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지난 여름 한국의 아산정책연구원이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단기 합숙교육기관인 아산서원을 설립했습니다. 아산서원의 첫 선발 학생 30명은4개월동안 한국에서 철학 정치 경제 등에 관해 토론식 집중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미국의 주요 연구단체에서 수습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수습연구원 진용선씨를 만나봤습니다.
진씨는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전수일: 학부에서는 무얼 전공하셨습니까?
진용선: 지리교육과 역사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전: 북한학에 관심을 가진 동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진: 네, 제가 대학 3학년 때 까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근데 할아버지께서는 개성에서 오신 이산가족이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많이 보고 싶어하셨고 개성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께는 생전에도 그렇게 해드릴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게(통일이) 큰 일이구나’ 하면서 북한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앞으론 다시는 이런(분단의) 슬픔이 없도록 내 능력은 작지만 기여해 보자는 생각에서 전공을 바꾸게 됐습니다.
전: 북한학에서는 주로 무얼 배웁니까?
진: 과목이 다양한데요. 북한 정치나 행정, 정책, 경제, 군사, 일반 시민들의 문화나 사회에 대한 것을 배우고 탈북자, 인권 같은 과목들도 배웁니다.
전: 그런 자료들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진: 북한학 공부의 기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책과 문헌입니다. 지금까지 북한학 연구가 한 3대 째 내려왔다고 하는데 책과 문헌은 그 분들께서 연구 하셨던 겁니다. 그런 연구들을 보면 기본은 다 노동신문이라든가 북한의 기초 자료들이 있잖아요. 조선 노동당 대외집과 같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간하는 자료나 그밖의 통계자료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많이 하고 있죠. 또 하나는 현재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연구인데요, 북한 관련 단체 같은 경우는 대북관련 소식통의 자료도 있고 지금 계속 나오는 현안들도 좋은 자료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전: 한국에는 대북매체가 많이 있는데, 데일리NK라고 잘 알려진 매체에서 수습기자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진: 자유아시아방송이라든가 미국의 소리방송 등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데일리NK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기사들을 다시 구성해서 쓰기도 했고요, 북한과 직접 관련된 행사들을 취재하거나 학술행사에 가서 취재도 했습니다. 또 탈북대학생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 분들이 하는 활동을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임이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해서 1박2일 동행취재했습니다.
전: 북한이 지난 12월 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두 달 뒤에 3차 핵실험을 감행했는데요, 그래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제 강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북한에서는 핵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한반도 정전 협정도 백지화라고 선언을 했는데 북한학 학도로서 한반도 정세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진: 저로서는 일단 북한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의도를 먼저 많이 생각을 해봤어요. 분석기사들을 보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아직 김정은이 등극한지 1년정도 밖에 안 지났고 국내가 불안하니까 전쟁을 하면 사람들이 단결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런걸 좀 이용하고 또 군대나 당 중심으로 사람들을 단속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도 보이고요. 특히, 올해가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새 정권으로 바뀌는 때 잖아요.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신뢰를 강조하긴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북에서는 일단 기선제압을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겉으로 요란하면 진짜 도발은 하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많은데요, 저도 북한이 실제 도발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전: 남북 간의 신뢰를 구축하겠다는 신정부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진: 제가 있는 아산서원에서 미국에 오기 전에 4개월 동안 인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침 한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었을 때였는데, 각 정당 후보의 북한 관련된 대북정책을 점검해보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후보자였던 박근혜씨를 맡았는데 첫 번째로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이 ‘이전 이명박 정부와 다른 것이 뭐냐?’ 라는 거였거든요. 박근혜 정부의 다른 점은- 이명박 정부와는 비슷하지만- ‘대화는 언제든지 임하겠다.’ 라는 것이었다고 봤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가 없어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에 대한 사과가 먼저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가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이런 조건적인 신뢰회복 프로세스의 가장 큰 약점은 북한이 거기에 어떻게 대응 하느냐에 따라 너무 많이 바뀐다는 거에요. 새 정부가 들어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지만 결국은 우리쪽의 주도적인 것이 아니라 북한의 반응에 따른 것 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새 정책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전: 한국에서 4개월동안 공부하시고 미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진: 1월 말이었습니다.
전: 미국에 온 목적은?
진: 아산서원 프로그램 취지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고 세계적인 리더로 자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아산서원 인문학과정을 통해 소양을 갖추고 난 뒤에 세계적인 무대, 워싱턴 디씨에서 많은 씽크탱크 연구소를 찾아 보고 그런 기관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경험도 해보고 꿈을 펼쳐보라는 취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전: 아산서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분은 모두 몇 분인가요?
진: 총 30명입니다.
전: 모두 대학교를 졸업한 분들입니까?
진: 굉장히 다양한데요. 자격 요건은 일단 대학교 3학년 이상이어야 되고 나이가 31살 이하이고요. 대학교 3학년부터 대학원생까지 있습니다.
전: 미국에 와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도 면담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분과는 어떤 문답이 오고 갔는지요?
진: 저희가 질문을 많이 했던 것은 현재 한반도 정세, 특히 북한이 핵 실험을 했던 상황이었는데요. 핵 실험 후에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 것 이며 북한이 왜 그랬고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 인가? 또 어떻게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실 북한에 대한 논의보다는 저희가 참여하고 있는 리더십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는 그분의 언급이었습니다. 럼즈펠드씨도 미국 지도층의 한 분이었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갖춰야 될 소양은 뭐고 어떻게 커야 될 것인가를 여쭤봤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계속 북한 핵, 한국과 미국 관계, 국제 정세 이런 거에 대해서는 “한국의 일은 당신들 손에 쥐어진 것이지 나한테 물어봐서 될 것이 아니다.” 라고요. 그게 정말 인상 깊었어요. 왜냐면 남북관계도 그렇고 많은 국제 관계에서 미국이 어떻게 하고 중국이 어떻게 하고 북한은 어떻게 한다는 것에 한국은 그에 대처하는 수동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잖아요. 저도 미국이 이런 대북정책을 하니까 그에 대해 먼저 생각하곤 했는데, 한국사람으로서 보다 능동적으로 내 어깨에 있는 짐이다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연수 중이신데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진: 북한인권위원회는 주로 정보를 연구하는 연구중심의 단체예요.
전: 북한 관련 모든 정보입니까?
진: 모든 정보는 아니고 인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인권유린 중에 중요한 문제이니까 거기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글로브라는 위성사진을 찍는 단체와 협약을 맺고 그 단체가 보내주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 사진을 바탕으로 분석을 하고 또 위성사진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부분은 관련 탈북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전: 북한학과에 재학 중이실 때도 이런 북한의 실태에 대해서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진: 네. 물론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데일리 NK에 있을 때에도 거기에서 일하는 탈북자 기자분들께도 들었고 책으로 나온 관련 수기도 많이 보면서 배웠습니다.
전: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립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진: 제가 거기에 대해서 북한 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트 사무총장님께 여쭤 봤어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립 취지에는 북한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조사가 가능하다는 항목이 있는데 북한에 들어 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심도 깊은 조사가 가능하냐고요. 그랬더니 스칼라튜 사무총장님은 그건 맞는 말이지만 북한에 직접 가서 조사할 수는 없어도 지금 많이 흩어져 있는 엄청난 대북정보나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많은 단체들과 협력을 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정리해 쌓아 나가는 것을 유엔 인권조사위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인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미국 의회의 북한관련 청문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북한 핵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청문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한 의원이 증인으로 나오신 북한 전문가 이성윤 박사님께 "내가 알기로는 북한 인권 상태가 굉장히 심각하고 정치범 수용소도 많은 걸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발언 제한 시간이2분이 남았는데 내 대신 북한실태에 대해 증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박사님은 신동혁씨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 탈북자라고만 지칭하면서 신 씨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청문회를 주도하셨던 의원이 신동혁씨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나는 그 탈북자가 신동혁씨란 걸 안다.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그 사람의 등에 나있는 상처나 고문의 흔적들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청문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얘기가 오고 간다는 것 자체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이런 분들에게 북한인권위원회나 RFA, VOA 같은 단체들이 하는 활동이 영향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많은 미국 의원들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자기들의 대북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도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설립은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러니까 유엔 산하에 북한인권조사위가 설립될 경우 그 위원회를 중심으로 모든 대북 인권단체라든가 그 밖의 민간단체들의 영향도 결집될 수 있어서 큰 효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말씀이군요.
진: 그렇습니다.
전: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연수를 하고 계신데, 얼마 동안이나 일을 하시게 됩니까?
진: 3개월 동안입니다. 한 달쯤 남았습니다.
전: 한국에 돌아가시면 무얼 하시게 됩니까?
진: 저는 일단 모든 수업 과정을 수료 했기 때문에 논문만 쓰면 졸업할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에 도움을 주시는 연구원께서 와 계신데 그 분 도움도 받으면서 논문도 쓰고 있습니다.
전: 여기서 3~4개월 동안 일한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겠네요?
진: 네. 제가 거기서 일하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건 지금 얘기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을 한국에 있었으면 몰랐을 것 같아요. 여기서는 제가 지식적인 것만 배울뿐만 아니라 의회 청문회처럼 마음으로 느끼는 열정도 있잖아요. 사실 북한학을 공부하면서 자료 얻기도 힘들고 모호한 면이 많아서 북한학을 공부하는 것이 막연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이 길이 맞나? 고민도 많이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한국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친구들이 제가 일하는 북한인권위원회에서 같이 일하는데 한국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어도 관심 있어하고요. 예를 들어서 보위부라는 단어를 종이쪽지에 적어서 책상위에 붙여놓고 익히는 친구도 있고요. 나는 한국인이고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는데도 저런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 때문에 저의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의 기회도 되고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북한학 전공학생들의 졸업 이후 진출분야는 주로 어떻게 됩니까?
진: 많진 않아요. 그래서 저도 지금 고민 중입니다. 국가기관으로는 통일부도 있을 수 있고, 기무사라고 군대 정보와 관련된 곳도 있습니다. 국정원과 같은 기관도 있고 연구소들도 있습니다. 통일 연구원, 세종연구소, 또 기업으로는 현대아산 같은 곳이 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이라고 남북협력기금을 다루는 곳도 있지만 채용이 많지는 않아요.
전: 본인의 희망 분야는 어떤 곳입니까?
진: 북한과 관련한 곳을 목록에 적어봤습니다. 제가 북한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냐면 직업이 뭐든지 상관없고 내가 하는 일이 통일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분야의 영역을 열어 놓고 NGO비정부기구 같은 민간단체나 북한을 다루는 신문사 같은 곳에서 일해 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미국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십니까?
진: 네. 있습니다. 최근 미국 의회 청문회에 갔을 때 이성윤 박사님을 뵈었는데 이분은 영어도 능숙하시고 북한에 대한 지식, 통계나 연도 등을 정말 정확히 꿰고 계셨습니다. 많은 의원들로부터 쏟아지는 질문들을 재치있게 또 신중하게 모두 받아내셨어요. 그런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꼭 한 번 뵙고 싶어요.
전: 그동안 탈북자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 가장 인상적인 일화가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진: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실 옆에 회의실이 있는데요 북한 관련 단체와 인사들이 많이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에 정착하신 탈북자 조진혜씨와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옆의 회의실에서 기도를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거기에 참여했습니다. 조진혜씨가 어떻게 탈북했는지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그 전에 스칼라튜 사무총장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2만 7천 명 가까운 탈북자들이 있는데 왜 미국에는 백 여명 밖에 안되는 지. ‘미국은 입국 절차가 까다롭고 정착 지원이 별로 없다’는 답이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미국에 오면 살기가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미국에 온 백 여명은 왜 왔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조진혜씨에게 질문해 봤습니다. 그분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자신이 탈북 했을 당시, 남한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였는데 자기가 정말 싫어서 탈출한 북한을 지원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어차피 힘들게 각오하고 북한을 나왔는데 왜 도전을 못하겠냐며 미국에서도 잘 할 수 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여기 처음 와서는 적응하는 것에 힘들었는데 영어를 하나도 못 하시고 모든 것이 새로우셨을 조진혜씨는 적응하시기 더 힘드셨을 텐데도 여기서 너무나 잘 적응하시고 행복하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단기 합숙교육기관인 한국의 아산서원의 첫 선발학생 중의 한 사람으로 미국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수습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진용선씨를 만나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