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초대석] 북한 나진선봉에 탁아소 짓고 있는 박창득 가톨릭 원로 사제

박창득 가톨릭 원로 신부(오른쪽)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박창득 가톨릭 원로 신부(오른쪽)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RFA PHOTO/ 전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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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을 수십차례 드나들며 국수공장을 세우고 라면식당을 만들어 북한 주민 돕기를 해온 미국 뉴저지주의 박창득 가톨릭 원로 신부. 7순이 넘은 나이로 2년 전 간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아직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이번에는 북한 어린이를 돕기위해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모금활동에 나섰습니다. 북한의 나진선봉에 500여명의 어린이들을 돌보는 탁아소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11월 중순 버지니아주의 한인 천주교회를 찾은 박창득 신부를 만나봤습니다.

전수일 : 북한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박창득 몬시뇰 신부: 네 지난달에 다녀왔습니다. 10월 20일 나진선봉에 들어갔다가 11월 3일 귀국했습니다.

전: 이번에 가신 목적은?

박: 그쪽에서 탁아소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요. 건립 합의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네 살부터 여섯 살사이의 어린이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탁아소입니다. 그쪽에서는 유치원이라고 합니다. 유치원 역할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기능을 하죠. 아침에 왔다가 오후에 귀가하는 아이들도 있고 거기에 계속 머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식사도 제공합니다. 양식 자체도 부족하거니와 부모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런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 두 개 시설은 이미 있다고 합니다.

전: 탁아소에 아이들을 맡기는 부모들은 어떻게 선정합니까? 여러 명이 있을 텐데.

박: 한 동네를 맡는 것이죠.

전: 그러니까 한 동네에 있는 전 주민의 아이들을 맡는 다는 것이네요.

박: 그렇죠. 대략 500명 정도입니다.

전: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입니까? 젖은 아닐테고.

박: 저희가 양식을 별도로 지원합니다.

전: 어떤 식량인지요.

박: 거기서 원하는 것을 줍니다. 쌀이든 콩이든. 주로 두유를 많이 먹이는 것 같아요. 콩을 갈아 만든 것이니까 영양가가 많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으로는 쌀이죠.

전: 탁아소의 건설은 언제부터 됩니까?

박: 지금 시작이 됐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 바로 합의를 보고 즉시 시공을 했습니다. 불도저로 땅을 밀어 기초가 만들어졌고 지하실 공사도 됐습니다. 겨울에 땅이 굳어지기 전에 그렇게 해야 내년 봄 4 ,5월이 되면 2차공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 완공 예정일은 언제입니까?

박: 내년 10월로 보고 있습니다.

전: 한 1년 정도 잡는 셈이네요.

박: 그렇죠.

전: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을텐데요.

박: 돈이 생각보다는 많이 안 들어갑니다. 한 3십만 달러가 듭니다. 5백명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라서 작지는 않습니다.

전: 거기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라든가 직원은 어떻게 구합니까?

박: 보모들은 전부 그 동네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분들에게는 봉급으로 돈 대신에 쌀을 준다고 합니다. 그 쌀을 주기 위해 우리가 또 식량을 갖고 들어갈 겁니다.

전: 북한에 가셨을 때 예전에는 평양에서 미사를 드리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박: 제가 89년부터 평양을 드나들었는데요, 아마 서른 다섯 번 이상 왔다갔다 했을 겁니다. 처음 국수공장 사업으로 북한에 갔을 때 저는 미사를 꼭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서 저의 북한 사업을 돕고 있는 신자들이 북한을 도우면서 현지에서 미사를 못 드리면 안된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유를 설명했더니 그쪽에서도 수긍을 해 제가 들어가면 우선적으로 미사드리도록 주선해주더라구요. 거기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행동을 했습니다.

전: 미사 드리는 성당이?

박: 장충성당입니다.

전: 탁아소 건립이 당면한 지원과제인데요, 신부님 건강도 있고 나이도 드시는데 어떻게 이 사업을 지속시킬 계획입니까?

박: 제가 아들같은 신부들을 많이 뒀어요. 제가 신학교에 보내 신부로 만든 사람들입니다. 다섯 명이 현재 있는데, 이들 자신이 신학교에 보내 신부가 된 사람도 있고 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10명 정도가 제 사업을 후원하는 팀입니다. 이들이 협조하면 또 이들의 신자들도 같은 팀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걱정을 안합니다.

전: 어느 단체나 기구가 북한을 지속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만성적이고 1,2년사이에 호전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 주민들과 그들이 필요로하는 도움을 줄 수 있겟습니까?

박: 이번에 제가 획기적인 사업을 보고 왔습니다. 김기수 신부님이라고 미국 뉴욕 만하탄에 계신 분입니다. 저하고 90년도에 북한에 들어 갔었고 그후 북한을 돕기위해 중국에 큰 농장을 만들어 농사도 짓고 소도 기르고 하셨는데, 재작년에는 북한 나진에 땅을 얻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들어가 그 농장을 가 봤는데 보통 1킬로- 1.5킬로그램 하는 무가 거기서는 11킬로나 됐습니다.

이.엠 농법을 썼다고 합니다. 전: 이.엠이 무엇인지요?

박: 박테리아를 사용해서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고 숙성한 퇴비를 사용해 농사 짓는 기법인데요 보통 무는 커야 1킬로에서 1.5킬로인데 그 열배나 되는11킬로짜리가 나온 겁니다. 그쪽 사람들이 놀라는 겁니다. 앞으로 그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할 계획입니다. 무 뿐만아니라 콩, 벼 등 앞으로 농사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것이죠.

전: 북한에 있는 분들도 기대가 크겠네요.

박: 크죠. 그래서 그쪽 관리들이 찾는 순례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그쪽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획기적인 개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면서 농사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량이 풍족해 지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고 그럼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그쪽을 열심히 도와줘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전: 탁아소 사업과 관련해 언제 또 북한에 들어가십니까?

박: 내년 2차 공사 시작하기 전 4월이나 5월쯤 날씨가 풀리면 들어갈 겁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의 나진선봉에 어린이 탁아소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모금활동을 펴고 있는 박창득 가톨릭 원로 신부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