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한이 지난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 2월, 세 차례 지하 핵실험을 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지하 핵실험 땅굴 기초공사에 길주군에서 멀지 않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이 동원됐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용소 수감자들에 대한 인권유린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화제의 중심인물은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정치범수용소에서 경비병과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1994년 탈북한 안명철씨입니다. 현재 북한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이 세운 단체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씨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노역에 강제 동원된 수감자들의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회령 22호 외에도 종성 13호에서도 근무해 함경북도 정치범수용소 사정에 밝은 안명철 사무총장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2월 마지막 주 북한핵기지 건설에 동원되는 정치범에 관한 증언 및 해결방안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수감자 동원과 비밀보장을 위한 처형과 관련해 증언하셨는데 저희 청취자들을 위해 그 증언내용을 소상히 설명해 주시죠.
안명철: 풍계리 핵실험장 관련 문제는 제가 22호 회령 수용소 근무 당시에 얘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수용소 운전병일 때 92년경 중봉지구 탄광에서 수감자100명정도를 싣고 나왔습니다. 굴을 잘 뚫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운전병이라서 보위원들과 가까왔습니다.
또 제가 차를 운전하면서 사람들을 싣고 다니는 걸 보곤 했습니다. 보위원에게 물어보니 만탑산 부근 핵기지 건설에 나간다고 하더군요. 그럼 저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보위원들은 보안유지 때문에 공사 끝나면 아마 처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93년과 94년에도 또 사람을 싣고 나왔습니다. 나갈 때 수용소 내에서는 사회주의 대건설에 동원된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곳이 풍계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근데 탈북해 남한에 와서 보니 그게 만탑산 부근의 풍계리 핵실험장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16호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차출됐습니다. 그러니까 22호 수용소에서만 동원된 게 아닙니다. 굴을 잘 뚫는 사람을 위주로 기초공사에 동원을 했죠. 핵기지 건설은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최대의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보안유지를 위해서는 거기에 동원됐던 사람들은 죽여야 하겠죠. 근데 공사에 동원된 사람은 정치범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 조선일보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핵기지 건설에 정치범이 동원되고 있으며 비밀보안유지를 위해 처형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언론도 설마 그럴 수 있겠느냐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번 3차 핵실험 후 저희가 조사해 본 결과 16호 수용소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이어지는 비밀통로를 찾았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찾은 겁니다.
전: 어떻게 찾았습니까?
안: 구글 위성사진에서 찾았습니다.
전: 비밀통로가 지하로 된 게 아닙니까?
안: 지하로 돼 있지 않습니다. 산이 높다보니 산자락을 에둘러서 도로가 나 있고 그 도로가 수용소 철책 안으로 통해 핵실험장 초소가 있는 곳으로 나 있습니다. 그래서 수용소와 연관이 되어 핵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핵실험이 끝나면 터널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터널 보수공사는 누가 하겠습니까? 수감자 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전: 회견장에서 화면을 통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시던데요.
안명철: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김정은 정권 이후에 변화된 수용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전: 그 내용은 어떤 겁니까?
안: 김정일 때와 김정은 때를 비교해 변화된 것을 설명한 것인데요, 첫째는 제가 있던 22호 회령 수용소가 작년 6월에 해체됐다는 것입니다. 해체한 이유는 수용소가 (중국) 국경에 너무 가깝고 저와 같은 사람이 탈출해 수용소 비밀이 탄로났고 또 석탄이 고갈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 수감자들을 다른 수용소로 분산 수용하고 수용소 탄광은 사회로 넘겼습니다. 그게 첫째 변화이고 둘째는 25호 수용소에 수용자가 늘어나면서 그 수용소를 확장했습니다.
전: 청진수용소죠?
안: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14호 수용소 옆에 새 수용소를 건설 중인 것도 전과 달라진 것입니다.
전: 14호는 개천이죠?
안: 네. 또 다른 변화는 요덕수용소가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눠져 있었지만 지금은 혁명화 구역이 없어지고 모두 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북한 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완전히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전; 한국 통일연구원 산하 북한연구센터에서는 3월 4일 현재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수감자 숫자를 8만에서 12만명으로 추정했습니다. 2009년에 남한 정부는 15만 4천명으로 추정했었습니다. 결국 정치범 수감자 수는 절반 내지 3분의 1정도가 줄어들었다는 얘긴데요.
안: 제가 볼 때는 추정치가 잘못된 겁니다. 과거 18호 -개천의 동창 수용소가 해체되면서 갇혀 있던 사람들이 많이 밖으로 나오긴 했습니다.
전: 풀어줬다는 겁니까?
안: 네. 풀어 줬죠. 그래서 숫자 변동은 약간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많이 차이는 안 납니다. 정부가 수감 인원 통계를 잘 못 낸 것 같습니다.
전: 미국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에서는 최근 발간한 자료에서 청진 수용소 25호 규모가 70퍼센트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안: 거기서도 발표했지만 우리 북한민주화운동본부도 몇 년전부터 위성분석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25호 수용소가 계속 늘어나는 건 저희도 확인했었습니다. 근데 저희가 받아보는 한국의 구글서비스 자료가 좀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료의 정확성에 시차는 있었습니다. 근데 최근 확인된 위성자료에서 25호 수용소를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탈북자들로부터 이 수용소가 확장되고 있다는 정보는 받았습니다.
전: 이번 회견에서는 유엔 내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립을 촉구하는 언급도 하셨습니다.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와 마루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올 들어 조사위원회의 필요성을 공개 발언해 왔습니다. 유엔 내에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립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안: 저희 단체도 ICNK 북한반인도범죄철폐연대에 소속돼 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이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수용소 수감자들을 구하는 일은 이제 유엔이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는 남북관계를 고려해서 이런 문제 해결에 잘 나서지도 않지만 설사 나선다고 해도 한국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유엔이 나서지 않으면 북한인권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엔 차원에서 북한수용소 수감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 저희 운동본부는 유엔 인권위 조사위원회의 설립을 촉구하는 동시에 유엔에 강제구금 확인 청원서 제출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제 가족도 수용소에 수감돼 있습니다만 저뿐 아니라 한국 내 탈북자들이 거의 20년 동안 수용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유엔에 호소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저희도 강철환 대표가 이미 선발대로 유엔 제네바 회의에 가서 수용소에 대해 증언했고 신동혁씨도 했습니다. 잇따라 ICNK 대표단도 제네바 가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치문제에 대한 얘기도 하고 행사를 합니다. 다행히 나비 필레이 대표 등의 발언으로 우리들은 고무돼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안 사무총장께서는 작년 12월 일본 토쿄에서 열린 북한인권주간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 네. 거기 가서 22호 수용소 해체 여부에 대한 증언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 여부와 관련해 언론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22호 수용소의 당사자이고 또 13호 수용소를 해체할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수용소 위성 사진을 판독해 보니 22호 수용소 내의 구류장이든가 고문시설이 모두 폭파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22호 수용소는 해체된 게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수용소 인근에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나중에 들어보니 일주일 동안 밤을 이용해 10시 이후에 사람들을 열차 차량 열대 빵통에 계속 싣고 나갔다고 합니다. 이들이 어디로 간 지는 모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증언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의 정치범수용소에 경비원과 운전병으로 근무했던 탈북자 안명철씨로부터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의 지하핵실험 땅굴 공사 노역에 관한 증언과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펼치고 있는 활동에 관해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