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탈북자 출신 정치학 박사 안찬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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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 인민군 부소대장에서 남한의 정치학 박사로 거듭난 탈북자 안찬일 씨. 1979년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쪽으로 망명한 그가 이제는 한반도 문제 전문 학자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남북문제에 대한 연구와 강의로 통일의 한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미국의 명문 버지니아 주립대학교의 초청 교수로 온 안찬일 박사를 전화로 만나봤습니다.

문:

지난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을 한 뒤에 상당한 경제 지원 약속을 받고 조건부로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보도를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안:

아마 중국측에서도 북미 직접 양자대화에 우려를 가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평양이 워싱턴과 너무 친밀하게 접근하면서 어떤 파격적인 결과를 협상을 통해 도출할 때 중국으로서 가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즉 자신들의 북한에 대한 후원과 , 좀 확대해서 말하면, 자신들의 지배적 역할이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고, 북측도 그점을 이용해서 중국측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죠. 그래서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말을 했고요. 결국 두나라가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많이 획득하면서 지배, 복종, 우방의 관계를 적당히 유지하는 목적으로 이번 원자바오 총리의 평양 방문이 이뤄진 것으로 봅니다.


문:

하지만 중국은 북한과 미국의 양자회담을 지지한다고 해왔는데요.


안:

물론 그런 지지 입장을 표명해 왔지만 평양과 워싱턴이 직접대화를 통해 그것이 대화로 끝나지 않고 어떤 파격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이 양자 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비롯해 그동안 외교적, 국제적으로 쟁점이 돼왔던 문제들에 대해 극적 타결을 이뤄낼 경우 중국으로서는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역할이 많이 축소될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평화, 외교, 국제관계라는 틀에서 지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북미가 급속도로 접근하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별로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북한 경제가 1990년대 중반이후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정도 탈피했지만 근래에 다시 식량사정도 악화되고 어렵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런 경제상황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걸 알텐데 어떻게 이를 헤쳐나가려 할 것 같습니까?


안:

북한의 경제는 계량적으로 볼때 30퍼센트도 가동안된다고 경제 학자들은 분석하지만, 제가 볼 때는 10-20퍼센트만 가동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북 당국자 스스로도 예산 재정정책을 통해 판단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자들은 중국의 지원, 미국과의 수교, 또 최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듯이 남한에 접근해 지원을 바라는 제스쳐를 많이 보였습니다. 이건 결국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구호에 불구하고, 외부 자본이나 물질적 지원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들의 경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가 일어서는 길은 대외적 지원, 다시말해서 북한이 문을 여느냐 마느냐와 직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문:

하지만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시각 아닙니까?

안:

안하려 하고 있고 선군정치 자체가 개혁개방과는 완전히 비대칭을 이루는 것이지만, 제가 볼때, 현재 북한으로서는 속도는 완만하더라도 개혁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 경제는 지금껏20년간 해체의 길을 걸어와 최악의 상황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치는 정지되고 군사는 그럭저럭 선군이념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경제는 해체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북 내부의 개혁개방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도 높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체제 유지 자체가 어려운 지경까지 와 있습니다. 거기다 세습이라는 권력교체기에 접어들면서 새로 집권하는 신진세력은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을 굉장히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마 북한도 스스로 주저앉지 않기위해서는 개혁개방쪽으로 가야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

버지니아 주립대학교는 워싱턴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곳인데요, 그곳에서 주로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시죠.

안:

거기서 남북관계나 북한문제- 지금 북미 양자회담 을 양국이 합의한 뒤에 미국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데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곳 교수들과 학생들과 소규모 세미나를 이미 몇차례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입니다. 버지니아 대학 외에 컬럼비아 대학이나 하버드 대학에도 세미나 일정을 대충잡았습니다. 그 대학들에 가서도 북미관계로 높아진 북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돕는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문:

한국에서는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치셨는데요.

안:

네, 서강대에서 두과목 가르치다가 이번 학기부터 잠간 쉬기로 하고 미국에 왔습니다.

문:

그리고 북한 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안:

북한연구소에서는 외부학자들, 대학교수, 통일문제 남북관계 연구하는 박사급 50명이상 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연구위원자격으로 있습니다.

전:

그 전에는 건국대학교에 강의하셨었죠?

안:

그렇습니다. 거기서 10년 강의하다가 3년전 서강대에 갔습니다.

문:

남한으로 망명하신게 1979년이었죠?

안:

1979년 7월 입니다.

문:

벌써 30년 넘었네요.

안:

네, 올해로 30년을 맞았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북한에서 3분의 1, 남한에서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는 통일국가에서 3분의 1을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분의1을 통일국가에서 살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반도 통일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 때문인가요?

안:

그렇죠. 제가 처음 왔을때 북한에서 3분의 1 인생 25년을 살았으니까 남한에서 25년만 더 살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30년을 살았지만 아직 통일이 안되고 있으니 포기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

북한에 남아있는 친척 친지 있습니까?

안:

더러 있는데 제 직계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희생된 걸로 확인됐고, 나머지 친척들도 저 때문에 불이익 받았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전해들었습니다. 언제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남한에서 성공하려 많이 노력해 왔는데 가족들이 희생된 만큼 제가 성공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앞으로도 그 희생에 대해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

현재 가족 상황을 소개해주시죠.

안:

남한에서는 집사람이 서울에 있고 애들 둘은 미국에서 공부해, 큰 애는 졸업후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취직했습니다. 둘째는 아직 공부하고 있습니다.

MC: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 인민군 부소대장에서 남한의 정치학 박사로 거듭난 탈북자, 그리고 현재 미국에 초청교수로 와 있는 안찬일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