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탈북자들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정착을 시작한 것은 2007년. 현재 런던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국 내 탈북자들의 수는 300명 가량입니다.
이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영국에서 새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에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먼저 와서 살고 있는 4만5천여명의 한국인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한 동포라는 정체성을 갖고 한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직까지 쉽지 않다는 것이 한국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영국협의회 김 훈 회장의 말입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재영한인회 부회장, 재영 대한체육회 회장, 재유럽 입양인후원회 회장, 재유럽경제인협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그는 영국과 유럽에 살고 있는 한인사회의 겉과 속을 꿰뚫고 있는 몇 안되는 영국 한인사회의 터줏대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 16개국 한인사회의 소식을 전하는 주간신문 '유로저널'의 발행인이기도 한 김 훈 회장을 런던 인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 런던의 평통 사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해 주시죠?
김훈 회장
: 작년에 평통 회장으로 위촉돼 8월 20일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탈북자유민들과 한인들을 결집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추석 잔치를 첫 번째 사업으로 기획했습니다. 당시 120명의 탈북자들과 50-60명의 재영 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여흥도 즐기는 잔치를 처음 했습니다. 설날에도 그와 같이 또 한 차례 회합했습니다. 차례상도 준비해 북한쪽 조상님들과 남아 계신 부모님들께 절을 올리는 기회도 만들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재영 한인사회가 탈북자유민들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들도 재연한인사회에 녹아들지 못했고 양지보다는 음지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통에서는 그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탈북자유민들이 한인사회에 소속감을 같고 일원화 돼 같이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남북통일에 대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남북통일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민족통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에 나와 있는 남북한 주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남북한 주민은 물론 중국에서 온 동포들, 즉 조선족들까지도 하나로 묶는 일이 저희들의 가장 기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전
: 한인을 제외한 중국동포,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김
: 북한이탈주민은 2-3백 명 정도입니다. 많은 때는 5백여명까지 됐었습니다. 중국동포 조선족은 1,000 명 이상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족들은 중국인 입국에 대한 영국 정부의 심사가 완화하면서 유학으로 들어 오는 경우도 늘어나 지금 중국동포의 경우는 2천 명가량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
: 그 분들은 중국 여권을 갖고 있겠죠?
김
: 네. 중국 여권을 갖고 있습니다.
전
: 미국이나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새 나라에 와서 정착하는 데는 일자리, 언어장벽이 가장 큰 문제일 텐데요, 민주평통에서는 탈북자유민들이 영국에 정착하는데 어떤 지원과 후원을 하고 있습니까?
김
: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 달리 탈북동포뿐만아니라 한인들도 직종의 한계성이 있습니다. 동포사회가 미국보다 적습니다. 유학생을 제외하면 영국 내 한인 교민은 실제 7-8천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종사하는 직종은 대체로 요식업, 여행사, 그리고 미장원 열 댓 개. 학원 10여개. 그리고 주재 상사원이나 유학생으로 왔다가 영주권을 받아 정착한 사람들이 차린 무역회사 몇 개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탈북자유민들과 한인사회가 교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왔습니다. 이들과 교류를 시작한 것은 민주평통이 처음입니다.
전
: 결국 한인들 자체도 직종이 제한돼 있다는 얘긴데요 그렇다면 탈북자유민들의 경우 취업은 어떤 곳에 합니까?
김
: 취업 이전에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입니다. 남한에서 오신 분들은 영어 교육이 어느정도 돼 있는데 탈북자유민들의 경우는 한국에서 왔든 중국에서 왔든 아니면 제 3국을 통해 왔든 언어(영어)가 안 된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한인동포 업체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14-5년전에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영국에 들어 올 때도 역시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축 현장이나 요식업-식당에서 일하든가 수퍼- 식품점에서 일하지 않으면 달리 일 할 데가 없었습니다. 탈북자유민들도 마찬가지로 거기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어느정도 경제적인 기반도 잡고 언어 문화생활에도 익숙해지면 작은 자영 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하지만 역시 언어 문제 때문에 자영사업을 한다고 해도 제한적인 직종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
: 현지 탈북자들 중 몇 퍼센트가 일자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반 이상은 됩니까?
김
: 취업과 관련해 제일 큰 문제는 그분들의 체류 자격 여부입니다.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받은 분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과 다릅니다. 난민 지위를 받은 분들은 영국 정부로부터 정착 지원금과 같은 혜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지원금 수령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규 일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정규적인 일자리를 잡으면 정부의 지원금이 감축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
: 한국 사정과 비슷하네요.
김
: 네. 그건 어느나라나 똑 같습니다. [정식 취업을 해도] 문제는 언어나 문화 장벽으로 직장에서 받는 보수가 정부의 지원금보다 적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취업하기보다는 지원금 받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죠.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영국 생활에 익숙해 지도록 노력해야지요. 언어도 부지런히 배우고 문화도 익히고 해서 미래를 위해 준비 해야죠. 항상 지원금만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 세대도 생각해야 하고.
전
: 자녀들은 영국에서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죠?
김
: 네. 영국에서는 공립학교는 모든게 무상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적응하는 게 문제입니다. 남한에서 온 주재상사 교민들의 자녀는 언어 개인지도도 받고 학원도 다니지만 탈북자유민 자녀들은 경제적 여건이 안돼 영어 개인지도를 받기도 어려워 처음 와서 적응하는데 상당 기간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전
: 그러니까 사교육이 어려우니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배우면서 본인이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네요.
김
: 네. 우리 한인들이 이민 초기에 적응해야 했던 것과 똑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죠.
전
: 다음은 주거문제에 관한 것인데요, 여기 뉴몰든이 한인밀집지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곳에 자리잡고 있겠죠?
김
: 그렇습니다. 일거리가 한인사회에서 나오다 보니까 한인사회를 벗어나기가 어렵죠. 그러다보니 그분들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뉴몰든 한인타운의 집세가 다른 지역보다 좀 비쌉니다. 그러니 지출폭이 더 큰 것이죠. 제가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만해도 여기서는 살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기숙사가 런던에 있다는 점도 그랬지만 제가 공부할 때는 경제가 어려워 영국에 일자리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 식당은 두 곳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한 달에 110시간을 일해야 한 달 방세를 마련했습니다. 부부가 살 수 있는 방 한 깨짜리 입니다. 요즘은 그때보다 방값이 너댓배 올랐지만 임금이 워낙 빠른 속도로 올라 지금은 한달에 60-70시간만 일해도 방세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뉴몰든지역은 방세가 비싸기 대문에 살기가 어렵죠.
전
: 예를 들어 3인 내지 4인 탈북자유민 가족이 정부의 지원 없이 본인 스스로 집을 얻어 한 달 살려면 얼마정도의 수입이 필요할까요?
김
: 3, 4인 가족이라면 최소한 부부 방이 하나 있어야 하고 애들 방이 있어야 하겠죠. 그러면 영국 주택의 구조로 볼 때 방2개에 거실 하나가 되는 집입니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는 집 주인한테 거짓말 하고 방 한 개, 거실 한 개 짜리 집에 들어가 방에서는 부부가 자고 거실에서는 애들이 잘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한다 해도 적어도 1,300-1,400파운드는 듭니다.
전
: 천3,4백파운드라면 한국돈으로는 얼마정도 됩니까?
김
: 2백5십만원 정도입니다.
전
: 미국돈으로 치면 2천5백달러 정도가 된다는 얘기네요.
김
: 네.
전
: 거기에는 먹는 것도 다 들어간 것이겠죠?
김
: 네. 다만 풍족하지는 않고 일반적으로 먹는 생활이 되겠습니다. 영국에서는 집세와 공공요금이 가장 비쌉니다. 이것이 영국에서 살기 어려운 점입니다.
전
: 탈북자유민들이 정착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좌절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한편 개척정신이 강해서 성공을 향해 가는 부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힘들어 하는 분들이 어느정도나 되는 것 같습니까?
김
: 꼭 그렇게 힘들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탈북자유민들 뿐만 아니라 이곳 식당에 요리사로 오신 한국 분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식당의 요리사로 오신 분들도 처음에는 언어나 문화적으로 소통이 안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6-8년동안 열심히 일해 무역회사나 주류사회에서 크게 활동하시던 분들을 제외하고는 한인 동포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영주권을 받고 식당을 차려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
: 그러니까 그분들이야 말로 피땀흘려 자수성가한 분들이란 얘기군요.
김
: 맞습니다. 그래서 탈북자유민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탈북민들도 언어적으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북한에서 대학 나오신 분들도 있고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오신 분들도 있어 본인들이 노력하고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만 한다면 오히려 적응을 더 잘 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요식업 경력으로 오신 한국 분들 가운데는 국민학교나 중학교 졸업만 하신 분도 있습니다. 저는 탈북자유민이나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나 노력해 정착하는데에 다를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 탈북자유민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는 교회를 주축으로 교민사회가 결집되고 또 거기에서 생활정보도 오갈 수 있을 텐데요. 교회 나가시는 분들이 많다죠?
김
: 아무래도 탈북자유민들이 대부분 중국에 있을 때 도움을 주신 분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처럼 종교에 몸 담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통해 한국에서 오거나 중국에서 직접 들어온 탈북자유민들이 대부분인데요, 신앙생활이 이미 그쪽에서부터 싹이 터서 들어오신 분들이라서 여기와서도 마찬가지로 그 생활을 지속하는 것 같습니다.
전
: 여기서도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겠죠?
김
: 그렇습니다.
전
: 김 회장께서 알고 계신 탈북자유민 개인이나 가족 중에 정착에 성과를 보이거나 작은 규모나마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례가 있습니까?
김
: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가정은 부부가 상당히 성실하게 일하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일단 정착의 기본은 난민자격을 받느냐 여부이고 난민 지위를 받은 분들의 경우 최저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 신분이 불확실하거나 아직 미정인 사람들은 정착에 어려움이 있겠네요.
김
: 그렇죠. 그런 분들은 직업을 갖기도 어렵고 정신적으로 안정이 안되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소위 쓰리 디 직종 밖에는 기회가 없죠. 신분이 안정된 사람들은 마음대로 노력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전
: 민주평통에서 앞으로 탈북자유민들을 위해서 계획하고 있는 지원사업은 어떤 것인지요.
김
: 한인사회 단체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던 문제입니다. 민주평통이 처음으로 작년에 탈북자유민들과 교류를 시작한 셈이지요. 재영한인회에서는 그런 교류가 전혀 없었고 지금도 없는 상황입니다. 저희 민주평통에서 탈북자유민들과 서너차례 행사도 같이 해보고 또 탈북자유민들의 도움으로 북한의 실상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강사로 나와서 한인타운에서 한 번 했습니다. 그때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이런 강의내용은 젊은이들이 많이 들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올 11월에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런던에서 북한실상 강연 행사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탈북자유민들과 한인사회의 교류가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제 임기가 2년이고 이제 10개월 남았습니다. 지난 1년은 탈북자유민들과 모임과 행사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서로 알기 위한 교류였다면 앞으로의 사업으로는 탈북자유민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이 있는 만큼 이들의 자녀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계신 분들 중에 큰 회사를 갖고 있는 분들이 탈북자유민들의 고용을 늘리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벌써 탈북자유민 7-8명은 취업이 됐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영국협의회의 김 훈 회장을 만나 영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정착 생활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