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탈북 후 중국에서 기독교를 알게 된 소녀 윤나영이 늘 기도하던 것이 있습니다. "내 동생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다 주세요. 엄마와 저도 아무 일 없이 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저희 가족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그 다음 해 베트남을 거쳐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간 나영이는 도착 석달 만에 사랑하는 동생을 찾았습니다. 나영이의 기도는 모두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고향을 묻는 남한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라고 말하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탈북학생 친구들과 함께 책도 펴내고 대학입학 검정고시도 치렀습니다. 하지만 나영이에게 또 다른 소원이 생겼습니다. 운전면허를 받아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과 미용사 자격증을 따 내 자신의 이름을 붙인 미용실을 차리는 것입니다. 탈북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셋넷학교 졸업반의 윤나영 양을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 윤나영씨가 4년전에 한국에 도착했죠? (네.) 생일날과 같은 날 도착하셨다고 하는데.
윤나영
: 저도 놀랐어요. 베트남에 있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마조마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니까 제 생일이더라구요.
전
: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해 정착교육을 받는 하나원에 있을 때 뒤에 도착한 남동생을 만났다고 했잖아요? (네) 그런데 동생두고 먼저 하나원을 나오기 싫어서 동생도 데리고 나왔다던데.
윤
: 네. 조기퇴소라고 해서 보호자나 가족이 먼저 와 있으면 데리고 나올 수가 있어요.
전
: 어떻게 동생이 늦게 왔어요?
윤
: 동생이 출발하기는 먼저 출발했어요. 제 동생은 몽골로 왔어요. 그런데 한동안 뉴스가 됐던 대로 당시 베트남에 북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저희가 먼저 오게 됐어요.
전
: 처음 도착했을 때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중학교 2학년으로 시작했다고 했죠? (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던데.
윤
: 네. 너무 어려웠어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오자마자 중학교를 갔어요. 학교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쉬는 시간마다 제게 와서 질문을 하고. 저는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너무 힘든 거에요. 그래서 집에 오기만 하면 계속 엄마한테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하고…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니 중학교는 어떻게 잘 졸업했어요.
전
: 회령에서 고등중학교 3학년까지 공부했다고 들었는데요?
윤
: 회령에서는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어요. 엄마 아빠도 안 계시고 학교를 다니다 말다 하면서 학교를 잘 다니지 못했어요. 계속 일만 하다 보니 학교도 띄엄띄엄 다니게 되고 그래서 학력이 부족해서 거기서 졸업도 못했어요.
전
: 서울에서 중학교 졸업 후에 미용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적응하기 어려웠다면서요? (네.) 미용 고등학교에서는 미용술을 배우는 곳인가요?
윤
: 네. 미용도 배우지만 다른 과목도 배웁니다. 하지만 미용쪽을 주로 하면서 실습도 하고 합니다.
전
: 왜 적응이 어려웠어요?
윤
: 적응이 어려웠다기보다는 친구들을 잘 못 만나서요.
전
: 남동생은 지금 몇 학년이죠?
윤
: 남동생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전
: 그러면 이제 곧 졸업하겠네요. (네.) 그러면 일반 고등학교 인가요?
윤
: 네. 남동생은 여기 와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다녔습니다.
전
: 그러면 학교 적응은 잘 하구요?
윤
: 네. 그럭저럭 잘 하고 있어요.
전
: 그런데 윤나영 씨가 돈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아르바이트는 잠깐 잠깐씩 돈을 벌기위해 일하는 것인데, 피씨방, 호프집, 주차도우미 등의 일을 했다고 책에 썼던데, 이런 일들이 어려웠어요?
윤
: 처음에는 말투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모든 게 다 사투리니까 무엇 하나 시켜도 그게 뭔지 몰라서 못 찾고, 어떤 물건을 달라고 해도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봐야 하고.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전
: 그러니까 남한 사람들이 쓰는 용어를 못 알아 들어서 일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얘기군요. 지금 어머니는 무얼 하고 계세요?
윤
: 어머니는 기술학원 다니며 배우시다가 요즘 몸이 안 좋으셔서 쉬고 있어요.
전
: 2009년, 작년에 셋넷학교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요, 탈북학생들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셋넷학교에 들어가서 모든 일에 자신감도 생기고 많이 변했다고 들었어요. 무엇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윤
: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무엇 하나 발표하고 그러는 게 얼굴 빨개지고 민망해서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셋넷학교에서 캠프같은 곳 많이 다니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도 접해보고 하니까 차츰 차츰 나아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전
: 이제 대학입학 검정고시를 봤는데요, 대학교 가기 보다는 미용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고 싶다, 그래서 미용사,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던데 그 얘기좀 해주세요.
윤
: 공부로는 대한민국에서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1등은 될 수 없으니까 차라리 전공을 살려 진로를 찾아 나서면 그게 사회 적응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 했어요.
전
: 나영 씨는 한국에 와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윤
: 처음에 힘들 때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생각 많이 했어요. 다시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전
: 지금은 좋다는 것이 희망이 있어서입니까?
윤
: 네. 하고 싶은 뭔가가 있고 주위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더 생겨서 그렇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미용사 자격증을 따 내 자신의 이름을 붙인 미용실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는 탈북학생 윤나영 양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