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70] 탈북 고아를 만난 후 인생이 180도 바뀐 마이크 김 씨

탈북자들을 도와준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탈출'(Escaping North Korea)'이란 책을 쓴 재미동포 2세 마이크 김 씨.
탈북자들을 도와준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탈출'(Escaping North Korea)'이란 책을 쓴 재미동포 2세 마이크 김 씨.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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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탈북자를 돕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한국계 미국인 마이크 김 씨가 워싱턴을 방문해서 전한 이야기, 보내드립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출생. 미국에서 우수한 주립대학교 가운데 하나인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을 졸업. 20대에 시카고에서 재정기획사를 설립. 고객층은 자고 나면 두터워지고, 영업 이익은 증가일로에서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생 회사의 젊은 사장, 마이크 김 씨는 소위 '잘 나가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였습니다.

(마이크 김)

I love what I was doing. Business was looking good…

(더빙)

제가 하는 일을 무척 즐겼습니다. 사업도 잘 됐고요. 2001년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제 비서에게 2주간 모든 일정을 비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머리를 식힐 겸해서 중국에 한번 놀러갔다 오려고요. 그 유명한 만리장성도 보고, 현지 사람이 만든 정통 중국 음식의 맛도 느껴보려고요.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떠난 중국 관광 여행. 중국의 남쪽과 서쪽을 두루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바로 동북부 지방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지방의 가정교회에서 우연히 탈북 고아를 만난 후, 김 씨의 인생은 180도 변하게 됩니다.

(마이크 김)

It was there someone said, “Mike, this girl you are playing with this whole time, she’s a North Korean refugee…

(더빙)

이 교회 모임에서 어느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마이크, 네가 내내 놀아준 그 여자 아이는 사실 탈북 난민이야.” 제가 뭐라고 물었는지 아십니까? “탈북 난민이 뭡니까?”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중국에 탈북자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중국 내 탈북자의 상황이 어떤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자라면서 집에서조차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으니 무리는 아니었죠.

중국에서 만난 어느 16세 소녀한테는 57세 중국인 농사꾼에게 1천 달러에 팔려와 온갖 고생을 하다 도망쳐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탈북자들이 겪는 굶주림과 성폭력 등 충격적인 실상을 난생 처음 접한 것이었습니다.

(마이크 김)

It just blew me away. This was going on…

(더빙)

한 방에 훅 갔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니요!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미국에 돌아온 뒤, 이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종종 이런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사업을 정리하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가서 탈북자를 도우면 어떨까?” 몇 달간 고민했는데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퇴 연금을 깨서 직원들 몇 개월 치 월급 주고, 대학 융자금 다 갚고, 회사 정리하고, 중국으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구입하고 나니 통장 잔고가, 1,000달러였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날이 2003년 1월이었습니다.

김 씨는 이후 4년간 연변을 포함한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와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활동하면서 100여명의 탈북자들에게 음식과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북한 태권도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위장하기도 했고, 2004년에는 북한의 나진 지역을 잠시 방문하는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이와 함께 ‘크로싱 보더스’라는 민간 인권 단체까지 만들어 중국 내 25개의 비밀 쉼터와 5개 고아 시설에 음식과 약품을 지원하는 사업도 펼쳤습니다. ‘크로싱 보더스’란 한국말로 ‘국경을 건너다’라는 뜻입니다.


(마이크 김)

6, 000 miles runs from North Korea, modern-day underground railroad runs from North Korea, through China…

(더빙)

장장 6천 마일입니다. 북한에서 시작되는 이 현대판 지하 철도는 중국을 거쳐, 베트남,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 가운데 한 국가를 지나 태국 방콕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일단 방콕에 도착하면, 허가를 받아 한국을 포함한 제 3국으로 갈 수 있거든요. 자유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겁니다.

김 씨가 언급한 ‘지하 철도’는 1800년대 중반에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부와 캐나다 등으로 탈출시키던 비공식적 조직을 뜻하는 단어로, 노예들이 빠르고 비밀리에 탈출하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지하철도를 통해 탈북자를 돕는 일은 생소했지만 보람찼습니다. 하지만, 어려움도 뒤따랐습니다.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될 뻔한 고비를 넘긴 사례는 셀 수조차 없습니다. 길도 없는 밀림의 길을 결핵에 걸린 탈북자를 업고 걷기도 하고, 국경수비 대원에게 발각되어 총부리로 맞는가 하면, 길을 안내하는 중개인에게 온갖 위협을 받았습니다. 2004년 11월에는 라오스에서 탈북자의 탈출을 돕다 경찰에 체포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마이크 김)

I remembered the moment of having the celebration, big celebration dinner..

(더빙)

방콕에 도착해서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해 자유의 품에 안기는 기나긴 여행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던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멀리 서있던 탈북 여성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탈북여성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그걸 느낄 따름이었습니다.

김 씨는 이 같은 여정을 통해 북한 주민의 처참한 실상, 즉 빈곤, 압박, 고문, 성적 학대, 종교 탄압 등을 육성으로 듣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차로 3시간 거리인 평양과 서울, 그런데 이 길을 놔두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수만리에 이르는 험한 길을 걷는 탈북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열망이었습니다.

2008년 8월에 출간한 ‘북한 탈출’은 이런 김 씨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출간 3개월 만에 초판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모은 이 책은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같은 한민족으로서 범하기 쉬운 민족적이거나 감상적인 안목에 매달리지 않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고등교육을 받은 한인 2세라는 입장에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참상을 바라보고 기록해 인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김 씨는 요즘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영화의 산실인 할리우드에서 탈북자의 인권을 소재로 해 한국과 미국의 합작 영화를 만들려 하는데, 영화 대본이 김 씨가 낸 책 ‘북한 탈출’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고파 하는 김 씨의 꿈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지구촌은 바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