, 그 다섯분 때문에 우리가 많이 당황하지 않았습니까? 눈에 선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사방에 저희 나름대로 행방을 알아본 결과 여러 얘기 나오는데 그게 서로 엇갈립니다. 가족들 얘기도 들어보고 다른 소식통에도 알아봤지만 내용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알아보니 그분들이 도문이 아니라 장춘에 가 있다는걸 확인했습니다. 장춘 경찰서의 한 첨대에 있다는 것을 확인 한 것이 일주일 전입니다.
전
: 이분들에 관한 얘기를 미국 로스엔젤레스타임즈 신문에 밝히기로 작정한 것은 이들이 강제북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죠?
김
: 네, 그런 기대를 갖고 했습니다.
전
: 하지만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죠?
김
: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전
: 로스엔젤레스타임즈 신문 기사를 보니, 9월 베트남에서 탈북자 9명만을 대사관에 진입시킬 것인지, 아니면 남어지 5명을 기다려야 하는지 여러 고민끝에 탈북자들에게 물어봤다던데요, 당시 그분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
: 그분들은 베트남에 올 때까지 대사관에 진입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말이 새면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극비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이 9명에게 덴마크 대사관에 들어가기 전날 물었습니다. “우리가 애초 14명 모두를 대사관에 진입시킬 계획이었는데, 5명은 못 오게 됐고, 여러분만 남았다. 한국 대사관에선 여러분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계획은 덴마크 대사관에 진입하는 것인데 찬성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 모두가 우리만 믿겠다고 해서 실행했습니다.
전
: 방금, 한국대사관에서는 이 탈북자들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김 이사장께서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재외공관의 비협조는 직무유기라면서 국정감사나 감사원 감사를 받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셨죠?
김
: 네. 그런 생각으로 감사원에 감사의뢰를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저희는 재외 공관에서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문제를 가급적 사회 여러 계층에서 다뤄주길 바라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이 문제에 냉담합니다.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마침, 오늘도 국회의원 한 분과 이 문제를 의논했습니다만 관철되도록 계속 노력할 겁니다.
전
: 베트남 정부에서도 탈북자들에 대해 비협조적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김
: 아닙니다. 그건 한국대사관의 얘기고 베트남 정부 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베트남 주재 대사관들을 통해 여러차례 탈북동포가 자유를 찾아 올 수 있었겠습니까? 베트남 정부는 탈북자들이 자기 나라에 머물겠다면 신경을 쓰지만 한국에 바로 데려 가겠다면 괜찮다는 입장입니다. 베트남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탈북자 수용에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 대사관 직원들만의 얘기입니다.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전
: 보통, 탈북자들을 망명시키거나 빼내오는 운동가들이 거치는 루트는 태국의 난민수용소인데 베트남으로 인도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김
: 있습니다. 월남[베트남]이 중국에서 제일 가깝기 때문입니다. 중국 국경을 넘어 너댓시간이면 하노이에 도달합니다. 만약 하노이 대사관에서 받아 주지 않을 경우, 탈북자들은 24시간 장시간 여행해 호치민에 갑니다. 거기서 다시 현지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3시간 걸려 캄보디아 국경을 넘고, 또 다시 다섯시간을 가야 캄보디아 보호장소에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 보통 먼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힘도 들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거기서 다시 라오스 국경으로 가서 수도 비엔첸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이틀 거리입니다. 가는 중간에 검사도 심합니다. 그 다음에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가는 길은 더 멉니다. 그러니까 하노이에 있는 한국 대사관이 탈북자들을 받아주면 망명 코스가 훨씬 짧아집니다. 그만큼 위험도 줄고 비용도 덜 들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전
: 전번에 덴마크 대사관에 9명 진입시키고 망명시키는 과정에서 정 베드로 목사 얘기에 따르면 덴마크 대사관 관리들도 탈북자 망명요청에 비협조적이고 마음에 안들어 했다고 하던데요, 외국 대사관들의 입장이 모두 그렇다면 베트남 주재 대사관을 활용하는 방법도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김
: 탈북자들이 베트남 주재 외국 대사관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온 경우가 수십 차례됩니다. 일단 우리가 탈북자들을 외국 대사관에 진입시키면 한국에 오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다만, 이번 탈북자9명의 경우, 우리 활동가가 대사관에 탈북자들과 함께 남아 있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 베드로 목사님이 그런 경험을 하셨는데, 어떤 대사관이라도 관료들은 탈북자들이 무단 진입하는 것을 귀찮아 하게 마련입니다. 환영할 입장이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국제법과 해당국가의 체면이 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 최근 북한의 화폐개혁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탈북자가 증가하지 않겠나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
: 아직 두만강 물이 얼어 북한 주민들이 월경을 할 수 있습니다만,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현재 탈북자들이 증가하는 그런 현상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
: 김 이사장께서 제3국으로 탈출하도록 도운 탈북자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들을 탈출시키는데 특별히 선정 기준이나 과정이 있습니까?
김
: 탈북동포를 탈출시키는 게 우리 본연의 활동은 아닙니다. 탈북 지원은 다른 단체와 활동가들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덴마크 대사관에 진입시킨 것도 원래 목적은 앞으로 탈북자들이 베트남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받아달라고 요청하면 대사관은 그들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
: 김 이사장께서는 연로하신데 이런 위험한 일을 계속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
: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
: 가족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
: 아내와 저 둘입니다.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독립했고 마흔살 넘었습니다. 직장 있는 분들은 어렵겠지만 나는 은퇴했으니까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전
: 하지만 본인이 직접 베트남 같은 현지에 가서 활동을 하면 부인께서 걱정하시지 않습니까? 김: 걱정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하라며 압력을 많이 줍니다. “당신은 나와 결혼한 게 아니고 탈북자와 결혼한 거냐? 이제 나이가 많은데 할 만큼은 하지 않았냐? 젊은사람들이 하도록 자리를 비워줘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전
: 그럼 뭐라고 대응하십니까?
김
: 그럴때마다 이제 그만 두겠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정말 그만 두고 싶은 생각도 많습니다.
전
: 그런데 아직 그만두지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
: 그만 하고 싶지만 일이 자꾸 생겨 그러질 못하고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전
: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78세의 고령에도 북한의 인권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인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한국의 탈북자 지원활동가 김상헌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