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 지도부가 식량난보다 더 무서워한다는 남한의 대북삐라. 지난 10년 동안 이 삐라를 무려 2억 장 넘게 북한으로 날려온 탈북자가 있습니다. 대북풍선단의 이민복 단장. 북한과학원의 농업과학자였던 이민복 씨는 1995년한국에 입국해 북한의 2천만 동포를 위한 길은 북한의 수령우상화와 폐쇄정책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믿고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삐라와 구제품을 풍선에 달아 북으로 날려왔습니다. 바람 부는 날이 곧 삐라 날리는 날이라는 이민복 씨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2001년부터 풍선에 삐라를 매어 날린 이래 지금까지 몇차례나 풍선 날리기를 하셨습니까?
이민복
: 총 횟수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바람만 불면 가서 날렸습니다.
전
: 적어도 100여차례는 넘겠죠.
이
: 여하튼 제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습니다.
전
: 삐라 장 수로는 몇 장이나 날린 것 같습니까?
이
: 2-3억장 날린 것 같아요. 작년 한 해동안만 9천만 장 보냈으니까요.
전
: 풍선 삐라의 내용은 북한의 수령우상화, 혁명주의, 선군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핵심이라던데요, 요즘에는 3대세습이라든가 천안함 폭침 내용도 포함됐습니까?
이
: 네.
전
: 수령우상화, 혁명주의, 선군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시죠.
이: 북한에 들어가 보면 맨 구호뿐입니다. 수령에 대한 충성과 위대성 선전,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의 구호들입니다. 그걸 뒤집어 보면 수령우상화 숭배사상을 북한사회의 중추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 다음에 많이 쓰는 말이 혁명이란 표현입니다. 3대혁명이니 무슨 혁명이니 해서 혁명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그건 혁명주의가 또 하나의 정신적 지주로 받쳐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는 또 하나의 구호가 있는데 바로 ‘선군’입니다. 말끝마다 선군이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또 다른 정신적인 지주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사회는 수령숭배사상, 혁명주의, 선군주의 세 가지로 버티고 있다는 말입니다. 전략적인 면에서 본다면 바로 이런 세 가지 주의를 쳐야 그 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무너진다는 의미는 주민들이 깨우쳐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무너뜨리는 게 의뢰로 쉽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거짓 역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실을 투입하면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북한도 그걸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의 최선 최후의 통치수법은 폐쇄입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북의 폐쇄를 뚫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뚫어가지고는 수령우상화, 혁명주의, 선군주의 세 가지를 쳐야 합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풍선입니다. 풍선은 삐라만 보내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구는 라지오와 구제물자도 달 수있는 북한의 폐쇄를 뚫을 수 있는 종합적인 수단입니다. 이건 레이다나, 육안으로도 확인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정치적 의지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직접 들어가고 값싸고 안전하고 또 가장 평화적인 수단입니다.
전
: 근데 구제품 가운데는 아스피린 같은 약품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
: 네. 약품은 물론이고 후원자들이 보내는 건 모두 날려 보냅니다. 중국돈, 달러, 북한돈도 보냅니다.
전
: 구제품 말고도 디브이디 씨디알도 보내신다죠?
이
: 네, 그게 올해 새로운 양상으로 질적으로 혁신한 삐라 형태입니다.
전
: 씨디알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갑니까?
이
: 그것도 [삐라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세 가지 중추를 꺽는 것이 기본 목적이니까요. 방송이든 삐라든 북한의 잘못된 정신적 지주를 쳐야지 다른 건 아무리 쳐 봤자 무너지지 않습니다. 북한이 지금껏 무너지지 않고 유지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전
: 지금까지 풍선 날리는 장소는 백령도 연평도 강원도 철원 강화도 임진각 등인데요.
이
: 그렇습니다. 디엠지 비무장지대 전 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
: 그런데 삐라 풍선을 날릴 때는 풍향이 중요 하겠지요?
이
: 그럼요. 그게 결정하죠.
전
: 그러니까 삐라 날리기 전에 풍향은 늘 확인 하시겠네요.
이
: 그렇습니다.
전
: 북에 떨어지는 지역은 주로 어디쯤입니까?
이
: 지금 전연지대(휴전선지역)에는 비교적 많이 떨어졌으니까 앞으로는 북한에 깊숙히 보내는 전략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황해도나 강원도 쪽이 제일 많이 떨어지는 지역이죠.
전
: 북한에 살포된 풍선 삐라의 효과에 대해 북한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 네. 너무 반응이 강력합니다.
전
: 2005년에는 평양 대동문에도 풍선이 걸린 적이 있다고 하죠?
이
: 네.
전
: 북한 당국이 2005년이래 남한 당국에 대북삐라 중지 요구를 모두 22차례 했다고 하죠?
이
: 30차례입니다.
전
: 2008년 북한이 남북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남한의 삐라를 중지하길 요구하기 위해서였다면서요?
이
: 물론 다른 사안도 있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우정(일부러) 북한이 남한에 회담을 요청한 것은 삐라 사안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은 삐라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전
: 결국 풍선 삐라의 효과를 보셨다는 말씀이네요?
이
: 두 말 할 것 없죠. 중추를 무너뜨리는 것이니까요. 북한을 들어갔다 나온 대북 지원단체 인사 한 분이 북한 간부들과 식사자리에서 들은 말이라고 합니다. 간부들 얘기가 “우리가 배가 고파도 남조선 무섭지 않아요. 근데 이 삐라가 제일 무섭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
: 물론 그런 삐라를 보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한도 악감정을 갖고 있을텐데요. 그래서 경찰이 2008년 10월부터 교대로 이민복 씨의 경호를 시작하게 된 겁니까?
이
: 우리 정부가 초기에는 막았습니다. 10년 좌파 정권 때 말입니다. 그러다가 새 정권 들어서면서 자국민에 대한 테러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보호를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도 삐라 하겠다는 의지가 있지만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인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라는 심정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부가 직접적으로 돕는 것은 없습니다.
전
: 하지만 직접적으로 정부가 풍선 날리기를 막거나 하지는 않죠?
이
: 좌파 정권 때도 못 막았어요. 눈에 뜨이면 막았지만요. 대한민국이 법치 사회인데 헌법이 우선이지 대통령 명령이 우선이겠습니까? 우리 법에 종교 선전 표현의 자유가 있기때문에 그걸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
: 1995년 한국에 입국한 후 기독교 신학대학교에 다니셨는데 왜 삐라날리기를 하기로 결심하셨나요?
이
: 제가 북한사람으로서2천만 명중 소명을 받아 이 땅에 온, 정말 누구보다 축복받은 사람인데, 나 하나 살자고 여기 왔겠습니까? 어찌보면 저한테 큰 소명이 주어진 것이죠. 그래서 제게는 북한 관련 일을 하는 것이 소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북한 전략이란 것을 저는 간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의 특징은 폐쇄와 수령우상화입니다. 그래서 폐쇄를 뚫고 우상화에 대적 공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전쟁을 한다는 게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의 공략을 말하는 것입니다. 폐쇄를 뚫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비행기로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전쟁이 되겠죠. 그래서 풍선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원래 농업 전문가이지만 풍선이라는 공학적인 기구를 연구하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요구로 한국정부는 대북방송과 풍선삐라를 북에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민간단체]가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양적으로는 별로 못 보내지만 북한 출신으로서 북한의 치명적인 부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수령숭배사상, 혁명주의, 선군주의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대북한 전략아래 그같은 내용의 삐라를 보내니까 그 양은 적어도 효과는 있더군요.
전
: 1990년 가을에 첫 번째 탈북하셨고 북송됐다가 또 다시 91년 6월에 중국으로 월경하셨는데, 북한과학원의 농업과학자로서 토대도 좋고 안정된 지위를 버리고 탈북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이
: 탈북동기는 단순합니다. 저는 오직 충성하려고 수령님의 교시대로 살았던 사람이에요. 연애라는 것도 몰랐고 책과 연구밖에 몰랐습니다. 제가 반도체 연구하려고 평양 김책공업대학교에까지 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쌀은 공산주의’ 라는 김일성의 교시 한 마디에 농업분야로 전환할 만큼 충성분자였어요. 그래서 쌀 생산을 연구했는데, 문제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종자가 나쁜 게 아니라 농민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공산주의 집단농 체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집단농과 개인농하고 생산성을 비교해 보니 개인농이 집단농보다 다섯 배 내지 열 배 더 높은 것이었습니다. 내 것이 되면 그렇게 된다는 결론이지요. 그래서 수령님한테 보고했습니다. 나는 애국상을 받을 줄 았았는데 거꾸로 반동 이색분자로 된 거에요.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히면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고심하던 중 남조선 삐라를 접하게 됐어요. 철원에 출장 갔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거짓 정치에 대한 것을 깨닫고 탈북하게 됐습니다.
전
: 북한땅 떠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이
: 후회할 게 뭐 있겠습니까. 후회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나혼자 누릴 게 아니라 북한 2천만 동포, 북에 있는 우리 가족과 나누며 봉사하고 사역해야겠다는 사명으로 소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
: 탈북시 북한에 가족은 있었습니까?
이
: 네. 그게 제일 문제죠. 하지만 저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지혜스럽게 잘 처리하고 나왔습니다. 법적으로는 이혼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까 보복차원에서 당국이 모두 처벌하고 추방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은 그런 나라입니다. 인권문제에서 특이한 가족 연좌제를 쓰는 유일한 독재국가입니다.
전
: 북한은 김일성 출생 백 돌인 2012년을 강성대국 달성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2012년에 이민복 단장님의 대북풍선날리기는 어떻게 발전되길 희망하십니까?
이
: 지금은 디브이디와 삐라를 날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라지오를 보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풍선날리기 하면 삐라를 생각하는데 풍선은 라지오도 달아 보낼 수 있는 종합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기본적으로 라지오가 없는 나라라고 봐야 합니다. 근데 라지오라는 수단이 있어야 외부의 방송도 들을 것 아닙니까? 라지오를 보내야 합니다. 풍선으로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전기가 없는 나라라는 걸 고려해서 라지오도 반도체 라지오 광학전지 라지오를 보내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제 꿈입니다. 여하튼 그런 꿈을 가지고 추진하면 2012년이 아마도 강성대국이 아니라 무너지는 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지난 10년 동안 삐라를 2억 장 넘게 북한에 날린 탈북자 이민복 대북풍선단 단장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