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조선 정치범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난 죄 하나만으로 23년간 학대받고 굶주리며 짐승처럼 살았던 탈북자 신동혁. 관리소 탈출 7년만에 그의 관리소 생활 참상에 대한 얘기를 미국에서 영문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책 제목은 'ESCAPE FROM CAMP 14.' '14호 수용소 탈출' 입니다. 3월 말 이 책이 나오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과 CNN텔레비전방송 NPR라디오방송등 미국 언론은 신 씨의 얘기를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가디안, 이코노미스트 등 권위있는 언론사에서도 신동혁 씨의 수용소 경험담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책 발간과 더불어 미국을 방문한 신동혁 씨를 만나 봤습니다.
전: 우선 저희 청취자들을 위해 신동혁 씨가 어떻게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갔으며 미국에 까지 와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1982년 개천 14호 관리소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수감자 부모로부터 태어난 태생적인 정치범이랄 수 있습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태어난 죄'라고 표현하던데요. 89년 당시 7살 때 동갑나기 소녀가 밀 이삭을 주워 주머니에 다섯 알 넣었다가 간수에게 매맞아 혼절한 것을 목격했고 그 소녀는 그 다음날 사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996년 14살 때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당하고 2005년 1월에 수용소를 탈출한 때가 만 나이 23살, 한국나이 24살 때입니다. 탈북해 1년 반만인 2006년 8월에 한국에 입국했고 그 다음해인 2007년 10월에 '북한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제목의 수용소 회고록을 출간했습니다. 출판회 때 저도 취재를 했었습니다. 2008년 3월에 일본에서 일본어로 펴냈고 올해 2012년 3월 29일에는 미국에서도 신동혁 씨의 관리소 회고록이 출간됐습니다. 이 책을 집필한 분은 블레인 하든(Blaine Harden)씨로 미국의 주요신문인 워싱턴포스트(Washing Post) 기자였습니다. 책 이름이 'Escape from Camp 14' 즉 '14호 수용소 탈출'이란 뜻인데요 한국에서도 책이 나왔고 일본에서도 번역돼 출간됐었는데 미국에서 다시 회고록을 하든씨의 도움받아 펴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동혁: 사실 처음에 책을 낸다고 할 때 힘들었습니다. 다시 옛날 일을 기억해하고. 다시 들춰내야 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살았던 지난 일들을 한국과 일본에서 책으로 펴 냈고 세계를 다니면서 북한수용소 얘기를 많이 했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수용소 안의 사람들 생활은 더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제가 탈출함으로서 수용소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이나 그밖의 수감자들이 더 힘들어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블레인 하든씨를 만나 얘기하면서 또 다시 나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는 게 힘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에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좀 더 파헤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북한정권을 압박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 대한 스토리, 나의 가족에 대한 여러가지 일들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책의 주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야 한다는데 목적을 두고 한 번 해보자고 해서 다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전: 그런데 저자가 마침 미국의 주요 신문 기자였고 또 영어권에서 출간되어 전세계로 퍼질것이므로 영어 회고록의 파급성도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신: 그렇습니다. 물론 사실 제 스토리만 생각해서는 너무 힘들어 못 견디겠지만 저의 목적이 이 책으로 인해 북한당국이 압박 받아 최종적으로 수용소를 철폐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전: 이번 책 출간에 즈음해서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미국 신문이 신동혁 씨의 관리소 수감 시의 참혹한 실태를 요약해 보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용소 생활에서 무엇보다 섬뜩했던 게 가족끼리도 감시하고 동네 이웃끼리도 서로 감시하도록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인데요 아주 충격적인 고백을 하셨습니다. 신동혁 씨가 당시 수용소를 탈출하려는 형과 어머니의 나누는 대화를 듣고 이를 간수에게 밀고했다는 것인데요, 어머니가 교수형, 형은 총살형 당하는 걸 지켜봤다고 했는데 이런 사실은 한국언론에나 인권단체에게 밝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하필 하든씨에게는 털어놓기로 생각하게 됐습니까?
신: 일단 책을 한국과 일본 두 곳에서 내면서 수용소를 최종적으로 없애야겠다는 목적이었지만 그게 실패했습니다.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괜히 책을 쓴 것은 아닌가? 나만 힘들지 않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시도해보자…… 한국사회와 북한이 나의 외침을 듣지않았으니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나가 숨기고 싶었던, 저에게는 과오였던 일을 밝혀보자'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에 대한 죄였지요. 처음 한국에서 책을 쓸 때는 이런 걸 차마 밝히고 싶지 않았고 숨기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사실 숨기고 싶습니다. 이런 걸 밝히고 싶은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만 생각하다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겠다 싶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와 형에게 저질렀던 죄, 아버지에게 범했던 죄를 사죄하는 입장에서 밝히게 됐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좀더 북한이 어떤 나라임을 표현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전: 그런데 과거에는 어머니와 형을 고문하고 죽인 간수들을 죽도록 미워했지만 지금은 간수들 조차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던데 어째서입니까?
신: 처음에 제가 한국에 들어가자마자 정신적으로 힘들고 할 때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그리고 외국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저는 인간한테 상처받았지만 오히려 밖으로 나와서는 인간한테 사랑받고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해주고 배려해주고 저에게 행복과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몰랐던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 느낀 게 '나도 북한에서 죄수의 자식이 아니라 간수로 태어났었다면 저렇게 될 수 있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간수가 나를 고문하고 상처 줬다고 미워할 게 아니라 북한이 저렇게 되겠금 만든 시스템-체제를 미워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그렇게 만든 사람을 미워해 그 체제의 뿌리를 없애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에는 이로 복수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람을 때리고 복수한다는 게 너무나도 무서운 걸 잘 알기 때문에 정말 그런게 싫습니다. 간수들도 좋은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은 사람이 됐을 텐데 북한사회에서 그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최종적으로 미워해야 하는 건 북한의 김정일 정권 체제, 지금은 김정은 체제입니다.
전: 당초 관리소에 부모가 잡혀 들어간 이유가 부모 친척이 6.25때 월남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부모중 누구의 친척이 월남했습니까?
신: 그건 잘 모롭니다. 듣기에 대충 그렇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모릅니다.
전; 친척이 있다고 들었다면 한국에 가서 그 친척을 찾아 봤습니까?
신: 전혀 찾아 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전: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남쪽에 친척이 있는 지 여부도 확실히 모르겠네요.
신: 모릅니다.
전: 탈북 이후 한국에서 북한인권개선, 북한 정치범수용소 철폐운동을 해왔는데 미국에 와서는 탈북자 지원단체 링크(LINK)에서 함께 일하며 북한인권 개선운동도 하고 중국 내 탈북자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일에 관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었습니까?
신: 링크 단체가 하는 일이 중국 내 탈북자들을 비밀루트를 통해 한국 혹은 미국으로 보내는 일입니다. 제가 링크에서 자원봉사 요원으로 일하면서 링크의 동남아 지역 쉘터-안전가옥, 대피소-에서 6개월 동안 북한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전: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신: 그 사람들-탈북난민들은 보통 한국과 미국에 가기를 기다리면서 환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 줬습니다. 한국사회와 미국사회를 있는 그대로 알려 줬습니다.
전: 예를 들어 어떤 얘기였습니까?
신: 한국사회에 가면 한국 여권도 받고 한국 국민으로 살 수 있지만 자신들이 북한에서 어렵게 자란 그 이상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고 자기가 바라는 꿈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려 했습니다.
전: 그러니까 '한국이나 미국이란 자유의 나라에 가면 무한한 자유가 있지만 자기가 정착해 살기 위해서는 아주 굳은 의지를 갖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거저 먹는 게 아니다' 그런 얘기였군요.
신: 옳습니다.
전: 근데 중국으로 탈북한 뒤 한국에 입국하기 까지는 1년 반 남짓 있었다고 하던데 중국에서 어떻게 먹고 살았습니까?
신: 중국에 도망쳐 나가보니 당시 시골이나 산속에 일할 게 많더군요. 일거리가 많았습니다.
전: 어떤 일거리였습니까?
신: 보통 농사짓는 일과 산속에서 벌목하는 일인데 탈북자들이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국경 넘어 중국 산속으로 들어가 마을 집 아무데나 두드려 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들의 사람됨을 보고 일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속에서 소에게 풀먹이고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전: 근데 한국으로 가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신: 1년동안 생활할 때 국경지역의 탈북자들을 잡아내 북송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서워 중국의 남부로 내려오던 길에 상해를 들렀습니다. 상해의 한국영사관에 들어가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전: 지금은 한국에 인터넷방송에 출연해 탈북자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방송입니까?
신: '인사이드 엔케이'(Inside NK) 라고 매주 일요일 저녁 8시마다 인터넷 생방송으로 북한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고문 피해자라든지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진행합니다. 이 방송프로그램을 만든 목적은 언론을 통해 여러가지 큰 행사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북한사회 인식의 뿌리부터 바꿔야한다는 데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네티즌을 상대로 북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티비 방송입니다.
전: 그러면 북조선 인민이 아니라 남조선 사람들에게 북조선 실상을 알리기 위한 것이네요.
신: 남조선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국제사회를 상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알리려 시도한 것입니다.
전: 한 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신: 한 달이 넘었습니다. 벌써 방송 6회째가 나갔습니다.
전: 그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반응이 있습니까?
신: 네. 반응을 보면 대체로 북한관련 보도는 뉴스나 신문기사를 통해 지금까지 많이 접했었지만 언론사가 필요한 것만 편집해서 내보내니까 남한사회에서 얻는 북한사회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터넷 방송은 한 시간 반정도의 길이로 출연자가 북한에서 경험한 얘기를 그대로 밝히고 시청자들의 질문을 받아 답도 해주고 하니까 사람들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것을 알게돼 굉장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 지금 그런 인터넷 방송을 통해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실태를 알리는 일 외에 북한인권개선이나 수용소철폐를 위해 하는 일은 어떤 게 있습니까?
신: 일단 이번에 책이 나오면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니까 국제행사에 초청돼 실제 증언할 기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 관리소에서는 이른바 모범수 남녀를 뽑아 표창결혼시켜 애를 낳게 한다던데 지금 신동혁 씨는 자유세계에 살고 있지않습니까? 본인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원하는 처녀를 얻어 결혼할 수도 있는데 가정을 꾸릴 생각은 없습니까?
신: 저도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결혼문제에 고민을 좀 하고는 있지만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이제야 새롭게 가족이란 것에 대해 알아가고 있고 배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가족이나 여자를 사귀거나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틀린 사회에 와서……상당히 고민 중입니다. 만일 제가 결혼해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분들 위해 또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한 두마디 충고를 해 준다면 어떤 것입니까? 실제 북한에서 생활하다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왔지만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여러 의무가 있을 것이고 미국에 와서는 여러가지를 경험했을텐데요……소위 문화적 정신적 충격과 여러가지 생활의 다름으로 어려움도 있을 텐데.
신동혁: 사실 한국에 와서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배운 건 독재정권에서 굶어죽으면서 외국에서 지원해주는 쌀 한톨로 연명했지만 오히려 쌀지원 없이도 우리에게 자유만 있었다면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쌀은 없어도 자유만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북한을 도망쳐 나와 이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도망치는 건 쉽습니다. 우리가 힘들더라도 피를 보더라도 북한 김정은 정권을 없애는 데에, 최소한의 인간이 누릴수 있는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조선 정치범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 23년 간 학대받고 굶주리며 짐승처럼 살았던 탈북자 신동혁씨로부터 개천 관리소 탈출 7년 만에 관리소 참상에 관한 영문 회고록을 미국에서 펴내게 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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