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프랑스의 민간단체인 '북한주민돕기위원회'의 피에르 리굴로 회장을 만나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프랑스 '사회사평론'의 편집장이자 역사가인 피에르 리굴로 씨는 유럽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손꼽히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까지 두 달에 한번씩 '한국서신'이라는 북한의 동향을 분석하는 자료를 펴냈고, 지금도 언론기고문과 강의를 통해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제사회, 특히 유럽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운동의 최선봉에 선 리굴로 씨는 흥미롭게도 젊었을 때는 '골통' 모택동주의자였습니다. 1960년대 프랑스의 명문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리굴로 씨는 당시 프랑스를 풍미하던 좌파운동을 접하면서 모택동주의자가 됩니다. 얼마나 열렬했는지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던 중국으로 달려가 현장을 직접 체험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리굴로 씨가 방향을 바꾼 이유는 압제에 대항해 생긴 공산주의가 더 철저한 전체주의의 억압체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게 1970년대였습니다. 스탈린 체제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조사에 몰두하기도 했고, 혁명이라는 이상을 좇아 구소련으로 갔던 프랑스인들의 비극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1997년에는 공저로 발간된 후 2년 만에 20만권 이상 발매되면서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공산주의 흑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리굴로 씨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피에르 리굴로
: (I was informed of the very special situation of the current Korean...)
(더빙)
파리에서 1997년경에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는데요, 이 사람을 통해 한반도의 특별한 상황에 대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매력을 크게 느꼈습니다. 그러다 당시 제가 공산주의 역사에 몰두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북한 문제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습니다. 남북한 현대사, 한국전쟁 발발의 원인을 연구하다보니, 공산국가인 북한에 눈길이 갔습니다.
리굴로 씨는 북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해 여러 탈북자와 인권운동가들을 만납니다. 리굴로 씨는 이들을 통해 유년시절 10년을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보낸 탈북자 강철환 씨의 사연을 듣게 됐고, 1998년 12월에는 강 씨를 프랑스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1년간 강 씨와 심층회견을 한 끝에 강 씨와 공저로 '평양의 수족관'을 2000년 프랑스어로 출판하기에 이릅니다.
피에르 리굴로
: (I hope I had helped the French people and the European people to be more sensitive to the North Korean...)
(더빙)
제가 이 책을 출간함으로서 프랑스인, 나아가 유럽인이 북한의 인권 상황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기를 바랍니다.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강철환 씨를 만났는데요, 강 씨가 경험한 수용소 생활의 참혹성을 통해 유럽사회가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어로 처음 세상에 나온 뒤, '평양의 수족관'은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 불가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독일어, 핀란드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나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양의 수족관'은 유럽과 미국,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북한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읽고 격찬한 뒤, 강 씨를 백악관으로 초청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요, 2002년에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리굴로 씨가 책만 쓴 것은 아닙니다. 북한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민간단체인 '북한주민돕기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리굴로 씨는 이 위원회 대표로 유럽 지식인들의 대북 인권 성명문을 주도했고, 유럽 10개국 지식인 31명의 '북한인을 돕기 위한 유럽위원회 결성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 최수헌 북한 외무성 부상이 국교교섭을 위해 파리에 온 것을 계기로 수차례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피에르 리굴로
: (I think the French people, the European people are aware of the real nature of North Korea...)
(더빙)
프랑스 국민, 나아가 유럽인들은 이제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은 일은 북한의 김정일을 광범위한 인권 유린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인권 관련 단체들은 이 같은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이런 마당에 프랑스가 얼마 전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 북한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리굴로 씨는 내심 못마땅하면서도 프랑스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이유로 유럽의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과 국교를 맺지 않은 태도를 쉽게 버리지는 않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피에르 리굴로
: (I know that that's a hope, a great hope of North Korean diplomats in Paris...)
(더빙)
프랑스와 북한이 국교를 수립하는 일은 파리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의 커다란 희망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서둘러 국교수립을 추진하진 않을 겁니다. 현 시점에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북한 지도부에 선물만 주는 꼴이기때문입니다. 프랑스 외교부가 평양에 대표부를 설립하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프랑스 인권 운동가들은 프랑스 정부 측에 인권 개선의 조짐이 보이고 안보 분야에서 진전이 있어야 수교를 추진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두 분야에서 어떠한 진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프랑스에서 북한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하는 강한 목소리. 이 목소리가 가까운 서울이나 베이징, 도쿄보다 평양에 더 크게 들리기를 희망하면서 리굴로 씨는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프랑스의 언론인 겸 역사학자인 피에르 리굴로 '북한주민돕기위원회' 회장을 만나봤습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