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우아동을 돕는데 헌신한 미국인 양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한-슈나이더 국제아동재단 (HAN-SCHNEIDER INTERNATIONAL CHILDREN'S FOUNDATION)을 세운 샘 한 (SAM HAN) 대표. 한국의 고아였던 그는 청소년 때 아서 슈나이더 (ARTHUR SCHNEIDER)씨의 아들로 입양돼 대학원 까지 졸업하고 사업가로 성공한 뒤 북한의 고아들을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샘 한 씨는 현재 암과 투병하며 시한부 삶을 살고 있지만 과거 자신과 같은 고아들을 위해 물질적 지원은 물론 이들이 건강하고 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샘 한 씨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 1995년이면 15년 전인데요, 북한을 처음 방문해서 그때 보았던 굶주린 아동들의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
샘 한
: 제가 그 당시 북한에 개인적으로 9일 동안 있었는데 이틀 간은 꼬박 그쪽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전경남 위원장하고 보냈습니다. 95년은 아시겠지만 참 힘들 때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을 때였죠- 제가 방문을 끝낼 무렵, 그쪽에 요청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고아원을 보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한 서너군데를 데려다 줘서 아이들을 보게됐습니다. 그때 제가 60년대 중반 가졌던 꿈을 비록 늦긴했지만 서둘러야 하겠구나 느껴서 4년전에 재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
: 그런데 2008년으로 알고 있는데요, 황해도 사리원의 3층짜리 고아원을 방문하셨을 때 북한 당국자가 1층만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한 이사장께서 고집해서 결국 3층 모두를 보셨다고 하던데요.
샘 한
: 가니까 아래층에 있는 두 방의 아이들을 보여줬습니다. 방바닥에서 반찬도 없이 국에다만 밥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먹지를 않고 먹지를 않고 저만 처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몇분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저귀가 이상하더군요. 빤쓰를 벗겨 보니 카드보드 위에 비닐을 덮어 고무줄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저귀가 천이나 부드러운 섬유가 아니고 곽조가리 같은 걸로 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도 보여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미국에 돌아가면 지원하는 분들이 이런 저런 것 물을 텐데 사정을 모르면 어찌 헌금을 받을 수 있겠냐고 주장해서 결국 2층을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 많은 아이들이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4월이었는데 북한은 쌀쌀했습니다. 2층 끝나고는 내려가자는 걸 저는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거기 아이들은 모두 누워있고 형편 없었습니다. 아프고 영양실조에 옷도 입히지 않았고요.
전
: 한-슈나이더 재단이 지원하는 물품은 어떤 것들입니까?
샘 한
: 주로 약품과 비타민 그리고 영양식입니다.
전
: 영양식과 함께 아동복 같은 것도 보내십니까?
샘 한
: 미국에서도 보내지만 주로 중국에서 만들어서 보냅니다.
전
: 물품들은 직접 구매해서 보내는 겁니까?
샘 한
: 저희는 휘드마이 스타빙 췰드런 재단을 통해서 도네이션을 하고 저희가 미네소타에서 여기 로스엔젤레스 오는데, 여기서 다시 중국 가는데 들어가는 돈은 저희 재단에서 지불됩니다.
전
: 그러니까 북한에 물건을 직접 지원하는 구호기관에 헌금을 기부하신 다는 것이군요.
샘 한
: 그렇습니다.
전
: 황해도 사리원 고아원 돌아본 뒤에 그쪽 관리들이 고아원 두 곳을 더 지원해 달라고 했다던데요.
샘 한
: 당시 어린이들이 있는 센터가 몇군데냐고 물었더니 확실한 것은 안 알려줬습니다. 저희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북한 전국에 40개 내지 50개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아이들이 2만 3,4천에서 3만명 정도 되고요. 그쪽 사람들이 이것들을 모두 맡아서 지원해 줄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없고 일단 한 두곳 협력하면서 그 결과를 보고 하자고 했죠.
전
: 그런데, 2009년, 재단일을 돕고 있는 조엘 킴 목사가 서너차례 북한에 가서 북한 관리들과 협상을 했다고 하는데 그 협상 내용이 지원물품을 제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보장을 요구한 것이라면서요?
샘 한
: 바로 그렇습니다. 2008년도에 협상을 했었습니다. 북측이 협상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저희가 지원을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작년에 저희가 지원품 한 컨테이너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와 약속한 대로 지키지를 않았습니다.
전
: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에게 전달이 안됐다는 말인가요?
샘 한
: 어린아이들에게는 전달됐지만 우리가 지정한 고아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쪽 얘기로는 우리가 지정한 고아원 아이들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 보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아원에 어떤 아이들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투명하게 이행되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정한 고아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믿고 보냅니다.
전
: 언제쯤 보냅니까?
샘 한
: 다음 주에 보냅니다. 북한에는 6월 중순쯤에 도착할 겁니다.
전
: 이번에 가는 것은 영양식하고 옷같은 것입니까?
샘 한
: 이번에는 우리가 다행스럽게도 분유를 구했는데 북한측에서 분유는 다음번에 보내고 영양식만 보내라고 해서 이번에는 영양식만 보내고 분유는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아이들에게 분유가 더 급한데 상황이 그래서 그렇게 됐습니다.
전
: 계속해서 북한 고아들을 위한 지원을 하고 계시고, 또 지금 재단 사업을 한 시도 지체할 수 없고 사업 결실을 보고 싶다고 재단 인터넷에 글을 올리셨던데요. 지금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불치의 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암 진단을 받았습니까?
샘 한
: 2002년 12월에 받았습니다. 4기입니다. 한국말로는 골수암이라고 하더군요.
전
: 2002년에 진단받으셨다면 8년을 잘 견뎌오셨는데 북한 고아들을 돕고 탈북고아 입양을 적극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은 이런 어려운 병에 걸려 급박함을 느끼셨기 때문이겠죠?
샘 한
: 물론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의 불우 아동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미국의 민간 단체 ‘한-슈나이더 국제아동재단’의 샘 한 이사장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