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올 여름 한국에서는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6.25추념공원건립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인류의 자랑스런 역사임을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한반도 평화와 사랑의 상징의 장으로 추념공원을 세우자는 운동입니다.
오늘은 이 운동본부의 김석우 위원장을 모시고 추념공원건립 추진에 관한 얘기를 들어 봅니다. 김 위원장은 현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이며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원 차관을 지냈고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10인 국가안보자문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전수일: 김 이사장님께서는 '6.25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6.25 전쟁의 현장인 격전지에 기억의 상징물을 조성할 때가 됐다'고 최근 주요 언론 기고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은 지난 1992년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을 착공해 3년뒤 완공 개장했습니다. 정작 6.25전쟁의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이제야 6.25 추념공원을 세우자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왜 이렇게 늦어졌습니까?

김석우: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교육자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6.25전쟁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의 중요한 밑바침이 됐습니다. 그 의의를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일부 선생들은 6.25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6.25는 김일성이 스탈린, 모택동의 협조를 얻어 일으킨 것인데 마치 미국이 시작한 것인양, 그런 방향으로 교육을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자체에 대해 청소년들이 혼동하게 됐습니다. 또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됐습니다. 거기에는 책임있는 선생님들이 사실을 등한시 한 것과 일부 그런 의도적인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미국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은 수도 워싱턴에 세워졌습니다. 근데 국민운동본부가 계획하고 있는 추념공원이 세워질 곳은 어디인가요?
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습니다만 후보지 몇 군 데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전선 가까이에 있는 양구의 펀치볼, 춘천 시내에 있는 과거 비행장 자리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운동본부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그런 문제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정리해 나갈 생각입니다. 저희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6.25의 의미를 인식하고 상징적인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늦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지난 7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휴전 60주년을 맞아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한 연설에서 6.25전쟁은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평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 60주년이 끝나는 내년에는 6.25관련 행사가 이처럼 크게 부각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희 운동의 추동력도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다소 늦었지만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선영 추진위원장이 중심이 돼 추진됐습니다. 그 시작 계기는 지난 6월에 양구에서 문화인 축제가 있었습니다. 참석 후 6.25추념공원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게 신문에 작게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보신 어떤 연로한 분이 100만원을 들고 와서는 자신이 이 공원건립에 참여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국민운동으로 확대하면6.25전쟁 경험자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국민이 많다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뜻을 모아 우리가 7월 모임을 갖고 전쟁기념사업 관련자들의 조언을 들어 8월 27일 운동본부의 정관을 통과시키고 발족한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간 짧은 기간에도 참여자가 점점 늘어나고 헌신적으로 돕겠다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좋은 의견도 많이 나와 그걸 모아서 국민에게 전파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이 시점에서 미진한 부분이 많지만 헌신적으로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모이면 국민적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 김 이사장님께서는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 와 보셨습니까?
김: 네. 94년 기념공원 공사 완공때쯤으로 기억됩니다만 제가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 의전수속이었는데 당시 워싱턴 기념공원 현장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념공원 건립을 위해 미군 예비역장군들이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 주요기업들도 재정적으로 많이 기여했습니다. 그 후 제가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가 보는데요, 링컨 기념관과 월남전 기념비 옆에 잘 조성 돼 있습니다. 한국사람들 뿐만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6.25전쟁의 교육장으로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전: 저도 몇 차례 갔었습니다. 38명의 미군이 전진하는 모습은 38선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6.25추념공원을 짓게되면 단순히 전쟁을 기억하는 목적으로만 그쳐선 안되고 그 이상의 어떤 기능과 목적을 염두에 두고 건립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김: 한국전쟁은 미국사회와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그 의미가 퇴색됐었습니다만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봐도 그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전쟁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전쟁에 실패하고 졌다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도 어려움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전세계 평화가 유지되는 건 6.25란 불행한 침략전쟁을 우리가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의미가 큽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유엔 체제가 서면서 유엔의 목적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엔안보리를 중심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기능인 것이었죠. 그런데 실제 한국에서 침략행위가 벌어지자 유엔은 안보리와 총회의 결의를 거쳐 평화를 위해 참전한 첫 사례이자 가장 중요한 선례가 된 겁니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인데 국내적으로 우리 젊은 학생들이 그걸 모르고 있다는 건 창피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젊은 세대들에게 교육하고 전쟁의 사실을 알리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추념공원은 목적과 기능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또 6.25참전국들이 많습니다. 병력파견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이 참여했습니다.
추념공원에는 이들 국가의 독립관을 만들어 한국과의 관계도 전시하고 분야별로 6.25 음악, 문학, 미술 등을 전시 평가하고 또 이런 분야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젊은이들에게 교육시키는 기능도 해야 합니다. 후보지 지역이 600미터 정도로 큽니다. 그래서 여름과 가을에는 젊은 학생이들이 야영장처럼 캠핑도 할 수 있고 서로 어울리면서 여러가지 문제와 대한민국의 장래를 생각하고 얘기하는 장소가 되면 좋겠죠.
전: 말씀을 들어보면 여러 목적과 의미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추념공원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은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을 정부주도로 건립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운동본부는 추념공원을 민간인 주도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김: 제 기억에 남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져 한일 갈등이 심했을 때입니다. 그때 정부가 일본을 극복하자고 해서 국민운동차원에서 모금운동이 펼쳐졌습니다.
4-5백억원을 모금해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세웠습니다. 국민운동을 통해 우리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주체의식 갖고 우리의 장래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선례가 됐습니다. 또 2011년 일본에서 후쿠시마 해일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한국정부가 나서기도 전에 국민은 민간단체를 통해 비록 일본과의 감정이 안 좋았지만 같은 인류로 도와주자는 자발적인 헌금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같이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국민헌금운동으로 모은 자금이 9백억원 정도였습니다. 독립기념관 건립 때보다 2배나 더 많은 헌금이 모인 것이죠. 그런 사례를 보면 정부가 주도로 기금을 조성하면 우선 제약도 많이 받을 뿐아니라 관료가 주도한다는 게 학생들에게 덜 공감적일 수 있습니다.
국민 자율적인 운동이 훨씬 더 낫다는 얘기지요. 처음에는 힘이 들어도 국민운동으로 시작해 국민들이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과정에서 모금운동은 더 활기를 띠고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효과도 배가될 겁니다. 그래서 민간 주도로 추념공원 건립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전: 6.25 추념공원 건립 국민운동본부 창립에 발기한 분들의 면모를 보면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오스트랄리아, 영국 등 외국에 있는 분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 가요?
김: 6.25는 한반도의 민족적인 비극이었지만 유엔체제 하에서 16개국이 직접 참여하고 5개국이 의료지원단을 보냈습니다. 국제연합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전쟁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전쟁 때 우리 국민의 용기도 중요했지만 당시 도움을 주는 나라들이 없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추념공원건립운동에 이들을 동참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저희의 운동에 활기를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전: 워싱턴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이 분수대 뒤에 있는 검은 돌벽입니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일텐데요, 이런 문구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겁니다. 김 위원장님은 이 말이 6.25전쟁으로 한국이 자유를 지켰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 물론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으로 자유를 지키지 않았다면 6.25는 막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을 방문해 알링턴국립묘지를 돌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미국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 위해 미국이 극진한 예우를 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라이언 일변 구하기 등의 영화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미국을 있게하는 것이고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희생하라' '전장에 달려가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젊은이들이 국가의 병역의무를 다하고 전쟁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달려 나갈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추진하는 6.25추념공원이 국민 일반에게 조국을 생각하고 국가의 위기시에 모두가 힘을 합쳐 희생도 불사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는 교육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결성된 6.25추념공원국민운동본부의 김석우 이사장을 모시고 추념공원 건립 활동에 관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