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웨스트 프로그램 유학생으로 자유아시아방송 수습기자로 활약한 정승민씨

자유아시아방송 수습기자로 활약한 정승민씨.
자유아시아방송 수습기자로 활약한 정승민씨. (RFA PHOTO/ 전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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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1년 반동안 미국에 와서 영어도 배우고 직장에서 업무 실습을 하도록 하는 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웨스트 프로그램 유학생의 한 사람으로 수도 워싱턴에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지난 6개월 간 수습기자로 활약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의 정승민씨.

한국에서는 북한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가 방송국 인턴생활 반 년만에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탈북자들의 정착문제에 남다른 열정을 갖게 됐습니다. 6월 말 방송국 실습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정승민씨를 만나 미국의 어학취업연수 경험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웨스트프로그램 유학생으로 오셨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였습니까?

정승민: 미국에 온 지 1년 3개월정도 됐습니다. 작년 3월 말쯤 도착했습니다. 뉴욕에 와서 5개월 어학 연수를 받고 워싱턴 디씨로 옮겨 인턴을 하게 됐습니다.

전: 인턴은 한국말로 수습사원 실습사원이라고 하죠. 일을 배우면서 문화도 배우고. 어학연수를 뉴욕에서 하셨다는데 학원입니까 학교입니까?

정: 퀸즈칼리지라는 대학교입니다. 그 학교에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거기서 웨스트프로그램 유학생들이 함께 모여 5개월 간 체계적으로 어학연수를 받았습니다.

전: 그곳에서 영어 배우는 게 한국에서 배울 때와 어떤 게 다릅니까?

정: 한국에서는 문법위주 독해 위주의 영어를 배우면서 읽는데 치중해 영어를 활용하는 게 부족하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인들도 많이 만나고 일상생활에서도 실제 영어를 써야 하니까 실전 경험이 많이 느는 것 같습니다.

전: 영어 배울 때 같은 학급에 한국인 말고 외국인도 많이 있었나요?

정: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한국인이 60퍼센트정도 됐습니다. 중국인 남미인 일본인 러시아인 등 국적이 다양했습니다.

전: 어학연수 끝난 뒤에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오셔서RFA자유아시아방송에서 인턴- 수습사원 일을 시작하셨는데요,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방송이지 않습니까. 한국에 계실 때는 북한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습니까?

정: 한국에서 북한문제에 대해 접하는 것은 대체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였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이었는데 대부분 안 좋은 얘기들이었습니다. 북한이 천안함 침몰시킨 사건이나 미국이 식량지원을 중단했다는 그런 안 좋은 뉴스만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취업문제 때문에 북한문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거나 주의깊게 듣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RFA 인턴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도 비록 한국에서는 북한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야 하고 또 그에 대비해 북한에 대해 알고 그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RFA방송에서는 북한문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어서 이 방송에 인턴십을 구하게 됐습니다.

전: 6개월동안 한 일이 많으실 텐데요. 북한문제에 관한 뉴스도 들여다 보고, 정보도 취합, 조사하고 실제 현장 취재도 많이 나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 네. 우선 인턴으로 와서 처음 두 달 동안은 뉴스팀 휘쳐팀 웹팀 프러덕션팀에서 조금씩 일을 배웠습니다. 뉴스팀에서는 뉴스 보도를 위해 취재하고 뉴스 리포트를 쓰고 휘쳐팀에서는 인터뷰도 하고 주간프로그램을 만듭니다. 프러덕션팀에서는 편집도 해봤습니다.

전: 라디오 방송을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일을 다 해보셨다는 거군요.

정: 네.

전: 가장 기억에 남고 본인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는 취재 일화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정: 인턴 시작 3개월쯤 되어 저 혼자 취재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탈북자 강제북송문제로 반대 시위가 많았습니다. 워싱턴을 포함해 세계 50여개국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동시에 합동 시위가 있었습니다. 중국정부에 대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지 말라는 시위였습니다. 중국대사관 앞 시위현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진심으로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해 중국정부와 북한정부에 대해 외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 중국대사관 앞 취재 현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정: 교회단체들과 북한인권을 위해 힘쓰는 인권단체들, 일반 시민들 그리고 탈북자들이 모였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은 와서 증언을 하고 또 뜨겁게 시위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전: 미국 생활 1년 반 가까이 되는데 미국사람들이 북한의 식량문제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또 미국에 오셔서 미국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을 직접 만나본 사람으로서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정: 미국인들 중에는 북한에 대해 실제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을 안다고 해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언론에 노출된 북한의 모습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또 그로 인해 미국의 식량지원이 중단됐다는 뉴스 보도 같은 것 때문에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많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인식은 북한 정권을 향한 것이지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많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고문하고 수용소에 보내고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는 것 등을 알게되니까 미국인들은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하는 것 같더군요.

전: 워싱턴 지역 한인사회의 탈북자들의 삶을 취재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마당 같은 곳도 갔다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정: 네. 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갔다 왔습니다. 탈북자 김은혜씨와 같이 미국의 화머스 마켓(Farmers’ market) 농민시장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전: 김은혜 탈북자는 여기의 학생입니까?

정: 네. 대학교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거기서 북한의 장마당과 한국의 농민시장을 비교하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학생이 신기해 하더군요. 북한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먹거리나 물건이 없는데 미국 농민시장에는 먹을 것이 많은 건 물론이고 옷과 책 등 여러가지를 팔고 하니까 많이 신기해 했습니다.

전: 농민시장에는 어떤 농산물과 물건들이 나와 있었습니까?

정: 사과 배 등의 과일도 엄청 많았고요, 꽃도 많았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정원에서 직접 재배한 꽃들을 많이 갖고 나왔습니다. 의류도 있고 꿀도 많았습니다. 직접 양봉한 꿀들이었습니다.

전: 그럼 미국인들도 자기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 즉 남새를 장마당에 갖고 나와 파는 모양이군요.

정: 그렇습니다. 그때 김은혜 학생이 놀란 것은 그 농민시장에 나온 미국인들이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내가 이걸 못 팔면 먹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는게 하니라 하나의 축제처럼 서로 어울리고 즐기면서 내가 재배한 걸 다른 사람에게 맛을 보게 하고 나도 다른 사람이 재배한 것을 나눈다는 그런 여유와 즐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장마당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 그야말로 여유가 있는 풍경이었던 것 같군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주민들이 동네에 모여 그런 식으로 농산물도 팔고 옷가지도 갖고 나와 팔고 합니까?

정: 네. 한국시장에서도 5일장, 10일장이라고 해서 합니다. 또 자기들이 쓰던 것을 갖고 나와 파는 벼룩시장이란 것도 있고요. 다양하게 시장이 섭니다.

전: 한국에서 공부하면서는 일자리 준비하고 학업에도 충실해야 하니까 북한의 인권문제나 안보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미국에 오셔서 북한문제 전문 방송국에서 일도 해보고 실제 탈북자들도 만나 보면서 정승민씨의 대북관도 변하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북한문제라면 북한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체제, 3대세습문제, 가장 심각한 식량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 그리고 2십만명이 갇혀 있는 정치범수용소의 인권문제 등일 텐데요, 정승민씨는 정치범수용소 또 남북 대치문제와 교류문제 등을 다루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됐습니까?

정: 제가 미국에와서 RFA에서 일하면서 탈북자들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힘들게 북한에서 살았고 어떻게 북한땅을 넘었는지에 대해 그분들로부터 많이 듣고 그들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펐습니다. 아무리 사상이 다른 두 국가라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나. 같은 인간이라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해야 할텐데. 외국에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어야 할텐데. 그런 자유가 없다는 탈북자 증언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전: 북한에서는 식량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합니다. 물론 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북한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정: 저는 북한정부가 너무 답답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2.29 합의를 했는데 북한이 그 합의를 어겨서 미국이 북한에 식량제공 계획을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지도자라면 주민의 굶주림을 고려해 그들에게 식량을 줄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굶주리게 하고 못살게 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로켓 발사해서 주민들만 피해를 입는 것 아닙니까? 북한정부에 대해 너무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전: 주민을 위해 식량확보문제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텐데 그런 점이 아쉽다는 말씀이네요.

정: 그렇습니다.

전: 여기서 탈북자들을 만나 보셨다는데 이 탈북자 문제, 그러니까 북한에서 굶주려 도강해 중국으로 가고 거기서도 공안 눈을 피해 제 3국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탈북자의 발생과 정착 문제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정: 한국 내 탈북자가 2만3천 명 이상 된다는데 저는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해도 사회적응에 어려워하는 점이 많습니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그런 문제점을 보완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통일되면 남북 사람들이 하나된 사회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탈북자 문제도 해결 못한다면 통일 후의 남북사람 통합은 더욱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한국정부가 탈북자들이 적응과 정착을 잘 하도록 적절한 대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 한국에 돌아가면 학업을 계속합니까?

정: 네. 한 학기 남았고 내년에 졸업 예정입니다.

전: 일자리 잡는 취업문제에 직면할텐데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정: RFA에서 인턴하면서 북한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음 학기부터 학교를 다니면서도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싶습니다. 탈북자 정착을 돕는 일이든 아니면 어린 탈북자들을 돌보는 교사를 하든 그들의 아픔을 나누면서 한국사회에 정착을 잘 하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취업도 여기RFA 인턴 경험을 살리고 싶습니다. 제 전공이 행정학과라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싶었는데요, 통일부같은 곳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북한과 남한에 대해 연구하고 통일 후의 대책이나 탈북자 정책같은 것을 많이 다뤄보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웨스트(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유학와 지난 6개월 간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수습기자로 활약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의 정승민씨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