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평양에 들어가 기록영화를 만들어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덴마크 방송 언론인 맷즈 부르거 (MADS BRUGGER)씨.한국계 덴마크인 희극배우 두명과 연극단 ‘붉은 교회’를 조직한 부르거 씨는 평양 체류 2주동안 북한의 철저한 통제와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기록영화를 만들어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 출품해 지난 1월 30일 세계영화부문의 심사위원단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덴마크라디오텔레비전방송공사(DANISH BROADCASTING CORPORATION) 언론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매즈 부르거 씨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기자
: 기록영화 ‘붉은 교회’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는 무엇입니까?
맷즈 부르거 (MADS BRUGGER)
: I WANTED TO INVESTIGATE AND EXPLORE NORTH KOREAN MENTALITY, AND I WANTED TO DEMONDTRATE HOW THE DREADFUL DICTATOPSHIP WARPS, PERVERTS, AND DETROYS HUMAN EMOTIONS AND HUMAN INTERACTIONS.
저는 북한의 정신세계를 탐구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가공할 북한 독재정권이 어떻게 인간의 정서와 상호 교감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독재체제의 취약분야인 희극과 익살을 활용했습니다. 왜냐면 독재체제는 익살과 희극에는 잘 대처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전
: 왜, 기록영화 대상국으로 북한을 선택했습니까?
부르거
: BECAUSE NKOREA IS THE WORST AND MOST SOPHISTICATED DICTATORSHIP IN THE HISTORY IN THE MANKIND.
왜냐면 북한은 인류사상 가장 악랄하고 고도의 독재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전
: 북한이 가장 악랄한 국가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시말해서 기록영화를 만들기 전에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아셨습니까?
부르거
: I READ ABOUT SEVERAL BOOKS ABOUT NORTH KOREA, DOCUMENTARIES. I SPOKE WITH EXPERTS IN DENMARK, AND TRIED TO GATHER AS MUCH INFORMATION AS I COULD…
북한에 관한 책들도 보고 기록영화도 보고 또 덴마크에 있는 북한 전문가와도 얘기를 나누면서 북한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했습니다. 북한에 가기 전에 현재 세계에서 남아있는 독재정권에 대해 읽어봤습니다. 처음에 저는 북한을 중국이나 라오스 처럼 사회주의 독재 국가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북한이란 나라에 대해 확실한 감을 갖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들어가서 보고 완전 충격 받았습니다.
전
: 레드채플(RED CHAPEL) 이란 극단 이름은 어떻게 붙이게 됐습니까?
부르거
: BECAUSE IN NAZI GERMANY, THERE WAS A ‘ROTE KAPELLE’ A COMMUNIST SPY CELL, WHICH IS IN ENGLISH ‘RED CHAPEL.’
나치 독일에 공산주의자 세포조직이 있었는데 독일어로 ‘로트 카펠’ 이란 단체였습니다. 영어로는 ‘레드 채플’ 즉 붉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전
: 북한은 언제 가신 겁니까?
부르거
: IT WAS IN 2006. WHILE WE WERE THERE, THEY WERE MARKING THE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2006년도 6월이었습니다. 우리가 거기 있을 때 한국전쟁 56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전
: 평양에 들어간 뒤 공연을 하기 전에 어떤 절차를 거쳤습니까?
부르거
: THAT WAS REALLY THE INTERESTING PART. BECAUSE THE TWO DANISH KOREAN COMEDIANS, ONE OF WHOM IS HANDICAPPED, MADE A DANISH VAUDEVILLE, LIKE A SHOWCASE OF DANISH COMMEDY...
바로 그 절차가 희한했습니다. 함께 간 동료 두명은 전형적인 덴마크 풍자극단의 희극배우들입니다. 그 중 한명은 장애인입니다. 이름이 야콥 노셀 (JACOB NOSSELL)인데 뇌성마비 장애인이죠. 저희가 준비해 간 풍자극은 덴마크의 저명한 동화작가인 크리스찬 안델센의 인어공주라든가 그밖의 동화를 토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검열관들은 저희 희극에서 덴마크 적인 부분은 모두 삭제해 버렸습니다. 삭제된 부분은 북한측 검열관과 예술 감독이 직접 쓴 대본으로 대체됐습니다.
전
: 검열 삭제당하기 전에 원래 준비했던 풍자극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부르거
: THAT WAS VERY ANARCHISTIC, VERY SPONTANEOUS ACT, WITH WHOOPIE CUSHIONS, WITH TAP DANCING, SHOUTING, SCREAMING WITH FUNNY WIGS, VERY MUCH OUT OF THE BOX, BUT STILL HONORING THE AGREEMENT WE HAD MADE WITH THE NORTH KOREANS THAT SHOWS COULD NOT CONCERN ANY KIND OF IDEOLOGY …
매우 무정부적이고 즉흥적인 촌극이었습니다. 방귀소리내는 풍선도 소품으로 사용하고 탭댄스도 하고 우스꽝스런 가발을 쓰고 괴성을 지르고 하는 매우 독창적인 희극이었습니다. 북한측과 합의한 대로 이념적인 요소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언어적 문화적인 장벽도 고려해 구성했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엽기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식으로 바꿔버린 결과물은 더 해괴했습니다.
전
: 연극에 사용된 말은 어느나라 말이었습니까? 조선말입니까, 덴마크말입니까 아니면 둘을 섞은 것이었습니까?
부르거
: IT WAS NON-VERBAL BECAUSE OF THE LANGUAGE BARRIER.
말을 사용하지 않은 무언극이었습니다. 언어장벽을 감안해 그렇게 했습니다.
전
: 청중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부르거
: THEY SEEMED TO BE VERY THRILLED ABOUT THE FINAL VERSION. I DON’T KNOW IF THE AUDIENCE HAD BEEN PREPARED, OR BEEN GIVEN ANY CUES ABOUT WHEN TO APPLAUD AND WHEN TO LAUGH…
아주 재미있어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박수도 치고 웃기도 했는데 그게 관리들이 시켜서 한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청중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습니다. 다만 저희가 평양 영화관에서 검열관들을 위해 시범공연을 할 때 청중 가운데 영화관 관계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술극장에서 진짜 공연을 할 때에도 그 직원들이 청중사이에 있었습니다.
전
: 2주 평양에 머무는 동안 공연은 모두 몇차례 했습니까?
부르거
: IN TWO WEEKS, WE DID TWO PERFORMANCES. THE TEST PERFORMANCE AND THE PREMIERE PERFORMANCE IN THE CULTURAL THEATER IN PYONGYANG.
두 번입니다. 영화관에서 시험공연으로 한 번, 그리고 예술극장에서 본 공연으로 또 한 번 했습니다. 그밖의 남는 시간은 저희가 본래 준비했던 대본으로 공연 연습 하는 데, 그리고 북한측 관계자가 본래 내용을 검열 삭제하는데, 또 검열 삭제된 뒤의 북한 각본대로 다시 연습 하는데 보냈습니다.
전
: 창작물에 대한 검열은 일정 수준 어느 나라나 있게 마련인데요, 예를 들어 사회적 윤리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선정성과 폭력성이 지나친 내용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실제 당한 검열이 다른 나라 검열과 극명하게 다르게 느낀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르거
: BECAUSE IT SEEMED TO BE VERY NATIONAL, CHOVINISTIC KIND OF CENSORSHIP WHERE THEY DELIBERATELY REMOVED EVERYTHING DANISH FROM THE COMEDY ACTS.
매우 민족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검열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촌극에서 덴마크적인 요소는 몽땅 없애버렸으니까요. 저희가 평양에 들어간 것도 북한이 내세운 국제 문화교류 차원이었는데 저희 연극에서 덴마크적인 문화를 반영하는 부분은 모두 제거해 버렸으니 그걸 어떻게 국제 문화교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무대에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같이 간 저희 단원 중 야콥 노셀은 장애인인데, 북측 감독은 그가 진짜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인데, 마치 장애자인 것 처럼 연극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무대위에서는 말을 하지 말고 호르라기만 불라고 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자인 야콥이 호르라기 부는게 너무 어렵다면서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북측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그 사람들은 오직 호르라기 부는 것만으로 언어 소통을 대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
: 북한이 장애인을 그렇게 차별하는 데 대해 놀라지 않았습니까?
부르거
: I WOULDN’T SAY IT SURPRISED ME, BECAUSE I WAS AWARE OF THE FACT THAT IN NORTH KOREA HANDICAPPED PERSONS ARE NOT TREATED AS THE HONORABLE GUESTS OF THE HOUSE…
그리 놀랄 것은 없었습니다. 사실 평양에 들어가기 전에 북한이 장애자를 차별한 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도 장애자가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이 장애자를 그토록 혐오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이 가장 꺼리는 것이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야콥 노셀의 장애를 약점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북한당국은 야콥이 평양에 온 것을 내심 기뻐한 면도 있습니다. 외부세계가 북한의 장애인 차별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갖고 있는데 장애자 야콥에게 친절하게 대해 그런 나쁜 인식을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속셈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를 안내 감시하며 조선말 통역을 한 여성 박 씨는 야콥을 마치 자기 자신의 아들을 다루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전
: 연극단에 야콥을 포함시킨 것은 부르거씨의 평양공연과 다큐멘터리 기록영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부르거
: VERY MUCH SO. HE IS A VERY IMPORTANT ELEMENT IN THE FILM. HE IS THE BAIT SO TO SPEAK.
아주 중요합니다. 제 타큐멘터리에서 중대한 요소죠. 야콥은 이를테면 제 기록영화의 메시지를 구성하는데 단초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전
: 같이 평양에 간 야콥 노셀과 사이먼 율 (SIMON JULE) 두사람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습니까?
부르거
: YES, THEY WERR BORN IN DENMARK, AND THEN ADOPTED TO DENMARK WHEN THEY WERE INFANTS…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기일 때 모두 덴마크에 입양됐습니다. 평양에 공연하러 간 것이 이들이 덴마크에 입양된 후 처음으로 한반도 땅을 밟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남한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는 사이먼이 서른 셋정도, 그리고 야콥은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전
: 어떻게 이들을 알게됐습니까?
부르거
: I KNOW SIMON FROM HIS VISITING DANISH BROADCASTING CORPORATION. HE’S ONE OF THE MOST GIFTED DANISH COMEDIANS.
사이먼 율은 덴마크에서 아주 뛰어난 희극배우입니다. 저희 방송국 출연차 왔을 때 알게됐습니다. 사이먼은 악기도 잘 다룹니다.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치고 아주 다재다능한 친굽니다. 그런데 사이먼한테 야콥에 대해 듣게 됐습니다. 야콥 역시 자기처럼 한국에서 어릴 때 입양됐는데, 장애인이면서도 시내 무대에서 재담과 만담을 잘 하는 희극배우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유망한 친구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죠. 이름도 재미 있었습니다. 야콥의 성인 노셀(NOSSELL)은 덴마크 말로는 ‘불알’이란 뜻입니다. 거기다 사이먼의 성이 율 (JULE)입니다. 율은 덴마크 말로 ‘크리스마스’란 뜻이구요. 그러니까 그 두친구 이름을 합치면 ‘크리스마스 불알’이 되는 셈이죠.
전
: 평양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북한 안내감시자가 함께 붙어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그 안내 감시자들은 어땠습니까?
부르거
: THEY APPEARED TO BE VERY LOYAL PARTY TROOPERS. WE SPENT A LOT OF TIME WITH A LADY NAMED MRS. PARK…
노동당에 아주 충실한 전위대원 같아 보였습니다. 저희들과 함께 다니면서 통역도 하고 안내도 하고 감시자 역할을 한 박 씨란 여성은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어로 말할 때는 군인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옆사람에게 설탕을 부탁하는 말을 할 때 “설탐 좀 주시겠습니까”라는 표현 대신에 “그 설탕 이리 달라요”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지는 않은지 혹은 ‘친애하는 김정일 장군’에게 불경한 짓을 하지는 않는 지, 또 우리가 북한의 친구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그런 것인지 등을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안내 감시자들과 신뢰를 쌓기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이먼에 대해서는 매우 호감을 나타냈습니다. 사이먼은 아주 강렬하고 남성적인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사이먼에게 평양에 남아서 영화배우가 되면 어떻겠냐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전
: ‘붉은 교회’ 기록영화 예고편에 부르거 씨와 야콥이 북한 안내감시자들과 함께 큰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에 나와 행진하는 모습이 나오던데요.
부르거
: THAT WAS REALLY THE SHOWDOWN OF THE WHOLE PROJECT. IT WAS ON THE DAY AFTER THE COMMEMORATION OF THE BREAKOUT OF THE KOREAN WAR, WHICH NORTH KOREANS BLAME ON AMERICANS FOR STARTING, WHICH IS A LIE…
그것이야 말로 북한당국이 우리를 초청한 목적의 대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한국전쟁 56주년 기념일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한 날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날인데요, 물론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한국전쟁은 스탈린으로부터 사주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시작했는데도 말입니다. 여하튼 안내감시자인 박 씨가 저와 야콥에게 소규모 평화집회가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의했습니다. 그 당시 사이먼은 장염과 불면증으로 몸이 편찮아서 자리에 없었습니다. 막상 따라 가보니 평양 시내 중심부에 있는 김일성광장이었습니다. 김정일 우상화의 중추적인 장소라고 할 수있는 곳인데요, 그들은 소규모 집회라고 했지만 얼핏 백만명은 될 것 같은 대규모 군중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행진할 때 우리를 앞으로 몰아 세워 선두에서 걷게했습니다. 정말로 해괴한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를 자기네 선전선동에 이용한 것이죠. 물론 우리도 그들을 이용했습니다만.
전
: 부르거씨가 그들을 이용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르거
: I WANTED TO GET MY POINT ACROSS THAT HE IS A CRIMINAL, GUILTY OF CRIME AGAINST HUMANITY AND A MASS MURDERER. AND THE PURPOSE OF MY FILM IS TO DEMONSTRATE THAT…
제 기록영화를 통한 반 김정일체제 선전에 이용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김정일이 대량학살과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주범이라고 봅니다. 제 영화의 취지는 그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북한은 그런 제 영화를 선전선동이라고 치부할 겁니다. 북한당국은 저희를 김일성 광장 대규모 집회에 앞세움으로 해서 저희를 이용한 것이고 저희 역시 저희들에 대한 북한당국의 신뢰를 이용해 영화를 만들어 반 김정일 체제 메세지를 전한 것이죠. 제 영화는 결국 북한 인권에 관한 것입니다. 북한문제를 말할 때 거론되는 것은 대부분 북한 핵무기나 핵개발프로그램에 대한 것입니다.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아주 비극이죠. 2천3백만 북한 주민이 매일 굶기를 밥먹듯 하며 아침에 일어나면 그 지옥같은 나라에서 독재자 김정일 통치에 대한 공포감 속에 또 하루를 살아야 하는 악몽을 되풀이 하는 것이죠.
전
: 덴마크에서는 상영됐습니까?
부르거
: IN DENMARK, IT HAD BEEN SHOWN IN TV SERIES, 4 PARTS TELEVISION SERIES. THEN WE DECIDED TO MAKE IT INTO A FILM WITH NARRATION ON…
덴마크에서는 텔레비전으로만 방영됐습니다. 4부작으로 나눠 연속 방영됐는데요 텔레비전용에는 영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시청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4부작 영상에 상황 설명 녹음을 곁들여 기록 영화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전
: 앞으로 이 영화를 다른 나라에 상영할 계획이 있습니까?
부르거
: I THINK NOW WE HAVE AN AMERICAN DISTRIBUTER BECAUSE THE FILM WON IN SUNDANCE FILM FESTIVAL. SOME PEOPLE ARE NOW INTERESTED IN SETTING UP IN MOVIE THEATERS.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을 탄 덕분에 미국내 영화배급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미국 극장에서 상영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못지않게 한국에서 상영을 하고 싶습니다. 작년 10월 비무장지대 인근의 경기도 파주시에서 개최된 디엠지 타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선을 보였습니다만 영화제 이외에는 남한에서 상영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된다면 효과가 클 겁니다. 일본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되면 좋겠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평양에 들어가 만든 기록영화로 올 1월 미국의 선댄스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덴마크 방송 언론인 매즈 부르거 (MADS BRUGGER)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