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마약 빙두를 거래하거나 사용하는 탈북자들이 검거되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탈북자들은 대체로 북한에 있을 때부터 마약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의 김석향 교수는 다른 학자와 공동으로 집필한 북한 주민의 약물 암페타민의 오.남용 실태 보고서를
최근 미국의 북한전문 학술지 NORTH KOREA REVIEW에 발표했습니다.
과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김석향 교수는 탈북자들의 마약 남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마약 사용의 온상이 된 북한사회에도 마약의 위험과 폐해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석향 교수를 전화로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신문이 인용한 이 학술논문에 따르면 인터뷰하신
한 탈북 건설노동자는 '동료의 70퍼센트가 암페타민을 먹었다' 또 다른 탈북자는 '거의 모든 10대가 약물을 복용했다' 고 말했다는데 북한 주민 사이에 마약 복용이 이렇게 일반화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석향 교수: 시기를 나눠보면 그 점이 보다 명확해 집니다. 탈북 시점이 2008년, 2009년, 2010년인 사람은 암페타민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50% 많으면 100%까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했을 거다’ 혹은 ‘어린애도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2008년 이전 2005년 이후 사이에 탈북한 사람들은 ‘꽤 퍼지고 있다.’ ‘ 흔히 볼 수 있다.’ 정도의 말을 합니다. 그런데 2005년 이전에 탈북한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 한다.’ ‘잘 모른다.’ 또는 ‘아예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이전 1999년 이후 사이에 나온 탈북자는 아편에 관한 얘기를 주로 합니다. 그 시기는 히로뽕으로 불리는 메타암페타민이 퍼졌던 시기가 아닌 것이죠. 그래서 주민들의 마약 사용 비율은 탈북자들의 탈북 시기에 따라 다를 뿐아니라 직업 성별 연령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여성은 마약에 덜 노출됐고 연령은 주로 20대-50대가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변수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근래 탈북한 사람들일수록 마약이 많이 퍼져있다는 것을 확신있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 그만큼 지난 몇 년 사이에 마약 사용이 점점 더 확산됐다는 방증이군요?
김: 그렇습니다.
전: 북한의 특정 지역에만 국한 된 것인가요?
김: 우리도 시작할 땐 회령 등의 국경도시부터 연구했기 때문에 거기에 국한된 상황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출신의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국경지역은 물론 국경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지역 청진 함흥 등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함흥에는 마약 제조처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 근처에 있는 도시 단천은 회령이 물들기도 전에 이미 2007년경 빙두 때문에 도시 자체가 ‘절단’이 났다고 표현하더군요. 또 어떤 분은 2012년 탈북했는데 평양에 있으면서 여기 저기 여러 도시를 다녀봤던 분입니다. 그분이 평양 사무실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빙두하면 잠이 안 온다더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왜 그걸 이제야 아느냐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는데 자기만 몰랐던 사실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걸 보면 이 문제가 국경지역에 국한된 상황은 아닙니다. 물론 국경지역이 중국 밀무역을 통해 훨씬 더 심하지만요.
전: 원래 암페타민은 북한 정권차원에서 생산해 온 것이지만 지난 몇 년사이에 민간 조직과 심지어 일반 가정에서도 만들어 유통되기 시작했다고 학술논문 내용에서 밝히셨는데 어떻게 통제가 철저한 북한사회에서 민간조직이나 일반가정에서 마약을 만들고 유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그게 고난의 행군 시기 90년대 중 후반에 걸치면서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1999년 2000년이 되면 고난의 행군은 끝났다고 하지만 그 여파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시체가 쌓여있는 그런 심각한 상황이 조금씩 극복이 됐다는 것이지 한꺼번에 정리가 됐다는 건 아닙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먹고살 게 없는 무렵에 함흥의 제약공장 근로자 얘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이 굶어 죽은 사람들은 제약회사와 같은 곳의 과학자들이라고 합니다.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고 비교적 평탄하게 산 사람들이죠. 이런 분들이 위기가 닥치면 제일 취약합니다. 그래서 마약 거래자들이 이들에게 중국에서 메타암메타민의 원료되는 페놀 초산 등을 사서 넘겨 주고 마약을 만들게 해 비싼 값에 팔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단속은 제대로 안 됐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굶어 죽는 판에 단속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또 주민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처지라 죽기살기로 단속자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 마치 쥐가 고양이 공격하는 모양새이군요.
김: 그렇죠. 그래서 약 제조공장에서 마약을 만들어 파는 건 묵인된 알려진 비밀처럼 됐다고 합니다.
몇 해 그런 상황이 지속됐고요. 마약을 만들거나 유통한 자들도 자기가 단속에 걸리면 총살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일단 걸리면 마약을 오히려 단속자들에게 권유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단속자들이 빙두에 중독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단속 체제의 작동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메타암페타민을 압수하면 소각을 해야 하는 것인데 단속자가 사용하고 상급자에게도 바치고 아내나 가까운 사람을 시켜 시장에 팔기도 하는 상황이 지속됐다는 것입니다. 일단 단속이 나오면 잠간 가라앉았다가 곧 다시 정상적으로 마약거래가 활발한 상태로 돌아가곤 했다고 하더군요.
전: 2천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에서 아편이 마약의 대종을 이뤘지만 2000년 중반부터는 양귀비 재배 밭은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빙두 생산이 급증했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김: 중국에서 북한 산 아편을 밀수했었지만 아편 중독은 상당히 오래 써야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이스 (빙두)는 그 효과가 강하게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중국쪽에서 아편에서 메타암페타민으로 갈아 탄 게 1999년, 2000년 시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중독이 늘어나면서 중국 당국이 마약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했던 한 사람은 단동의 공안국장이 당국에 의해 사형 당한 얘기를 했습니다. 빙두 밀수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밀수꾼들과 결탁한 혐의였다고 합니다. 중국쪽에서 암페타민 중독자 숫자가 늘어나자 당국이 엄하게 단속한 시기가 2천3년에서 2천5년 경입니다 비록 단속을 한다고 해도 밀수는 계속되지만 단속이 강화되니까
이전보다는 밀수가 힘들고 위험부담이 커지게 됐죠. 그래서 북한 마약거래업자들은 중국보다는 북한 내부 시장쪽으로 판로를 돌리게 된 것입니다. 탈북자들은 이걸 '쏘분'한다고 하던데요 제 생각에 작을 소자 나눌 분자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약을 0.5그람 등으로 작게 나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집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판매도 했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어느 집이 마약 판다는 걸 알아서 그 집에 찾아가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500그램 혹은 1킬로 등의 단위로 중국에 파는 밀거래였다면 지금은 북한 내부에서 마약을 생산 소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바뀐 시점이 2005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내부 소비가 늘어나 중국에 팔 것이 없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전: 김 교수님이 조사한 탈북자 중 일부는 빙두가 중독성이 없다고 주장했다던데요, 언제든 마약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긴가요?
김: 네. 그분들 주장은 그렇습니다. 특히 2천8년에서 2천9년까지 나온 탈북자들은 대체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마약의 폐해를 ‘문란이 왔다’라고 표현하는 탈북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2009년 이후에 탈북한 경우입니다. 그전에 나온 사람은 마약사용에 대해 ‘애착’은 있는데 ‘중독’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애착’이란 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며 ‘생각나고 하고싶다’는 뜻이랍니다. 그게 ‘중독’이라고 얘기해 주면 그 사람들은 중독은 아니라면서 자신들이 한국에 와서 끊을 수 있었던 건 중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마약의 폐해를 무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소위 아이스 (빙두)를 많이 해 ‘문란이 왔다’는 말은 이전에 탈북한 사람들은 모르는 표현입니다.
전: ‘문란이 왔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김: 아이스를 하면 성욕이 강해지는 면이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옷을 벗고 달려 들기도 하는 일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걸 ‘문란왔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보통 문란이라면 ‘성적 문란’이라고 쓰지 않습니까? 이걸 아이스 마약에 따른 문란에 연계해 쓰는 현상으로 새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전: 전문가들은 약물 마약에는 금단현상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빙두 부작용을 풀기 위해 수면제 같은 다른 약물 복용을 한다던데 무슨 얘기입니까?
김: 이분들 얘기가 빙두 마약의 장점은 24시간이든 48시간이든 72시간이든 잠 안자도 똘똘하고 정신이 말짱하다고 합니다. 고위간부들은 회의에 나가면 김정은 같은 높응 사람 말에 박수 잘 쳐야 하는데 졸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마약이 필요할 정도라고 합니다. 잠을 안 자게 하고 각성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근데 그 약효가 풀리면 지치니까 또 사용하게되고. 그러다 보니 메타암페타민 중독이 되면 불면증이 생기고. 각성효과로 계속 깨어있으니까 몸이 힘들고 괴롭겠죠. 그래서 잠을 자려고
수면제를 먹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시일이 지나면서 수면제 복용량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고요.
전: 북한에서 마약을 사용했던 탈북자들이 근래 들어 그렇게 많다는데 한국에 들어와 정착을 하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마약 사용 인구가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네. 그렇다고 봅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걸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온 탈북자를 처음 조사하는 분들 중에 몇 분은 탈북자들이 정체 모를 약을 너무 많이 갖고 들어온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탈북자 방에 들어가 보면 약을 보따리로 갖고 온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전: 탈북자들의 마약 사용은 한국사회에서도 사회적인 문제 특히 범죄 발생이나 정착 생활에 장애가 될텐데요, 한국정부 당국으로서는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간주하고 있고 또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김: 내부적으로는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마약 사용자 개인별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약을 사용하다 구속되는 사람도 있고요. 하나원 내 병원에서 탈북자의 마약 중독이 의심되면 치료도하고 관계 당국에 소견소도 보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정부가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면 조용하게만 해결할 게 아니라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런 암페타민같은 마약을 한국에서 사용하는 건 불법이고 그걸 사용하면 정신적 신체적 위해가 있다는 걸 하나원에서 교육하지 않나요?
김: 원론적인 것은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마약 사용 증상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도 지금까지 이뤄져왔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교육도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 들어온 탈북자뿐 아니라 북한 사회와 북한 주민에게 마약 폐해를 알리는 방법을 찾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방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마약을 주면 안 된다. 마약이 두뇌성장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어떻게 신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지 등에 대해
의학적 설명을 곁들인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최근 북한 주민의 약물 빙두의 오.남용 실태 보고서를 공동 집필해 미국의 북한전문 학술지 NORTH KOREA REVIEW에 발표한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의 김석향 교수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