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압록강 도강 탈북자들의 참상을 다룬 영화 48M의 제작자 안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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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탈북자 안혁 씨가 한국 정착 20여년만에 북한주민들의 필사적이고도 처절한 도강 탈출을 다룬 영화 ‘48미터’를 최근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9월 처음으로 한국과 미국의 의회와 제네바의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상영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 악명높은 15호 요덕관리소에서 3년 간 수용된 뒤 탈북해 한국에 들어가 지금까지 북한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을 이끌어 온 안혁 씨는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과 북한체제의 민주화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합니다.

//48M 영화 사운드//
전수일: 48미터란 영화의 줄거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소개해 주시죠

안혁 제작자: 48미터는 북한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각분야에서 일하며 살다가 배고파서 부모가 아프고 형제가 아파 약을 구하러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48미터는 양강도 혜산시 압록강의 폭을 지칭한 것이구요. 거기서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어도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전: 이 영화를 기획 제작하게된 동기는?

안: 저 혼자 만든 게 아닙니다. 그동안 여기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또 강연을 다니면서 느끼게 된 것인데, 탈북자들의 절박함과 절실함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북에서 온 엘리트 계층 사람들 그리고 여기 탈북자 단체장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도 그랬지만 어렵게 압록강을 목숨 걸고 건너 부모형제 두고 온 탈북자들의 상황을 알려주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자금을 모아 만들게 됐습니다.

전: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근300명의 탈북자들의 증언사실을 토대로 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 탈북 체험이 각각 다를텐데 어떻게 몇가지로 걸러냈습니까?

안: 모두 개인적 사정이 있는 터에 그 모든 것을 영화에 담아 내기는 힘듭니다. 개인 개인의 절박함이 다 다릅니다. 그분들의 실제 얘기를 영화에 넣으려니 그 길이가 4시간 반 이나 됐습니다. 그래서 일곱명의 얘기로 영화화해 편집 압축해서 90분짜리로 만들었습니다. 개개인의 삶의 얘기를 줄이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전: 영화속에 탈북자들이 직접 출연했다던데?

안: 출연자들이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자세히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대략 몇 명 됩니다. 단역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안혁 제작자도 직접 출연하셨습니까?

안: 저는 출연은 안했습니다.

전: 제작에 2년이 걸렸다던데 제작비 마련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안: 제작비 구하기가 제일 힘듭니다. 영화 만드는데 누가 선뜻 제작비를 대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희의 경우 기본적으로 탈북자들이 모금을 많이 했습니다.

전: 영화제작 공부를 하셨나요?

안: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제작 관련 과정은 아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48미터 영화를 기획할 때 배우 60명 스태프 50명 해서 100명이상 넘는 한국 영화인들이 저희와 함께 하고 또 한국영화계에 가까운 지인들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하게 됐습니다.

전: 첫 시사회를 한국 국회에서 하셨죠?

안: 네, 1차 시사회였습니다.

전: 그리고 유엔제네바 인권위원회에서도 하셨고, 9월 19일 20일 워싱턴 연방의회에서도 하셨는데. 이런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안: 반응은 하나 같았습니다. 듣고 알던 탈북자 참상을 영상으로 보게되어 그들의 절실한 부분에 대해 많은 공감들을 하셨습니다. 탈북자가 도강해 중국에 많이 체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인권실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걸 영화적으로 나타낸 데 대해 감동도 하셨구요. 특히 영화를 본 뒤에 자기 지역구에서 한번 시사회를 가져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 미국 연방의원들의 지역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안: 네. 미국 연방의원들뿐 아니라 한국 의원들도 지역구에서 시사회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전: 안혁씨 본인은 어떤 강을 통해 탈북하셨나요?

안: 물론 압록강이죠. 양강도 혜산 압록강을 넘어 탈출했습니다.

전: 북한정치범수용소, 요덕수용소에 수용되셨었는데 수용기간은?

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2월 26일 나왔습니다.

전: 탈북은 언제 하셨나요?

안: 1992년도에 탈북해서 입국했습니다.

전: 그러면 정착 20년째이군요. 그동안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과 북한 민주화활동을 열심해 해오셨는데 운동 전문가로서 북한인권과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추진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안: 우리가 염원하는 것은 북한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북한민주화를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 보다는 북한에 사는 인민들이 인권을 탄압받고 있으니 그 부분을 노력해서 개선해 보자는 것입니다. 북한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건 노무현 정권때였습니다.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한국정부는 반대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북한민주화운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북한 인권을 체험한 우리들이 나서야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살다온 탈북민들과 한국인들도 북한민주화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외국 방송들도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북한민주화를 위해서는 북한사람들을 빨리 뉘우치게하고 생각을 돌리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일반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더 많이 듣게 해야 합니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중국에만 가더라도 언론 보도를 접해 어느정도 듣고 알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하지만 북한 내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주민들의 필사적이고도 처절한 도강 탈출을 다룬 영화 ‘48미터’를 최근 제작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엔인권위원회 등에서 시사회를 열어 북한인권의 참상을 알리고 있는 요덕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탈북자 안혁 씨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