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탈북자 손정훈 씨. 한국내 탈북자 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전략센터의 인권조사국장을 맡고있는 손정훈 씨가 분신까지 시도하며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과 북한의 인권유린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그 비장함 뒤에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습니다. 탈북 후 중국에서 기독교 선교를 하다 강제북송된 형님을 구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에도 손정남 씨는 옥사했기 때문입니다.
연말 연시를 쉬지 않고 강제북송 탈북자들의 인권침해 증언을 수집하고 있는 손정훈 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
: 현재 북한전략센터에서도 손정훈 국장께서 직접 한국 곳곳의 지방을 찾아다니며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손정훈
: 한국 좌파정권 10년동안 탈북자들이 강제북송돼 정치범수용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당한 일부 얘기가 표면에 드러났지만 연막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두 정권에서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유엔인권 결의 조차 외면하고 기권해 왔습니다. 그 동안 인권 침해의 아픈 얘기를 갖고 있는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ICC 국제형사재판소 제소건과 관련해 인권 침해를 당한 탈북자 30명의 얘기를 모아 대한변호사협회를 통해 국가와 국제사회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추진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
: 지금까지 직접 찾아가 면담한 탈북자는 몇 사람입니까?
손정훈: 17명 정도입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탈북자들을 찾아가지만 자신들의 아픈 얘기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면담하기 위해 두 세차례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얘기가 김정일 정권하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제 2의 당신들과 같은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해 체험담을 받아 모았습니다. 저도 탈북한 사람이지만 그분들 얘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게 많습니다.
전
: 인권유린 체험을 조사 취합하신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아픈 얘기는 어떤 것입니까?
손정훈
: 남성도 비참하기 짝이 없지만, 여성들은 특히 사회의 약자입니다. 단지 자유를 찾아 한국행을 기도했다는 이유 하나로 유린 당한 겁니다. 제가 남성이라서 이분들이 창피해 입을 열지 않을 정도인데요, 예를 들어, 남자 교도관들이 대낮에 구류장안에서 여자 옷을 홀딱 벗겨 성기와 가슴을 만지면서 중국놈, 한국놈과 성관계를 몇번 가졌냐고 심문하고, 거기에 불응하면 죄를 지은 너는 어디가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고 때리고… 정말 제가 듣기도 정말 거북한 얘기였습니다. 그외에도 중산 11호 교화소에 갔다온 분 얘기에 따르면 교도소내 식 생활도 어렵지만 이불과 침구가 없어 친인척이 면회오면 침구를 가져다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친인척도 없는 이들은 여름 옷을 입은 채로 차디찬 감방안에서 추위에 떨며 새우처럼 쪼그리고 잤다고 하는 얘기를 가슴 아프게 들었습니다. 지구촌 어디에 재소자가 이불과 베개를 스스로 가져와야 하는 그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다.
전
: 이분들의 인권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이 자료를 네델런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제소에 자료로 사용될 수 있겠습니다만, 아까 이분들의 보상 얘기를 하셨는데, 피해에 대한 보상을 북한으로 부터 받는다면 모를까, 한국정부나 국제사회에서 보상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손정훈
: 저희는 한국정부와 국제사회, 그리고 양심적인 세계인들에게 이같은 북한내 인권침해 사례를 공개해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시 당하는 인권유린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그에 대해 압박을 가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물론 정부로 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보상 여부와 관계없이 선례를 만들 수 있고 또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쟁점화 하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전
: 그와 연관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8년 4월 북경 올림픽 개최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성화봉송때 손 국장께서 휘발유를 몸에 지니고 분신을 시도하려다 경찰에 제지 당한 사건인데요.
손정훈
: 2008년 올림픽을 기해 평화의 상징인 스포츠를 주최하는 중국 당국이 올림픽 전 자국 치안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하루에 3-4백명, 많으면 5백명까지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한다는 얘기를 중국내 비정부기구 활동가들로 부터 들었습니다. 과거부터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를 위해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지위를 부여하라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매달 벌여왔지만 중국정부는 유엔의 상임이사국인데도 자국 이익만 앞세워 국제법과 질서를 위반하면서 자유를 찾는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반복해왔습니다. 당시 출범한 이명박 정부도 북한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국민도 무관심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탈북자 인권에 무시하는 반인륜적인 중국 정부의 올림픽 성화가 봉성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봉성 행사를 무산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잘 았았지만 내외신 기자들의 주목을 끌어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의 심각성을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전
: 탈북자 강제북송문제는 손정훈씨 개인적으로도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친형인 손정남 씨의 구명운동으로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요, 형 정남씨는 1998년 1월 탈북해 중국에서 기독교인이 됐고 탈북자들에게 선교하다3년 뒤 2001년 4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는데요, 북송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죠?
손정훈
: 예, 98년 1월 형님이 자기 가족과 제 아들까지 업고 탈북했습니다. 제 아들은 당시 세살이었습니다. 가족은 딸 하나와 형수님이었습니다. 제 아들은 저에게 인계됐고 저는 아들과 중국에사 5년 살았습니다. 형수님은 백혈병으로 중국에서 치료도 못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형님도 혼자 딸만 데리고 살다가 한국 선교사를 만나 심양에서 기독교 신학공부를 1년 했습니다. 신앙으로 거듭난 형님은 자유없는 북한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느라 북중국경을 오가며 생활했습니다. 북한을 가제(방금) 이탈한 사람들과 탈북했다 북 가족에게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도 전하고 성경책과 찬송가 테이프도 들여 보내고 하던 중 2001년 4월 탈북 3년만에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북송됐습니다.
북송때 중국 공안이 형님에 대한 조사자료를 북한 당국에 넘겼는데, 북한 정권을 붕괴하기 위해 종교활동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경북도 도 보위부 관리소에 수감돼 3년의 고초를 치렀습니다. 일반 탈북자들은 생계를 위해 탈북했다해서 6개월 정도의 간단한 처벌로 끝났지만 형님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신앙과 복음을 전파했다고 해서 3년의 가중 처벌을 받았습니다. 수감 중 폐인이 되다시피한 형님은 당시 당.정 계통의 요직급에 있던 친인척 세분이 3대연명보증수표로 재탈북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담보를 하고 풀려났습니다. 제 큰 매형은 [평양] 수도방어사령부의 사단장이었습니다.
2004년에 출소한 형님이 자신이 체포 북송될 때 중국에 남은 어린 딸을 보고싶어 몰래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때 제가 형님을 만나로 한국에서 비자내서 중국 연변에 갔습니다. 그때가 2004년 5월이었습니다. 형님 딸은 중국인 목회자 집에서 안전하게 양육중이었습니다. 제가 형님에게 한국으로 가자고 여러번 권고했지만 형님은 기독교적 신앙과 소신을 가지고 북한에 가서 복음전파하는 게 낫다며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대한민국에선 할 일이 없고, 북한에선 풀려난 몸이니까 북한에 돌아가서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딸과 저를 만난 뒤 한 달만인 2004년 6월 기독교 선교 목적으로 제발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서 1년반-2년 정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으로 밀입국 할 때 길을 안내한 사람이 형님이 약속한 금전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며 국가보위부에 밀입국 사실을 밀고해 형님은 집 근처에서 보위부 요원에 잡혀갔습니다. 또 가택수색에서 성경책과 찬송가 테이프들도 나왔습니다. 보위부 당국에서는 탈북으로 이미 3년 곤욕을 치룬 놈이 다시 탈북해 종교활동 했다며 용서할 수 없다고 했고 민족반역자로 형을 공개총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2006년 3월에 여동생과 전화통화로 들었습니다. 평양에는 아직 여동생 2명과 누님 2명, 그리고 70대 후반의 병약한 어머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형의 구명 운동을 벌이게 됐습니다.
전
: 2006년 4월에 유엔의 비팃 문타폰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북조선에 서한을 보내 손정남씨의 처형 선고를 재검토해달라고 촉구했고, 그 해 6월에는 유럽의회가 북조선 당국에 손 씨의 생사확인과 사형집행 중지를 요청했습니다. 2007년에는 손 국장께서 미국연방의회 상 하원 의원들을 만나 형님의 구명을 호소하기도 했는데요, 그 당시 하원의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손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보냈고, 다른 연방 상원의원들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에게 손 씨 석방에 힘써달라는 요청 서한을 보냈는데요. 그럼에도 형님이 결국 처형됐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사실입니까?
손정훈
: 네. 덧붙여 영국 외무장관도 런던 주재 북한대사를 직접 찾아가 형님 석방 요청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영국의 세계기독연대의 엘리자베스 바샤 변호사가 외무장관에 서한을 보냈고, 이에 외무장관이 북한 대사를 직접 찾아 얘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유럽의회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됐구요. 그후 1년 지난 2007년에는 북한 당국이 형님을 풀어줄 것이라는 소문을 저희 친척들에게 흘렸다고합니다. 제 동생이 오빠가 풀려날 것 같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제게 전했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박을 의식해 입막음을 하기 위한 쇼를 벌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랜토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 앞으로 보낸 서한을 중간 단계에서 소각할 수 없는 게 북한 체제입니다. 김 위원장이 분명히 그 서한을 봤을 것이고 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으로선 형을 풀어 주자니 또 다시 선교 활동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계속 가둬 놓자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압력이 들어올 것이고 하는 고심을 한 것 같습니다. 왜냐면 나중에 저에게 들어온 얘기로는 북한 당국은 형님을 내부 처형, 다시 말해 수감 중 고통을 못 견딜만큼 고문해 자연사 한 것처럼 처벌했다고 합니다.
전
: 결국 옥사했다는 말이네요.
손정훈
: 그렇습니다.
전
: 손국장께선1997년 형님보다 1년 앞서 탈북하셨는데, 평양에서 권력층 친척도 있고 사는 데 지장 없었는데 왜 탈북하셨습니까?
손정훈
: 사연이 길지만 간단히 말하면 97년 고난의 행군 때 국가 기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서 식량 구입용 외화를 벌려고 상부의 지시로 전략 군수물자의 매각 교섭을 맡아 하다가 문제가 터져 북한을 떠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국가체육위원회에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부인 장성택은 제가 속한 체육위원회와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의 근로단체 부문을 관장하는 중앙당 부장이었다가 승진해 보위부와 인민보안성 등 국가안전기관을 관장하는중앙당 조직부 제 1부부장이 됐습니다. 상부에서는 장석택 부부장이 뒤에 있으니 법적인 문제가 없을 거라면서 내게 전략군수물자를 팔도록 했지만 추진과정에 문제가 되면서 상부는 발뺌을 하고 관련 간부들은 처벌받고 일부는 교도소에 가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억울하게 처벌을 받을 수 없어 탈북했습니다.
전
:부모님은 북한에 계십니까?
손정훈
: 아버님은 제가 스무살 때 숨졌고, 어머니는 평양에 생존해 계십니다. 77세이신데 건강이 안좋다고 합니다.
전
: 비록 형님은 잃었지만 형님의 딸은 구해 지금 함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정훈
: 7-8년동안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조카를 입양한 중국인 목사님이 조카의 신변이 노출되면 중국법에 저촉돼 위험하니까 외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님 구명운동차 2007년 워싱턴을 방문후 귀국해 그 중국인 목사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비정부기구 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제 전화번호를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자신이 선교활동으로 중국 공안의 의심을 받고 있어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려 하니 조카딸을 찾아가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분의 은혜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한국에 있는 미국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조카딸을 2007년 10월에 베이징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사무실에 인도했고 그후 베이징 한국 공관에 1년 6개월 체류하다가 한국에 입국해 작년에 하나원을 졸업했습니다. 올해 열 여덟살입니다. 현재 저와 제 아들과 조카딸 이렇게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내 탈북자 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전략센터의 인권조사국장으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탈북자 손정훈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