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60여년, 김씨 일가의 수령주의 북한 체제의 공포통치아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중심적이고 타산적인 성격장애자로 굳은 북한 주민들의 그 뿌리깊은 심리적 상처는 국경을 넘어 남쪽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들어가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북한체제 트라우마 불안'에 따른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는 2만5천의 탈북자는 건전한 한국사회 적응은 물론 한반도 통일후 진정한 남북사회 통합의 자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경성의과대학 출신 의사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2000년 한국에 들어간 유혜란씨가 탈북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올 2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의 주제입니다.
수년 간 탈북자를 상대로 상담을 해오면서 이 같은 결론을 얻은 유혜란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상담학을 공부한 지 5년만에 박사학위를 따 낸 것입니다.
유 박사는 탈북자들의 북한체제상처의 치유가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편으로는 탈북자들에 대한 무료 상담을 계속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치유 확대를 위해 ‘북한체제 트라우마 치유센터’ 연구기관 설립을 계획하고 국가적 지원을 이끌어 내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전수일: 논문 제목으로만 봐도 북한 주민들의 불안한 심리는 북한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논문의 핵심을 쉽게 설명해주시죠.
유혜란 박사: 지금까지 탈북민에 관한 연구가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만 북한체제트라우마와 주민들의 불안 연구에 관한 게 없어서 ‘탈북민들을 통해본 북한체제- 트라우마 불안’을 주제로 현상학적 연구를 했습니다.
전: 트라우마란 무엇인지요?
유: 트라우마는 자연재앙이나 사회재앙으로 극심한 충격이 무의식에 남아서 심리적인 상흔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전: 쉽게 얘기해서 큰 충격을 받아 남는 상처입니까?
유: 네. 그런 상처가 무의식에 남게 되니까 반복적으로 자꾸 경험되는 증상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한체제의 트라우마라는 건 생존을 위협하는 기근과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체제에 대한 노이로제, 즉 김씨 일가의 조건반사적 통치행태로 공포와 불안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조건반사적인 통치행태란 건 북한에 있는 공개처형, 집단수용-정치범수용소 같은 곳에- 그리고 연좌제,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로 일관된 감옥화된 체제적 재앙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증상이죠.
전: 그렇군요. 연속적으로 체제 내에서 받는 불안과 충격은 굉장히 큰 심리적 압박과 상처로 남을 수 있겠네요.
유: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북한이 3대세습 장기통치에 따른 북한 트라우마로 주민들의 의식을 개조해 체제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기계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무서운 부모 밑에서는 자녀가 솔직해 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무서운 부모는 김씨 일가의 독재사회입니다. 그 무서운 부모에게는 병리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려 하다 보니 거짓된 역사로 점철돼 있는 것입니다. 그 거짓 역사를 펼치려니 북한 주민이 외부세계를 알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폐쇄시키는 것이죠. 불안은 불안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는 법이죠. 그러니 불안은 점점 확대되고 대상을 더욱 통제해야 하게 되는 그런 원리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쌔디즘 즉 가학증과 인민은 마조히즘 즉 피학대증 관계에 있게 됩니다.
북한 체제가 역기능적인 3대세습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은 이런 관계로 비롯된 거짓자기 발달이 서로 상호작용을 했다는 것입니다.
독재자는 독재자대로 거짓자기가 발달돼 주민들 믿지 못해 통제를 가하고 반대로 주민들은 독재의 악순환 메커니즘인 불안기제에서 두려움이 야기되니까 또 그 반응으로 거짓자기가 발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불안할 수록 반대충동으로 충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거짓자기 속에서 북한 주민은 그런 자신들이 북한의 독재체제 유지에 동조하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관계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능한가? 저는 김일성을 악한 천재로 보는데 그는 종교 말살정책으로 이걸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종교와 철학이 부재한 곳입니다. 철학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고 그 대답은 종교입니다. 그러면 주민들이 이탈성을 갖게 되니까 김일성은 그걸 말살한 것이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 철학만을 가르칩니다.
전: 유 박사님께서는 탈북자 상담도 오래 하셨습니다. ‘탈북자 상담을 할 때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집단치료와 개인상담이 동시에 병행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으셨다던데 어째서입니까?
유: 지금까지 탈북민 상담을 통해 내담자들의 참자기가 부재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참자기는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삶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안내역할을 하지만 거짓자기는 적응이 아닌 자기 방어로 가게 합니다. 탈북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자기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낮은 자존감에 갇혀 있는 분들을 치료하는 데는 집단상담이 굉장히 효과 있습니다.
전: 집단상담이란 건 상담 대상자가 한 명이 아닌 두세명 이상의 복수라는 것인지요?
유: 네. 보통 일곱 여덟 명 정도 혹은 열명까지 그룹을 만들어 집단상담을 합니다.
전: 집단상담은 어떻게 진행합니까?
유: 집단상담은 어떤 삶에 대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 외에 다른 참여자들은 그 얘기를 비판하지 않도록 합니다. 우선 경청하고 나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하죠. 그러니까 자기들의 경험을 얘기하도록 하되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는 진행방법입니다.
전: 다른 분들의 경험을 많이 듣게 되겠네요?
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을 병행하자고 하는 건 처음부턴 집단상담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체제상처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서 자기방어를 먼저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와 관련한 전문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인데요 교육과 자기분석에 관한 개인상담을 통해 먼저 이해를 하도록 하고 각자 어느정도 성찰을 하고 나서야 집단상담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 유 박사님의 말씀 중에 ‘탈북자끼리보다는 남한사람과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유: 한국 분들과 탈북민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서로 좋은 모습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배울 게 많습니다. 북한사람들은 각박한 사회의 출신이라서 성격이 강한 반면에 한국분들은 많이 유연합니다. 그래서 한국분들과 어울리면서 생각과 행동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고 또 통합된 생각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끼리만 어울리면 북한사회만 연상하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생각, 종교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의 삶의 방향과 의미를 공유하는 자리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전: 유 박사님 스스로도 상처를 입은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 ‘나도 치유받고 있는 중’ 이라고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본인의 상처는 모두 치유가 됐는지 아니면 치유 중인지, 그리고 그런 과정이 상담을 받으러오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어떻게 도움이되고 활용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유: 아직도 치유 중이라고 봅니다. 얼마나 치유가 됐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상처가 이나마 치유된 것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신학과 상담학 공부 덕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의학을 공부할 때 전혀 볼 수 없던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치유의 첫 단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주의 철학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김일성 철학이 아닌 존재적인 사고를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상처를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북에서는 비밀과 체제 수호를 위해서만 필요했던 나란 존재가 창조주인 절대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낯선 문화권에서 살게 된 내게는 큰 도전이었죠.
전: 창조적 절대자라는 건 ‘신’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이겠죠?
유: 그렇습니다. 저는 삶의 뿌리를 하느님으로 보고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북한에선 북한체제트라우마로 생존 콤플렉스에 갇혀 부적절한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부족하나마 이모습 이대로 나를 사랑하는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의 병리적 방어기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내적 힘을 가지게 된 것이 제 치유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전: 그러면 신앙에 눈을 뜨고 위로와 격려받고 용기있는 삶의 시각을 얻었다면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 그렇습니다. 신앙이 결국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됩니다. 또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던 도구는 상담학 공부였습니다. 이론과 임상훈련을 통해 자신 안에 점철된 불안, 분노, 이분법적인 사고, 또 감정에 억압되고 사람을 밎지 못하게 된 나 자신과 그런 마음의 상처를 파헤칠 수록 북한사회 체제에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 굴절된 시각을 갖게 됐음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신학적 심리학적 성찰은 저의 체제상처인 거짓자기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었고 또 절대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항상성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 경험은 탈북민들을 도울 수 있는 내적 외적 자원이 됐다고 봅니다.
전: 탈북자들의 체제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 시 북한에 있는 주민을 치유할 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유: 네. 그렇죠. 북에서 35년 한국에서 13년을 살고 있습니다. 탈북자 목회와 상담하면서 느끼는 게 북한체제트라우마가 결국 2만5천 탈북자들이 한국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탈북자 정착에 가장 어려운 건 대인관계입니다. 그게 잘 안 돼서 회사에 오래 근무하지도 못합니다.
탈북자들은 하느님이 통일에 대비해 미리 부른 자원이라는 걸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타인을 수단화 하는 체제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탈북민들의 체제상처가 먼저 치유되어야 통일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통일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 온 탈북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도 체제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아직 한국정부 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잘 안 돼있습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정부도 탈북자 심리상담사업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북한체제트라우마에 근거한 체제상처 전문 치유센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센터를 모체로 북한체제트라우마에 대한 치료 임상경험을 쌓아 그걸 토대로 전문가를 양성해서 센터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체제상처의 치료는 직업훈련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직업훈련을 아무리 해도 회사생활에서는 대인관계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는 치유가 있어야 하고 정부 역시 이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박사님은 평촌 새중앙교회에서 북한선교회를 담당하고 계신데요, 북한선교회는 무얼 하는 것입니까.
유: 탈북자들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전: 그러니까 한국에 온 탈북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것이군요?
유: 그렇습니다. 한국 스태프들과 같이 탈북자를 따로 모아 놓고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교제합니다.
전: 기독교 신앙을 접하는 탈북자들은 과거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일텐데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유: 여러 부류로 나뉩니다. 어떤 분은 아주 성실하게 믿지만 그 수는 적습니다. 저는 주로 청소년 사역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신앙을 알고는 싶어 하는데 아직 잘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3년 째 탈북민 사역을 하고 있는데요 빠르게 영접하는 분도 있긴 하지만 북한체제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하는님과의 관계도 왜곡됩니다.
전: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려는 심리인가요?
유: 의심으로 점철된 나라이니까요. 북한의 교육도 뿌리깊게 남아 있고…또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보니.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닙니다.
전: 평양출신이시고 경성의과대학을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6년간 의사로 근무하셨다던데요.
유: 네. 그렇습니다.
전: 어떤 과를 전공하셨나요?
유: 북에서는 전문의가 따로 없습니다. 의과대학 안에는 동의학 의학 약학 위생학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가 본 분야는 내과였습니다.
전: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하실 때 홀로가 아니라 남편과 딸 둘과 같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유: 네.
전: 딸들은 무얼 하는지요?
유: 큰딸은 연세대 정외과 3학년이고 막내는 동국대 경찰학과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남편은?
유: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 가족이 다 함께 내려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박사학위도 따시고 했으니 가족이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겠죠.
유: 네.
RFA 초대석, 오늘은 경성의과대학 출신 의사로 14년전 남편과 두 딸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한국에 들어가 올 2월 탈북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혜란씨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