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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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오늘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한국행과 한국사회 정착을 돕고 있는 단체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김용화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어 봅니다. 함경남도 함흥 철도국에서 일하다 1988년 탈북한 김 대표는 자신이 탈북자라는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어 중국, 윁남, 한국, 일본 등을 무려 14년 간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2002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탈북 후 자신이 겪은 온갖 고생으로 그 누구보다 탈북난민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안다는 김 대표는 그래서 탈북난민 구출과 이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수 천명의 탈북자를 자유세계에서 살 도록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탈북난민인권연합이 단순히 탈북자를 구출하는 조직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돕는 단체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김용화 대표는 강조합니다.

전수일: 북한주민의 가족이 되는 단체라는 건 어떤 뜻입니까?

김용화: 북한 주민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가족과 뿔뿔히 헤어져 아픔을 감수하면서 3국에서 떠돌다가 죽기도 하고 고생하면서 한국에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널 때부터 그들의 가족이 되어 그 사람들을 지켜주자는 마음입니다. 가족이라면 누구도 버릴 자식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취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 몇 가지 사업 중에서도 탈북난민을 구출하고 돕는 게 가장 큰 일이겠군요?

김: 그렇습니다. 약7천명 정도가 우리와 연계돼 도움을 받아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행을 겪은 이도 간혹 있지만 저희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지금도 중국 4개 지역에서 피난처를 운영합니다. 북한사람은 국경을 넘으면 옷 모양새 등 북한출신이라는 표가 납니다. 이들의 위험노출을 빨리 막기 위해 피난처에서 옷도 갈아 입히고, 또 중국인들은 젊은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로 목돈이 생기니까 사람으로 보다는 돈으로 보는데, 그런 여성들의 연락을 받으면 팔리지 않고 안전하게 자유의 품으로 올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또 이들이 국내에 들어 오면 정부의 지원이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들의 구석구석 마음 아픈 일이나 여러가지 생활상의 곤란을 해결해 줌으로써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단체입니다. 저희는 단체라기 보다는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 한국에 들어온 탈북난민들에 대한 정착지원은 공식적으로는 정부가 하는 것인데요 탈북난민인권연합은 어떤 구체적인 면에서 탈북자들의 한국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김: 저희는 기본적으로 상담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게 발로 뛰는 상담이죠. 실적 위주의 상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상담이 아닙니다. 상담을 해보면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원을 방금 나온 비보호 탈북자들입니다. 북한에서의 범죄경력으로 집도 배정 받지 못합니다. 또 중국여권을 갖고 들어온 사람도 비보호 대상자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원을 떠나면 통일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서 손을 뗍니다. 그래서 저희가 각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면서 호소해 이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이 주택문제와 혼인문제입니다. 혼인문제는 탈북 여성이 중국에 팔려갔을 때는 중국인 남편이 호령하지만 한국에 나와서는 탈북여성이 한국인이고 중국인 남편은 초청돼 온 외국인 신분이라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는 남편에게 잘 해줬는데 여기서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남편들이 폭력을 휘둘러 이혼이 많습니다. 그래서 탈북여성과 중국인의 국제결혼 성공률은 10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런 이혼 여성들의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우리 단체가 법정에도 함께 가고 이혼이 매듭지어질 때까지 보호하는 일도 합니다.

전: 그러니까 탈북난민이라도 비보호대상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적절한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도와 주신다는 말씀이군요.

김: 그렇습니다. 저희가 상담만 받는 게 아니라 '탈북민사랑나눔센터'라는 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창고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중고 생활용품들, 테레비전 냉장고 옷 가스레인지 등을을 보관돼 있는데요, 하나원을 나온 탈북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러니까 탈북자들이 돈 안들이고 생활할 수 있게 밑천을 대 주는 셈이죠. 그래서 일단 저희 단체에 와서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물품까지 챙겨갈 수 있습니다. 하루에 많은 경우 탈북자 수십명이 저희 사무실을 찾아 옵니다.

전: 그러니까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정착 교육을 마치고 나와 아파트로 들어갈 때 이부자리 옷가지 텔레비전 등 남이 쓰던 것을 받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긴데요, 아주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거군요.

김: 네. 정부에서는 정착금으로 돈을 주지만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마음으로 보살피고 물건을 주고 도와줍니다. 물건도 마음입니다. 저희 창고에는 심지어 밥그릇까지 있습니다. 일이 좀 힘들 때도 있지만 힘든 뒤에는 보람도 있습니다.

전: 탈북난민인권연합에서는 정착에 가장 기반이 되는 일자리 제공을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취업문제는 어떻게 돕고 있나요?

김: 저희 단체에는 비보호 탈북자들이 많이 등록돼 있는데요, 비보호자는 정부의 어떤 지원도 없습니다. 이들이 하나원을 나와서는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러면 저희는 농업진흥청, 중소기업 등에 연계해 일단 먹고 자면서 일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해 줍니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국민임대나 영구임대 아파트도 빠른 시일 내에 스스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보금자리를 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이렇게 일을 하는 분들은 비록 일이 힘들기는 해도 정착지원금을 받는 이들보다 오히려 정착 성공률이 높습니다. 한국사회에 나오자마자 일을 시작하는 이런 분들 중에는 1-2년만 지나면 정착금 1천8백만원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취업 직종은 본인이 원하고 적성이 맞는 쪽으로 연결해 줍니다. 해당 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직접 사주에게 면담시키고 일단 1개월 만이라도 고용해 보라고 제의합니다. 그 후에 마음에 들면 계속 일하도록 해 준다는 조건으로요. 물론 한국의 중소기업 중에는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경영난으로 인건비도 제대로 못주는 곳도 있고 업주의 언행이 거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 계약을 저희가 가서 하고 뒷 처리도 저희가 하기 때문에 본인과 사주가 직접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를 통한 취업 선호도가 높습니다. 탈북자들이 저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서도 우리에게 많이 연락이 옵니다.

전: 북한사회에 관한 정보수집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정보를 수집해 탈북난민인권연합 자체의 웹사이트에 소개도 하고 전문 매체에 제공도 하신다던데요, 북한사회 내에 통신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우리가 중국 4개 지역에 피난처를 운영하다 보니 매달 북한 전국 각처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60-80명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금방 넘어온 사람들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히 알아 볼 일이 있을 때는 북한쪽 라인을 동원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도 세 사람이 강을 건너왔습니다. 오늘의 소식을 내일 알 수 있는 정보망이 되어있습니다.

전: 근데 그런 북한사회소식을 탈북난민인권연합에서 굳이 수집하는 취지가 있습니까? 탈북난민 돕기와 정착지원 사업만해도 바쁘실 텐데요.

김: 저희의 정보수집은 북한을 한국에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정보를 대가로 만원짜리 한 장 받아본 적 없습니다. 어버이 날이나 재향군인의 날 등의 행사를 통해 청중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전하는 것이죠. 대한민국이 북한의 현실을 1차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월요일 안보강연을 다니면서 어제 확보한 소식을 그대로 공개합니다. 북한의 상황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리는 것이죠. 특정 단체에 제보를 하면 정보를 대가로 장사한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을 알리고 북한에서 힘들어 하는 주민에게 희망을 주자는 운동의 취지에서 정보 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전: 김 대표님의 가족이 아직 북에 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족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제가 있던 지역의 가족은 모두 잘 못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유인납치에 걸려 월북한 사람들이 북한 텔레비존 기자회견을 통해 김용화가 남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저는 황장엽 선생과 언젠가 만나 들었던 얘기를 항상 생각합니다. 그분 말씀이 '가족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족보다는 마을사람들이 더 중요하고 마을보다는 나라가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희생 없는 열매는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였죠. 그분은 말 뿐이 아니라 그렇게 지켜왔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내 가정 지키기만 바란다면 숨어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겠죠.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중국 내 탈북자들의 한국행과 한국사회 정착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김용화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