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미국에서 세차례 전시회 개최한 탈북화가 송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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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탈북 화가가 있습니다. 송벽씨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세차례나 개인 전시회를 열면서 미국의 주요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스엔젤레스타임스, 영국의 비비씨 방송에도 크게 소개됐습니다. 그의 그림은 과거 북한 선전화 전문화가 답게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독재통치자들과 그 아래에서 자유를 빼앗긴 인민들의 삶을 그의 독특한 화풍으로 풍자한 것으로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0년전 탈북해 한국과 미국에서 작품활동과 전시회를 열고 있는 황해도 출신의 송벽 작가가 지난 11월과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세번째 개인전시회를 열고 30여점의 작품을 선 보였습니다. 전시회 기간 워싱턴 시내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특강을 하며 저희 방송국을 찾은 송벽 작가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미국 전시회는 이미 2차례, 2월 과 4월, 애틀란타와 워싱턴에서 하셨는데 이번에는 11월 5일부터 12월 초까지 거의 한 달 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또 하게 됐습니다. 이번 출품 작품은 모두 몇 점입니까?

송벽 화가: 기존 작품들에 새 작품 4점이 추가됐습니다.

전: 새 작품은 어떤 작품들인지 소개해 주시죠.

송: 새 작품은 남과 북의 고등학생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북한 학생이 한국을 생각하는 사회, 이를테면 썩고 병들었다고 배운 남조선사회…진짜 못 산다는 그런 생각을 그렸고, 또 다른 작품은 한국의 여학생을 그린 건데요- 한국 학생들이 북한의 현실을 잘 알지 않습니까- 진짜 못살고 힘들다는 그런 것을 작품화한 것입니다.

전: 그걸 어떻게 형상화해서 그림으로 표현하셨나요?

송: 학생들이 편지쓰는 방식으로… 책상에서 그런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렸습니다. 또 한 작품은 북한 군인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인들의 모습입니다. 코카콜라 병 놓고 -코카콜라가 자유의 상징이니까요- 코카콜라를 바라보는 북한 군인의 모습을 통해 북한 국민들이 자유를 갈망하는 걸 살짝 입혔습니다.

전: 주로 송벽씨의 그림은 특히 외국에 많이 알려진 미국의 유명 여배우 마릴린 몬로를 활용해 김정일의 얼굴을 형상한 그림이나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주제로 한 그림, 또 군인 학생 어린이들을 주제인물로 설정한 그림이 많습니다. 이제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도 아닌 3대 세습한 김정은 시대입니다. 김정은이 28살쯤이라는데 송벽씨는2002년 10년전에 탈북했으니 당시에는 18살 정도 였을 것입니다.

북한에 계실 때 김정은에 대해 들어 보거나 사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송: 솔직히 북한 군인들은 김일성 김정일 일가에 대해서는 비밀이고 몰라야 합니다.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죠. 김정은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그런 아들이 있겠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왜? 김정일은 신이기 때문입니다.

전: 그러니까 송벽 화가는 북에 있을 때 김정은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알지 못하셨다는 말씀이네요.

송: 그렇죠. 생각 자체도 못했고.

전: 그럼 지금와서 공개적으로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의 통치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그의 아들 김정은인데, 보도를 통해 소식도 듣고 사진도 보셨을 겁니다. 앞으로 김정은을 송벽 화가의 그림에 등장시킬 건지와 시킨다면 어떻게 형상화 할런지 궁금합니다.

송: 이미 등장을 시켰습니다. 컴퓨터 상에 올렸습니다. 이번 작품 전시회에는 안 나왔습니다. 왜 그걸 그렸냐면 김정은이 북한의 새 지도자로 등극했고 나이가 젊고 해외유학파이고 하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림은 김정은이 서있는 자세에서 전기코드를 쥐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 전기코드가 전기소켓근처에 머물고 있는데요 그 코드만 꽂으면 세계인들과 더불어 가는 세계로 국민을 인도하는 것이고 안 꽂으면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체제 그대로 폐쇄적 사회로 가지 않겠냐는 의미입니다. 이 그림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거나 세계인들에게 송벽이 새 작품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기 보다는 북한에 있는 국민과 김정일이 총애하던 보위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아, 이놈이 김정일 장군님을 마릴린 몬로로 형상하더니 이번에는 김정은 장군님을 가지고 작품을 했네…’라고 반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나쁘게 받아들여도 좋지만 나의 그런 메시지를 내 예술을 통해 전함으로써 북한을 변하게 한다면 좋겠습니다.

전: 결국 송벽 작가도 김정은 체제는 할아버지 아버지때와 달리 개혁과 개방쪽으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군요.

송: 네. 그렇죠.

전: 그럼 앞으로 김정은이란 인물에 대한 그림이 더 나올 수도 있겠네요.

송: 앞으로 더 두고 봐야죠.

전: 지금 기침을 많이 하고 계신데 건강상태가 왜 그렇게 안 좋습니까?

송: 북한에서 수용소 생활 겪으며 폐가 망가지고 먹지 못하고 강압적 노동에 거의 죽다시피해 나왔습니다. 근데 그것이 좀 아물었었지만 최근에 다시 도졌습니다. 도지니까 힘이 듭니다. 기침도 나오고 숨쉬기도 바쁘고.

전: 폐와 관련된 겁니까?

송: 네. 폐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전: 탈북한 지 벌써 10년이 다됐는데도요.

송: 네. 아직 잔재가 남아있는 겁니다.

전: 그러니까 교화소에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송: 저 혼자 고생한 건 아닙니다. 모든 탈북자들, 그리고 지금 북한에서 수용소 생활하는 분들…고생하는 분들 엄청 많습니다.

전: 벌써 한국에 들어간 지 10년이 됐습니다만 북한 선전화만 그리다 한국에 가서 또 외국에 나와 여러차례 전시회를 하면서 한국과 외국 화가의 작품이 비구상적 추상적이라서 그림들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신 적 있는데 지금은 좀 익숙해 지셨나요?

송: 네. 많이 익숙해 졌다고 자부는 하는데 아직 공부를 더 많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 순간에 세계 미술인들의 구상 비구상 추상화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시기상조이죠. 조금 이해는 하는데 더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외국인 작품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아까 지적하신대로 이분들이 각자 독창적인 창조력과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형상화하고 나타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송: 네. 그분들은 나름대로의 자기의 메시지가 다 들어가 있어요. 거기에 철학적 의미가 들어있고요. 작품 하나 하나를 관객이 볼 때 이 작가가 왜 이렇게 그렸고 던지는 메시지는 무얼까 하는 의문점을 자꾸 주는 겁니다. 저도 그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습니다. 왜 이렇게 그림을 그릴까? 차라리 북한처럼 화려하게 아름답게 풍경을 그리면 사람들이 '멋있다, 잘 그렸다'고 할텐데. 하지만 그러면 답은 거기서 끝납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없는 겁니다. '멋있다, 화려하다, 잘 그렸다'로만 끝나는 것이죠. 저도 작품 하나 하나에 무언가 자기만의 메세지와 철학적 의미가 들어가야 진정한 작품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 자꾸 연구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전: 북한에 있으면 상상도 못했을 얘기겠지요? 자기의 창조력과 자기의 자유스러움, 작품을 통해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송: 아예 있을 수가 없지요. 예술의 자유가 무언지... 그 존재 자체가 무언지... 제가 한국에 와서 대학 공부와 대학원 생활을 마치면서 새롭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의 힘에 대해…예술은 사회를 변혁시키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하는 힘이 무궁무진하더군요. 북한에서는 그 자체를 거부하고 오직 하라는 대로만...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예술가가 예술가다워야 하지만 예술가답지 못하게 만들고 …자기의 창조성과 자유가 없습니다. 이 자체를 북의 예술가들은 모릅니다. 새롭게 자라나는 예술가들도…

전: 그러니까 로보트처럼 되어 그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송: 없죠. 그 자체를 없애는 게 북한정부의 정치거든요.

전: 체제가 바라는 것이군요. 쉽게 얘기해서 창조적인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송: 네. 못하게 만들죠.

전: 그점에서는 탈북해서 자유세계에 나와 스스로의 창조성을 발휘하고 나만의 세계를 내 그림에 형상할 수 있고 남들에게 밝힐수 있다는 게 굉장히 귀중한 거네요.

송: 네. 아주 귀중하죠. 그것처럼 존재감…내가 살아있다...송벽 예술가 살아있다… 송벽은 위대하다… 이런 것이 뿜어져 나오면서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너무 뿌듯하고 감개무량할 때가 많습니다.

전: 첫 개인전은 작년(2011년) 서울에서 1월이었죠? FOREVER FREEDOM, 즉, ‘자유는 영원하다’ 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여셨는데 반응이 좋았고 모든 비평가들도 좋은 말씀해 주신 걸로 압니다. 그때는 그림 말고도 북에 남아있었던 당시의 여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전시회장에 별도로 전시했다고 했죠.

송: 네. 저는 그 전시회에서 평면작업만 아니라 조각도 했고 설치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을 가른 철책선을 형상해 놓았습니다. 그 철책선에 여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붙였습니다. 나비도 붙였습니다. 그렇게 전시회장을 꾸몄습니다.

전: 나비도 붙였다?

송: 네. 그것은 남북한 현재의 모습이거든요. 인간은 쓸데없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생기고 편지도 마음대로 못하고 갈라져서 애타게 그리며 세월은 흘러가고…그렇지만 말 못하고 생각 못하는 나비는 자유롭게 남북한이 뭔지도 모르면서 팔랑대며 왔다갔다 하거든요. 왜 나비보다 못하게 갈라놓고 이런 고통을 주는가?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설치했습니다.

전: 여동생 가족은 한국에 데려 오셨습니다. 2007년이죠?

송: 네.

전: 벌써 5년정도 됐는데요, 여동생 가족은 한국사회 정착을 잘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지냅니까?

송: 첫 날과 둘째 날은 꿈같아서 잠을 못잤다고 합니다.

전: 물론 오빠도 있으니까 더 좋았겠죠. 가족없는 탈북자보다는…

송: 동생이 당시 시집갔습니다. 조카와 매제까지 동생 가족 모두를 데려왔습니다. 정부에서 임대 집도 주고. 거기서 살라고. 집에 들어가 이불 펴고 자려니 잠이 안 오더랍니다. 눈 뜨면 수돗물에서 뜨거운 물 찬 물 나오지, 마트 상점에 가면 바나나 파인애플 없는 것 없지. 북한에선 그런 생활 꿈도 못 꿨죠. 물지게 지고 물 날라야지. 화장실 가려면 바깥의 공동변소에 가야지…

전: 한국에서는 물론 화장실이 모두 수세식으로 돼 있죠.

송: 네. 개인집, 아파트에 다 설치돼 있죠. 그러니까 그런 걸 겪으면서 동생네가 잠을 설친거죠. 이틀 동안은. 그래서 북한국민은 외계인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사회와는 떨어져 나간 것처럼. 동생네 지금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전: 더구나 오누이가 같이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살갑고 더 좋겠네요.

송: 네.

전: 앞으로 작품구상과 전시계획에 대해 듣고싶습니다. 미국에서도 작품전시회를 3번이나 하셨고, 한국에서는 한 번. 오히려 외국에서 전시회를 더 많이 하셨습니다.

송: 네. 저희 매니저님들과 계획을 잡고 새해에는 3월 보스톤에서-미국 동부에 있는 도시죠- 전시 계획이 잡혀있고 그 다음 뉴욕, 엘에이 그 다음에는 영국 프랑스 전시까지 계획을 잡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최종목적은 평양에서 송벽 개인전을 여는 것입니다.

전: 체제가 바뀌기 전까지는 실현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송: 꿈을 꾸면 꿈은 이뤄지거든요. 크게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독재통치자들과 그 아래에서 자유를 빼앗긴 인민들의 삶을 독특한 화풍으로 풍자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탈북 화가 송벽씨를 만나 세번째 미국 전시회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