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북한 지도층의 개혁개방 의식을 고취하고 있는 북한개혁방송의 김승철 대표

대북 단파 라디오 북한개혁방송이 제작해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의 대형 풍선을 통해 북한에 전달된 'DVD 삐라'.
대북 단파 라디오 북한개혁방송이 제작해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의 대형 풍선을 통해 북한에 전달된 'DVD 삐라'.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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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 심리전의 정보매체인 삐라와 함께 디브이디(DVD) 씨디알(CD-R)을 북쪽으로 보내고 있는 탈북 방송인 김승철 씨. 김 씨는 올 2월부터 과거 서해교전에 관한 사실과 지난 3월 천안함 폭침 조사결과의 진실을 담은 씨디알 수천장을 만들어 남한 내 탈북자 단체가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보내고 있는 수십만장의 삐라와 함께 살포했습니다.

북한 수력발전소 설계원이었다 러시아 벌목공으로 외화벌이에 나섰던 김승철 씨는 벌목장을 탈출해 1994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간부층과 미래의 지도자 세력들에게 개혁개방의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2008년부터 대북 단파방송인 북한개혁방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디브이디가 생소한 북한 사람들도 있을텐데 북한에서는 디브이디를 뭐라고 합니까?

김승철: 보통 씨디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처음에 씨디가 들어갔다가 그 다음에는 내용을 다시 기록할 수 있는 기능의 씨디알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씨디알이라고 하기도 하고 디브이디라고도 합니다. 북한에서 나온 내수용 디브이디 자료를 보면 디브이디라고 돼 있습니다. 브이씨디, 디브이디, 씨디알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 그 기계는 뭐라고 합니까?

김: 씨디알 판이라고 하는데 알 판이라고도 통합니다.

전: 디브이디, 씨디알을 삐라와 함께 살포하고 있는데, 북한 주민들이 주워서 보면 디브이디가 어떻게 들어 있을까요?

김: 제가 처음 서해교전 디브이디를 만들 때는 종이포장에다 디브이디를 넣고 완충재로 싸서 안내문구 적은 종이에 붙여서 보냈는데요 박상학씨가 보내는 것은 디브이디를 그냥 완충재로만 싸서 보내더라구요. 북한사람들이 그것을 주우면 그 안에 있는 내용이 궁금해서 보게됩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워낙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걸 열어 볼 것입니다. 보통 삐라가 떨어지면 보위부, 안전부, 군 등에서 나와 그 구역을 차단시키고 그걸 회수해서 소각하거나 제거하곤 하는데 디브이디 같은 것이 재미있으면 간부들이 회수해서 자기들끼리 돌려보거나 자기 친구들에게도 줍니다.

전: 디브이디 살포를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김: 작년 11월 10일 서해교전이 있었습니다. 서해에서 남북 군함 간 무장 충돌이 있었는데요, 그 뒤 내부 소식통이 전해온 바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선전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거 안되겠다, [관련 사실을] 영상으로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그런 계획은 재작년부터 하고 있었지만 여건도 안되고 거기다 북한 내에 디브이디 록화기가 과연 갖춰져 있냐는 의문이 들어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북한이 남한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하면서도 그걸 시청하는 매체[수단]가 디브이디 록화기라는 생각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작년 서해교전을 보고, '아, 이건 보고 듣는 영상으로 만들어야 믿을 수 있겠구나' 해서 11월 말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대북 방송을 끝낸 뒤 저녁에 시간을 내어 디브이디를 만들다 보니 상당히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2월 말부터 살포를 시작했습니다.

전: 5월 20일에도 백령도에서도 날리신 적이 있는데요. 백령도에서 날린 디브이디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김: 올 2월부터 4월, 5월 초까지 보낸 것은 서해 무장충돌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1999년, 2002년, 작년 등 세차례에 걸친 서해교전 사건을 담았습니다. 충돌의 원인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해군기지도 구글 위성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등을 담아서 46분짜리로 만들어 북한에 보냈습니다.

전: 그런데 6월 10일 임진각에서 풍선에 매달아 보낸 디브이디 씨디알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북한의 김정일이 가장 아파할 내용을 담겠다고 하셨다는데…

김: 그 내용은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보낸 것은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건이 일어난 뒤 또 북한 내 소식통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자기들이 남한에 한 방 먹여 이겼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려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5월 20일 남한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니까 그때는 북한 당국이 자기들은 안 그랬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당국은 결국 저들이 유리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말을 뒤집어서 부인한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이걸 설명 하기보다는 시간대별로 쫙 짜서 사건의 추이를 그대로 보여주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어떻게 공격을 당했고, 공격 어뢰는 북한 것이고 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남한과 함께 얼마나 분노하고 또 북한에 제재를 가하려 하는지, 그리고 중국은 김정일 뒤를 어떻게 봐주고 있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고 3월 26일부터 5월31일까지 관련 티비 뉴스만 날짜별로 쫙 모아서 보냈습니다. 분량은 3시간 23분 정도 됩니다.

전: 거기에는 영상도 있고 소리도 있고 그림도 있습니까?

김: 그렇죠. 천안함 관련 뉴스를 배열해 모아 하나의 티비 뉴스로 만들어 보냈습니다. 앞과 뒤에 해설 문구가 있습니다. 그외에는 아무것도 가공을 안했습니다.

전: 밥 세끼도 잘 못먹는 주민들이 디브이디를 주워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또 디브이디를 틀어서 볼 수 있는 재생기를 보유한 사람들이 있다손 쳐도 소수 일 텐데 먹고 살만한 주민들이 얼마나 그걸 주워서 볼 수 있겠느냐, 줍는 민간인들은 얼마나 되고 또 군부대에도 떨어질 것인가 등 여러가지 궁금한 점이 많은데요.

김: 그 문제에 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에서는 남한 드라마가 시청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양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남한 드라마 얘기가 아니면 얘기 축에도 못 끼인다 라는 소식이 몇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그 말은 북한에 디브이디 록화기가 엄청 많기 때문에 그만큼 보고 있다는 것이고, 남한 드라마 문화에 대해 반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전문가들이 드라마를 복제해 보낼 때는 전부 씨디에 카피해서 보내거든요. 그런 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탈북한 사람들에 의하면 평양시에는 많게는 70-80퍼센트, 적게는 50-60퍼센트가 디브이디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부대 쪽을 알아보니까 군대 병실마다 디브이디 록화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정도면 디브이디를 보내도 충분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전: 군대에 있는 록화기는 공공용이니까 함부로 볼 수는 없겠네요?

김: 못 보죠. 그렇지만 북한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보위지도원이나 군 장교들은 집에 록화기가 디브이디 좋은 게 있으면 회수해서 자기들끼리 돌려본다고 합니다.

전: 일반 민간인들도 입수할 경우 그걸 돌려보거나 복제해 전파할 수 있을까요?

김: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하겠죠. 제가 복제 전파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저희가 올2월 말부터 서해교전에 관한 디브이디를 북한에 들여 보냈습니다. 근데 북한 당국이 3월과 4월에 남한 당국에 강력히 항의를 했습니다. 북한의 군 총참모부가 남쪽에 대해 그런 걸 막지 않으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항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상당히 큰 반향이 있구나, 효과가 있구나." 그래서 저는 더욱 신심을 갖게 됐습니다.

전: 그럼 지금 디브이디를 6월 10일 날리셨는데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디브이디 알판 내용은 어떤 것인지 소개해주시죠.

김: 저는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서 그걸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위대한 지도자니 인민의 어버이니 하지만 그사람이 3백만명을 굶겨 죽이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우선 알려주는 것입니다. 북한의 간부들과 지식인들에게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사회 외교 군사 사안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이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 나갈 방향과 통일을 이루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담고 싶습니다.

전: 혹시 그동안에 그런 디브이디를 보았다는 소식, 탈북한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나 혹은 김 대표의 방송국 앞으로 전해 온 것이 있습니까?

김: 아직 그런 것은 없습니다. 씨디알 보낸 지가 얼마 안되니까요. 저희가 하루 1시간씩 방송을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부터입니다. 방송과 함께 디브이디 살포롤 병행하면 복합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저희가 북에 보내는 디브이디에는 저희 방송시간대와 주파수를 적어 넣어 보내고 있습니다.

전: 방송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대북 방송은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김: 2007년 12월 24일부터 했습니다.

전: 단파 하나로 시작하셨나요?

김: 네. 그때는 30분 방송으로 시작했죠.

전: 웹사이트에서도 방송을 하십니까?

김: 단파로 송출한 파일을 매일 웹사이트에 올려 놓습니다. 일일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한국에서 대북방송을 하는 방송국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한 다섯 개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미국에는 두개의 방송국이 있고요. 모든 방송이 북한 내외의 소식을 전달하면서 궁극적 목적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북한개혁방송'이 타 방송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김: 방송마다 특징이 있지만 저희는 북한의 개혁 개방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개혁개방의 이론과 방법, 그리고 그에 관한 실제 사례들을 많이 다룹니다. 저희 방송에서는 북한체제의 문제점이나 탈북자들이 고생한 체험같은 것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을 많이 합니다. 저희방송에 강좌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것은 등소평과 중국의 개혁개방이란 것입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을 등소평이란 지도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방송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리더쉽 분야입니다. 개혁개방을 하려면 북한의 낡은 체제의 리더쉽가지고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전: 그러니까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김: 네. 개혁개방 과정에서 어떤 지도력을 갖춰야 하며 민주적인 지도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루는 프로그램입니다.

전: 최근 뉴욕타임스에서도 보도 했습니다만, 북한을 탈출한 주민 10명 정도와 인터뷰를 직접 한 결과 한, 두명은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져 북한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반감이 늘어났다고 얘기한 반면에 또 다른 주민들은 역시 북한이 선전한 대로 북한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외압 다시 말해서 한국 미국 일본 등이 북한 압살목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한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정일 지도자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의 세력이 북한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혁개방 방송을 하는 대북방송을 북한 주민들이 들었을때 얼마나 거기에 신뢰성을 갖고 믿을 수 있는 지가 큰 과제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저희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주요 목표 청취자를 간부, 장교, 지식인, 대학생, 청년 등 으로 삼고 있습니다. 보통 북한 내에서 배고픈 사람은 라디오 듣기보다 먹을 것을 해결하려 할 것이고 어느정도 생활 여건이 되는 사람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랬었지만, 대부분 간부들이 대북방송을 많이 듣거든요.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듣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북한에 변화가 왔을 때 변화 주도세력이 될 것이고. 그래서 저희는 그런 층에 방송의 촛점을 맞추는 거죠. 그래서 저희 방송의 캐치프레이즈, 구호 혹은 목표의 핵심은 개혁개방의 비전과 방법 그리고 그것을 위한 지혜와 용기 이 네가지에 두고 있습니다.

전: 지금 말씀하신 것과 연관이 될 수 있을 텐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을 한다든지 –현재 3남인 김정은에게 권력 세습을 진행중인 것으로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만- 간부층들의 인식이 바뀌어 사회적 봉기 내지 내부붕괴, 이른바 북한의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김: 작년 특히 재작년2008년부터 북한의 변화상을 지금까지 쭉 관찰해 보면 크게 두가지 문제, 우선 김정일의 지도력과 신뢰도는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고 두번 째로는 북한 지도부의 정책 추진이나 대외상황에 대한 위기대처능력 이런 부분들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후계자가 되려면 업적과 정당성을 반드시 쌓아야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는데 김정은이 작년부터 지도력을 인정받기 위해 한 일들이 다 실패했습니다. 150일 전투, 100일 전투, 화폐교환, 이번 천안함 침몰공격까지 이 네가지가 모두 실패했고 딱 한가지 잘했다고 큰소리 치는 것이 축포 야회라는 것입니다. 밤에 축포 쏴서 불꽃놀이 하는 거지요. 그거 하나는 잘 됐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외에는 성공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노동당과 국가보위부와 군 내부에서 자기에게 반대할 만한 사람들을 숙청하다가 작년 초여름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0월쯤 다시 시작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북한의 권력 구도가 상당히 복잡하고 불안정하고 또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같은 상황으로 계속 나가다 보면 2-3년안에 반드시 급변사태가 일어 날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전: 이번에는 김승철 대표님 개인의 역정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 저는 91년도에 러시아 벌목을 갔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수력발전소 설계기 설계원이었습니다. 1991년 돈벌이로 러시아에 벌목하러 갔다 1993년 1월 벌목장을 탈출해서 카자흐스탄에 갔습니다. 거기서 1994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997년부터 2008년 1월까지 북한연구소 자료실장으로 근무했고, 지금은 북한개혁방송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 탈북은 홀로 하셨나요?

김: 홀로였습니다.

전: 가족은?

김: 가족이 못 오고 혼자 왔습니다. 아버님은 80년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제가 올 때 많이 아프셨는데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을 걸로 생각합니다. 3남 2녀에 제가 차남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함흥에서 살았습니다. 여기서는 재혼해서 13년째입니다.

전: 북한에서 결혼 하셨었나요?

김: 네. 아들 하나 있습니다.

전: 그런데 수력발전소 설계 연구원이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한국에 와서 과거 직업과는 상관이 없는 방송을 하시게 됐습니까? 동기나 계기가 있었나요?

김: 제가 북한연구소에 있지 않았습니까? 연구소에서 북한에 관한 자료실을 담당했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소식들, 연구, 논문, 잡지 이런 것을 많이 다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공부를 좀 했습니다. 북한출신으로 북한연구소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통제하는 외부 세계의 개혁 개방 소식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유럽의 변화상이나 중국의 개혁개방 같은 것 말입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당국의 철저한 통제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부터 대북방송 할 마음을 먹었지만 여건이 안돼 2007년 12월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 지금 김승철 대표께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무엇입니까?

김: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은 간단합니다. 북한의 간부들이나 지식인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 개혁개방을 이루고 발전시켜 남북한을 통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 김정일, 김정일 이후 북한사람들이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저는 북한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방송에서 지도력 강좌를 많이 하는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서울에서 대북방송인 북한개혁방송을 운영하면서 북한 내외의 실상을 알리는 씨디알을 살포하고 있는 탈북자 김승철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