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국제 펜에 가입한 ‘망명 북한 펜센터’의 장해성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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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 문인들이 북한의 참담한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큰 통로가 마련됐습니다. 전세계 114개국에 143개의 문인조직으로 구성돼있는 세계 문학단체인 International PEN 즉 국제펜에 탈북 작가들이 모여 만든 '망명 북한 펜센터'가 가입한 것입니다. 지난 9월 한국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 대회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국제펜의 새 식구가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씨 부자 찬양의 도구로만 쓰여졌던 작가들의 글쓰기 재능을 이제는 북한체제아래 신음하고 탄압받는 인민들의 고통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마음껏 표현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발판을 딛게 됐습니다. 탈북문인 29명으로 구성된 '망명 북한 펜센터'를 이끌 인물은 장해성 이사장입니다.
1996년 북한을 탈출하기까지 조선중앙방송의 기자와 방송작가였던 장해성 이사장을 만나 봤습니다.

전수일: 우선 이번에 국제 펜에 가입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국제 펜 총회에서 ‘망명북한센터’가 가입이 결정되자 장 이사장께서는 그 소감을 ‘감격스럽다’ ‘감개무량하다’고 하셨습니다. 펜에 가입한 게 어떤 의미에서 감격할 만한 일입니까?

장해성: 북한에 작가가 3천여명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 방송작가였는데요 방송극을 쓴 것만해도 아마 100여편은 될겁니다. 하지만 내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교양적이고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모두 북한 위정자를 찬양하는 것과 주민들이 북한 위정자를 위해 얼마나 몸 바쳐 충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걸 썼습니다. 거기에 반기를 들기도 어렵지만 만일 반기를 들면 혹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뜻과 다른 걸 썼다가는 그 자리에서 매장되든지 정치범수용소에 가든가 합니다. 최선의 경우에도 작가 대열에서 쫓겨나 산골로 추방돼 농사꾼 일이나 해야합니다. 아직도 많은 작가 친구들이 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장 간절한 소원은 굶지않기위해 밥 잘먹는 것 빼고는 언젠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남한에 온 작가들은 그걸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펜클럽 가입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도 받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이 소식을 북한에서 같이 창작생활을 하던 작가들이 알면 얼마나 부러워하겠습니까? 우리들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죠.

전: 김일성 대학을 나오시고 조선중앙방송 작가셨다는데 기자와 작가는 다른 겁니까?

장: 다르죠. 제가 김일성종합대학 나오고 처음 배치받는 데가 조선중앙방송 정치교양국 혁명 1부. 그곳에서 기자를 한 10년 했습니다. 혁명 1부는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부서이고 혁명 2부는 김정일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곳입니다. 한국에서는 구성작가도 모두 작가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철저히 드라마 시 소설을 쓰는 사람만 작가라고 하고 구성작가는 북한에서는 편성원 혹은 편집원이라고 합니다. 저는남한에 오기 10년 전에는 ‘천복이와 만길이’ ‘한 두 살 추억’ 등의 드라마를 썼습니다.

전: ‘천복이와 만길이’는 가정 드라마입니까?

장: 북한에서는 보도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즉 방송극 자체도 자체도 모두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충실성을 지향하도록 만든 겁니다.

전: 그런데 국제 펜에 가입 후 무엇이 달라집니까? 위상이 달라집니까?

장: 국제 펜에 가입한 이유의 하나는 북한의 참담한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자는 것입니다. 그걸 강의와 같은 것으로 알리는 게 아니라 우리 문학작품을 통해 알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은 포나 총과 같은 무기보다 더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참담한 인권상황을 온 세상에 알리고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어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개선에 힘을 집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입한 것입니다.

전: 현재 망명북한펜센터에 가입한 탈북작가는 몇 명입니까?

장: 탈북 작가가 사실 많지는 않아요. 북한에서 정식 창작 생활을 하던 사람, 그러니까 조선작가동맹에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작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거기선 출신성분도 좋아야 하고 좋은 대학도 나와야 하고. 또 그밖에 여기 저기 걸리는 문제도 많기 때문에 작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는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글쓰고 싶어하는 탈북자도 많고 책을 발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책을 몇 권 쓴 사람들을 포함해서 저희 망명북한펜센터를 세웠는데 지금은 20여명밖에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탈북자 수도 2만4천여명이나 되고 우리가 펜에 가입하면서 많은 탈북 청년들이 '펜에 어떻게 하면 가입할 수 있느냐? 우리도 문학에 대해 배울 수는 없겠냐?'고 문의해 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글을 써 보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와서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책을 쓰고는 싶은데 글 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겠으니 저희들에게 가르쳐 달라는 겁니다. 우리가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창작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니 그런 요청을 모른척 할 수가 없죠. 그래서 그런 분들과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인원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20여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 대체로 탈북작가들의 시나 수기 같은 것은 순수문학이라기보다는 북한체제나 삶의 역경 그리고 탈북자들의 고난에 대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앞으로 탈북자 문학의 영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 순순문학 자체가 어떤 것이냐에 대한 답은 각자 인식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저희는 무엇보다도 북한에서 온 사람들로서 남한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북한사회에서 겪은 체험과 한국까지 오게된 과정을 토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것에 대해 남한에서는 보수꼴통 편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편향 때문에서가 아니라 북한체제를 그대로 반영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걸 보수꼴통으로 간주한다면 저희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현실을 거짓으로 전달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전: 내년 국제펜 대회에도 참가하시나요?

장: 내년에 그린랜드에서 한다고 하는데 이제 막 가입을 해서 규정이 어떤 지는 잘 모르지만 저희도 참가할 생각입니다.

전: 어떻게 탈북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북한에는 가족이 있는지요?

장: 북한체제에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게 북한 보위부에 들어간 거죠. 예를 들면 6.25 전쟁을 북이 일으켰나 남이 일으켰나 하는 문제에 대해 북에서는 계속해서 남이 도발했다고 하는데 실제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남이 아니라 북이 먼저 일으켰습니다. 그걸 술자리에서 말하는 실수를 한 것이 문제 됐습니다. 또 하나는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북한에서는 선전하는데 제가 취재 과정에서 알아낸 바로는 실제는 김정일이 소련 하바로브스크에서 낳았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외국사람들은 그런 사실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겠지만 북한에서는 그걸 말하면 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로 탈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먼저 탈북했고 나와서는 아이들 모두 데려왔습니다. 처는 북한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아이가 셋인데 모두 서울로 데려왔습니다. 둘은 이미 대학을 졸업했고 나머지 하나는 대학 졸업반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9월 중순 한국 경주에서 열린 세계 문학단체인 국제펜 대회에서 최초로 망명 북한작가들의 단체가 국제펜에 가입한 데 대해 이 단체의 장해성 이사장과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