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북한 미술품 전문 화상 신동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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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북조선 화가들의 그림을 미국과 한국에 소개해온 화상 신동훈 씨. 북한 미술품에 매료된 신 씨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좋은 그림을 수집해 미국의 주요 도시들과 서울에서 벌써 7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 인근에 살고 있는 신동훈 씨는 현재 북화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 중입니다. 신동훈 씨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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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변에서 찍은 북한미술품 화상 신동훈 씨 모습. -사진제공-신동훈 씨 (사진제공-신동훈 씨)

: 한국에서도 조선화 전시회를 몇차례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번 하셨습니까?

신동훈

: 크게 한 것만 열 차례 될 겁니다. 중앙일보, SBS 방송, 한국일보, YTN 방송 등의 협조를 받아 함께 했습니다.

: 한국인들은 조선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텐데 조선화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저는 북화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조선화라고 하면 생소하거든요. 서울서 할 때 보면 그림인데도 정치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그림 그대로 순수하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 북화의 특색은 선명하고 간결하다고 북한의 한 대가가 평가했던데요.

: 그림에 힘이 있고 거칠지만 붓의 움직임이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나오는 그림이란 점에서 예술성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다른 잣대로 보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 달리 보는 분들은 그림을 선전,선동, 체제의 수단으로 보는 겁니까?

: 저는 순수 그림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선전,선동 주제의 그림들은 별도의 장르가 있습니다. 이 장르는 아직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초창기에는 제가 빨갱이의 그림을 취급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체제와는 관계가 없는 것인데도요.


: 주로 취급하시는 그림이 산수화, 화조화인가요?

: 산수화와 우리의 전통적인 몰골화입니다. 북화의 특징은 전통적인 우리 그림에다 나름대로 독창적인 색갈을 강하게 입혀 새 장르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색상이 강렬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작고한 선우영 화백같은 분의 그림은 힘이 있고 거칠면서 색상이 강렬하고, 정창모 화백같은 분의 그림은 따듯하면서 곡선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수묵화인데 거기에 색을 얹은 것입니다.

: 미국 주요도시에서도 북화 전시를 여러차례 하셨는데요.

: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엘에이, 시카고, 애틀란타 등 많이 했습니다.


: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미국사람들은 북화를 미술로만 봅니다. 북쪽 그림이라면 놀라기도 합니다. 미국인들도 그동안 북한에 대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정치적 인상만 갖고 있다가 그림을 보고는 그 자체가 좋으니까 작품에 대해 평가합니다. 미국내 한인 동포분들의 경우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러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 한국에서 전시할 때 주로 어떤 분들이 보러 오십니까? 미술품 수집가나 화가 같은 분들입니까?

: 아무래도 고향을 북에 두신 실향민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남북 이념을 떠나 순수하게 우리 미술을 보고싶은 분들도 많습니다.

: 미국에서 전시회할 때 오는 미국인들은 일반인들입니까 아니면 미술품 수집가들도 있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을 잘 안 삽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그림을 사본 적이 많지 않아서 여유가 있더라도 그림을 잘 사지 않습니다.

: 전시회를 열기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소개해 주시죠. 우선 그림을 구입하거나 대여 받아야 할텐데요.

: 워싱턴에서 화랑을 하면서 북쪽 그림을 보고 싶어 중국 북경에 가서 북한 그림을 접했습니다. 또 가짜가 많아 이름있는 좋은 그림은 직접 북한 화가를 만나, 진품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서 만나다 보니 그림에 대한 설명도 듣고 수준있는 좋은 그림을 알게됐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화가의 그림을 돈 주고 살 형편이 못돼 화가의 협조 [기부, 대여]를 받기도합니다. 화가들도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좋은 그림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저 역시제대로 된 수준있는 그림만 취급하고 싶은 생각이 있구요. 북한에서 그림을 일단 갖고 나오면 관련 경비가 많이 듭니다. 우선 그림을 넣을 액자를 만들어야 하고, 또 북화를 소개하려면 언론 광고 비용도 듭니다. 액자 비용은 그림으로 치루기도 합니다. 또 언론의 홍보를 위해 언론사의 협조를 받아 같이 전시회를 엽니다. 그래야 전시회 홍보가 돼 사람들이 오지 않겠습니까?


: 전시회 장소를 확보하는 데도 비용이 들 텐데요.

: 전시장을 빌리자면 당연히 돈이 들죠. 전시에 협조해주는 언론사에서 장소를 구해주기도 하고 신문사 자체에 전시할 장소가 있으면 내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아 다른 장소를 대여해야 할 때는 그 대가로 그림을 드리기도 합니다. 물론 어렵지만 재미도 있습니다. 순수한 예술 세계에서는 이런 일을 이해하는 분들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반드시 협조자가 나타나더군요. 하지만 과거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너무 서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 공익성을 고려한 언론사에서도 많이 도와주더라구요.

: 전시회 하면서 북한 최고작가들 작품을 팔아본 적이 있을 텐데요.

: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습니다. 북화를 좋아 하는 분이 있어 갖고 싶어하면 제 값을 못 받고 드리기도 합니다. 그림은 예술혼이 들어 있는 것이라서 값을 매길 수 는 없는 겁니다. 하지만 북화의 가격을 서울 미술계 수준에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갖 졸업한 미술대 학생들의 전시 작품 가격에 보통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게 값을 매겨 놓지만 특별 유명인사의 그림이 아니라든가 인맥이 없으면 그림이 잘 안 나갑니다. 북화를 좋아하고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형편대로 내고 가져 가라고 합니다.

: 북한 최고 작가들, 이를테면 선우영, 정창모, 김상직, 김기만 등 그런 분들의 그림은 미국돈으로 얼마 정도에 팔립니까?

: 그림에는 가격이 없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한테는 큰 가격에 나갈 수 도있지만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북한 최고 작가들 작품은 2, 3천불정도 호가를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 그렇게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가격을 매기는 것은 북화의 작품성을 고려할 때 미안할 정도입니다. 예술성 수준에 맞는 대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 과거 가짜그림으로 손해를 보셨다던데요.

: 손해 많이 봤습니다. 어떤 일이든 자리 잡기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진정한 화상 역시 제대로 배우는데 수업료가 엄청 듭니다. 1988년에서 90년대 초 시행착오를 많이 했습니다. 초창기에 북한의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을 구하는데 모든 게 다 진짜로 보이더군요. 중국사람, 중국내 조선족, 북한에서 나온 장사군들을 상대로 북화를 사는데 제 눈의 수준이 낮다보니 그랬죠. 평양에 들어가 그곳 화상에게도 그림을 샀는데 가짜가 있었습니다. 서울이나 뉴욕에도 속여 파는 화상들이 있는데 거기라고 없겠습니까? 속아 산 적이 많지만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 저의 화상 딜러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 북한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최고화가들 작품을 많이 취급해 오셨는데, 그 중에 호랑이 그리길 좋아했다는 선우영 작가에 대한 생각이 남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2천9년 8월에 타계하셨다죠?

: 그렇습니다. 작년 8월 7일날 돌아가셨죠.


: 그분과의 인연으로 잊지 못할 일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 북한이 최고의 영웅화가로 자랑하고 있는 분이죠. 그분이 영국 런던에서 전시할 때 갔고, 미국에도 오고 싶어 했지만 못 왔습니다. 제가 미국 국무성 도움을 받아 해드리고 싶었지만 후원자 문제 체제 비용 문제 비자 문제 등르로 못했습니다.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분 미국내 동포들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가장 힘 있고 좋은 그림이 나올 때 돌아가셨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냥 가슴에 묻고 말아야죠.

: 2006년에 미국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박길연 대사와 한국 공관에서 총영사가 왔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얘기 좀 해주시죠.


: 제가 뉴욕에서 전시회를 여러번 했습니다. 그때마다 유엔주재 북한 대사와 한국 대사 그리고 한국 총영사를 초청했었지만 온 적이 없습니다. 박길연 대사의 경우는 저도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들른 적이 한 번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2천6년 그때는 두 분이 다 오셨습니다. 기막힌 분위기가 연출된 셈이죠. 그때 제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조선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화상 신동훈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