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이호택 난민의 피난처 대표

0:00 / 0:00
이호택 난민의 피난처 대표. RFA PHOTO
이호택 난민의 피난처 대표. RFA PHOTO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도 난민이 5천명 가까이 됩니다.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나라에서 전쟁과 인종차별 종교적 박해등을 피해 한국에 들어가 난민으로서 보호를 받고 체류하려는 오갈데 없는 외국인들입니다. 이들이 정식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고 난민신청을 돕고 교육시키고 있는 민간 단체가 있습니다. 피난처입니다. 1990년대 초반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조선족동포 그리고 재중 탈북난민을 도우면서 피난처 활동을 시작한 기독교사회운동가 이호택 대표는 외국인 난민과 함께 탈북난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가 10월 중순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방문했습니다. 미국 내 탈북자들이 매년 함께 모여 정착에 유익한 정보를 나누고 서로 용기와 희망을 북돋기 위한 수양회에 강사로 초청됐습니다.
이호택 대표를 만나 피난처 활동 소식을 들어 봤습니다.

전수일: 수양회에서 무얼하셨고 탈북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이호택 대표: 한국에는 2만5천명의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직접 온 탈북자는 146명으로 숫자적으로는 적습니다. 한국에서는 탈북자들이 많아 서로 정보 공유도 하고 당국에서 정착금도 주고 여러 지원 혜택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탈북자들이 물질적인 것에 매몰돼 있는 것 같고 중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면서 여러 각오와 꿈을 잊고 현실적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오신 분들은 그 수는 적지만 새롭게 찾은 자유에 대해 많이 감격하시고 또 자유를 알게 해준 주변분들에 대해 감사해 합니다. 앞으로 작게는 자기 가족과 고향에 대해 또 크게는 앞으로 북한에 대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꿈과 사명감이 많은 것 같아 미국에 온 탈북자들이 굉장히 귀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 탈북자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언어였습니다. 탈북자들 모임에 갔을 때도 그들이 한결같이 어렵다는 게 언어였습니다. 미국에 온지 오래된 분이 4, 5년 정도라서 아직 낯설고 언어 소통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분 들은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알아서 개척하고 노력해 극복해 나가자는 얘기를 주로 했습니다.

전: 피난처에서 운영하시는 탈북자 학교 ‘자유터 학교’를 소개해 주시죠.

이: 저희가 1997년부터 중국에서 탈북자를 구출하면서 국내 탈북자들이 많이 들어오게 됐는데 그중에 젊은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북에서는 배고파 못살았고 중국에서는 무서워 못살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너무 남북 체제가 달라 잘 몰라서 못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됐습니다. 저희는 이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한국에 온 것은 단지 우연이나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난민 한 분 한 분이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굉장히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난민의 삶을 거치면서 한국까지 오게된 의미와 앞으로의 민족사적인 사명 같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야학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분들이 제일 어려워한 것이 외래어 영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외래어와 영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죠. 영어를 가르치는 야학을 하면서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탈북청년 학생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이라는 걸 깨우쳐 주는 교육을 했습니다. 2003년 1월 조명숙 선생님이 기틀을 놔서 자유터학교가 시작됐습니다. 지금도 학교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유터학교라서 학교 규율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출석결석을 엄격히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청년 이상의 성인이라서 각자 알아서 나와 공부합니다. 대체로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매일 꾸준히 나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수업하고 수업 전 한 시간 정도 식사하며 교제하고 주말에는 가끔 문화활동이나 공동체활동도 합니다.

전: 부인인 조명숙 선생님이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계신 여명학교는 초등 중등 고등학급까지 하는데 자유터학교의 수준은 대학생급인가요?

이: 여명학교 학생은 중 고등학교 연령대이고 자유터학교는 대학생 이상의 장년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 가르치는 게 영어 말고 다른 과목도 있습니까?

이: 네. 영어를 기본으로 하면서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대학공부에 특정 과목, 예를 들어 생물이 필요하다거나 검정고시 치는데 수학이 필요한 학생에 대해서는 한 두 사람을 위해서도 맞춤형으로 강좌를 개설합니다.

전: 이호택 대표의 본업은 난민의 대부라고 알려진 만큼 난민단체 운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피난처를 거쳐간 난민이 한 5백명 된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한국의 난민 수용 사정은 3천여명 이상이 신청해 지금까지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200여 명밖에 안된다던데요 한국 내 난민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북한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로서는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워 어떻게 보면 탈북난민들 보다 그 사정이 더 어렵지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북한난민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같은 동족이기 때문에 난민 이상으로, 저희 국민으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서 그렇지 못하고요. 아까 언급하신 수치는 업데이트 됐는데요 지금까지 4천4백명정도의 난민 신청자가 있고 그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3백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준난민, 즉 난민과 유사한 인도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분들이 160명 정도 됩니다. 또 2천명 가까운 분들은 현재 심사 중입니다. 그래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의 비율, 즉 난민인정률은 12, 13퍼센트가 됩니다. 물론 그 비율이 아직 너무 낮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여러 난민제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고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에는 국회에서 난민법이 통과돼 난민자들에 대한 보호 절차를 잘 만들었습니다. 가장 문제되었던 것이 난민신청과정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법적 보호와 지위 또 이들의 생계 주거 문제에 대한 시스템이 거의 없었었는데 그런 걸 제도화한 난민법이 잘 만들어 졌고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전: 탈북자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초기에 3천만, 4천만원 정도의 정착 지원이 있는데 난민들이 난민지위를 인정받게되면 탈북자와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받습니까?

이: 탈북자는 사회보장이란 면에서는 우리 국민보다 더 좋은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밖에서 들어와 새로 정착해야 하는 분들이고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도적으로만 보면 탈북자들은 우리 남한국민의 저소득층, 최소생계층 보다 더 좋은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외국인 난민은 우리 국민보다 덜한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난민으로 인정을 받으면 내국인처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라서 당국의 실무단위에서 그들 사정을 잘 몰라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물론 있습니다.

전: 어느나라에서 오는 난민이 가장 많습니까?

이: 최근에는 파키스탄에서 제일 많이 옵니다. 탈레반과 접경한 북서 변경주에서 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피해받은 파키스탄 지역에서 옵니다. 또 이미 한국에 노동자로 와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그 같은 국내사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금년 현재 파키스탄에서만 1천명 가까이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그 다음 스리랑카와 네팔 내에서 최근 분쟁이 있어 그나라 사람들도 난민신청이 많고 전통적으로는 버마(미얀마) 난민들이 아시아지역에서는 가장 많습니다. 방글라데시 분들도 많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나이제리아, 우간다, 코트 디부와르,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가나 등에서 많이 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약 40개 나라에서 난민이 옵니다.

전: 피난처에서 난민들에게 지원해주는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이: 이분들은 모국으로 돌아가면 정치적인 박해를 받거나 혹은 전쟁 중이라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일시 체류하면서 그 어려움을 피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난민신청입니다. 대한민국 당국은 그런 외국인들의 난민신청 사유에 근거가 있는 지를 심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들은 법적 절차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법적인 지원과 통역을 해주고 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지원입니다. 그리고 또 한국에 와서 거처할 곳이 없는 분들이라서 숙소도 제공해 드리고요.

전: 한국에 난민수용소 같은 건 없습니까?

이: 한국에서는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을 일정한 장소에 수용하거나 가둬두는 게 아니라 신청자가 자유롭게 각자 알아서 거주를 할 수있게 합니다. 그런데 거주할 공간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 민간단체가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에서 그런 거주공간을 짓고 있습니다. 원래 내년 7월 완공계획이었지만 조금 지연되어 하반기에 100명 이상 수용하는 건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전: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촛불문화제가 올 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뒤 여러 민간단체, 탈북자인권단체, 탈북자단체들이 돌아가며 촛불문화제에 참여해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강제북송 반대를 외쳐왔고 그 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난처에서도 계속해서 촛불 문화제 참여하고 북송중지를 호소해 왔고 6월에는강제북송중지를 위한 운동단체가 유럽을 방문했는데 그때 함께 참여했습니다. 기독교단체들이 중심이 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럽인들에게 북한인권실태를 어떻게 알렸습니까?

이: 북한 인권문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발벗고 나서서 널리 알려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인권문제 특히 탈북자 문제는 초창기부터 국제 이슈로 해외에 확산됐고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북한인권시민연합같은 단체들이 많은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많은 유럽의 인사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특히 탈북자 가운데 연로한 분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유럽의 각 명소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공연하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또 현지 교회를 찾아가 알렸습니다.

전: 당시 순회했던 주요 도시들은 어디였습니까?

이: 벨기에 브뤼셀, 네델란드의 암스텔담, 프랑스 파리, 독일의 프랑크 푸르트, 스위스 제네바, 인터라켄, 이탈리아의 베니스, 로마 등 여러 주요 도시를 돌았습니다.

전: 1997년 중국에 들어가 부인 조명숙 선생과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탈북자들을 직접 구출하고 위험한 행로를 밟으셨습니다. 벌써 15년 전 일인데요 탈북자 구출 활동가들의 당시 방법와 현재 활동가들의 방법에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이: 지금도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뭔가 다양하고 완전한 방법을 모색하고 개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구출과 확대, 그리고 그런 것을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이 활동가의 역할입니다. 이런 활동가들이 개척하고 경험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답습하게 됩니다. 굳이 특정 활동가들이 독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체로 활동가들이 개척한 루트를 탈북자들이 스스로 밟게되고 다른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탈북자 구출은 활동가 보다는 대부분 브로커에 의해 많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북한에서 주민들이 탈북해 나오는 일이나 중국 내에서 보호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졌고 모든 비용이 대단히 비싸졌습니다. 그래서 탈북자 구출활동도 많이 위축돼 있는 상황입니다.

전: 탈북자 구출 비용이라든가 위험도를 고려해 난민기구나 난민구출 활동가 일각에서는 난민캠프를 짓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비록 조-중 국경에 세우기 어렵다면 동남아 국경이나 몽골에 지어 보자는 운동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탈북자들을 외국인 난민처럼 수용할 수 있는 캠프를 제3국에 만드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계속 제기됐던 주제이고 주장입니다. 하지만 관건은 난민캠프를 몽골, 중국, 동남아, 태국 그 어디에 만들겠다 하더라도 각국에서 허용해 줘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난민 스스로 즉 탈북자 스스로 한국이나 미국에 가기보다는 내 고향 가까운 곳, 중국에 머물며 고향이 통일되거나 민주화되면 돌아가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합니다. 중국이 탈북난민들의 체류를 허용하지 않고 강제송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에 이분들이 중국 체류 형태가 난민촌 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 안에 머물 사람은 없습니다. 난민 수용소라는 것이 일종의 감옥 같은 곳이니 오히려 한국이나 미국에 가겠다고 하겠죠.

전: 일단은 중국정부가 지칭하는 이른바 탈북 경제이주민들을 돌려보내겠다는 정책을 바꾸기 전까지 어렵겠네요.

이: 네. 난민촌 구상은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난민 보호의 가장 기본은 박해를 피해 도피한 나라에서 그들이 강제송환되지 않을 자유와 권리를 인정해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난민협약 가입 여부를 떠나 모든 나라를 구속하는 국제법상의 일반 원칙이고 관습법입니다. 결국 우리는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중국정부에 대해 난민촌을 세우지 않더라도 중국 사회에 머무는 탈북자들이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 묵인해 주라는 요구를 계속 하는 겁니다. 그런 국제사회의 요구에 중국정부가 반응한다면 그것은 중국 자신이 조인한 난민협약 중의 일부를 지키는 것이죠.

RFA 초대석, 오늘은 한국에 국제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를 세워 외국인 난민과 탈북난민을 보호하고 돕고 있는 이호택 대표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