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40] '저 강을 건너리라' 저자 호프 플린치바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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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호프 플린치바흐 씨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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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과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호프 플린치바흐(Hope Flinchbaugh) 씨. - PHOTO courtesy of www.seehope.com (PHOTO courtesy of www.seehope.com)

(찬송가 ‘Jesus Loves Me' 기타 연주)

호프 플린치바흐 씨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방금 들으신 ‘예수 사랑하심은’을 비롯해 수많은 기독교 찬송가를 기타로 치고 노래를 부르며 자랐습니다.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활동했던 아버지가 설교할 때 음악으로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특히 도시의 빈민가 청소년,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성, 고아들에게 도움을 펼쳤기에 플린치바흐 씨는 자연스레 이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자라났습니다.

플린치바흐 씨가 고향인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를 떠나 버지니아 주에 있는 기독교 종합대학교인 리버티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이런 동정심의 연장선입니다. 플린치바흐 씨는 바로 이곳에서 자신이 음악보다는 글쓰기를 통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더 큰 흥미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플린치바흐 씨가 유명한 기독교 가정 사역 전문기관인 ‘포커스 온더 훼밀리’가 발행하는 잡지를 비롯해 여러 청소년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취학 전 아동을 영적으로 기르기>를 포함한 단행본을 발행하는 자유기고가로 태어난 것은 졸업 직후부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린치바흐 씨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근에 위치한 모잠비크에 취재를 가게 되고,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북한‘이란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듣게 됩니다.

Hope Flinchbaugh

: Actually I was on an assignment from a magazine and I traveled to Mozambique in Africa in 2001 and I was writing a feature article...

(더빙)

제가 모잠비크의 홍수를 취재하기 위해 그 나라를 방문한 게 2001년입니다.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2001년의 홍수로 7백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특히 홍수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에게 눈길이 가서 이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모잠비크에서 긴급 구호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인 하이디 베이커 씨가 그런 저를 보고 갑자기 질문을 던졌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우려해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죠. 저는 “북한이요? 어디에 있는 나라인데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은 제게 전혀 생소한 나라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귀국한 플린치바흐 씨는 몇 달 후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합니다. “북한의 상황은 '황폐'함 그 자체”라며 길게 한숨을 내쉰 미국인 선교사의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였습니다. 취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비정부기구 디펜스 포럼의 수전 숄티 대표를 알게 되고, 90년대 후반 북한의 대량아사 사태와 참혹한 인권실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플린치바흐 씨는 몇 년간은 숄티 대표가 이끄는 미국 내 북한 인권단체들의 연합인 ‘북한자유연합’ 모임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워싱턴을 방문한 탈북자를 직접 만나고, 의회 청문회에서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플린치바흐 씨는 극심한 압제 속에 뒤틀려 버린 북한의 이야기를 써서 탈북자들의 외로운 행보를 종식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다행히 3년간 틈틈이 모은 자료가 있었기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솟아나자마자 일 년 밤낮을 꼬박이 집필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8년에 나온 책이 ‘저 강을 건너리라(I'll Cross the River)'입니다.

Hope Flinchbaugh

: The novel, "I'll Cross the River," is based on true story of what's really happening inside North Korea as well as how some members of underground church in China...

(더빙)

소설 ‘저 강을 건너리라’는 북한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에 있는 지하교회 교인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탈북자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지 등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입니다. 북한 내에서, 그리고 중국 내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북한사람에게는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식량난으로 굶주려 죽거나, 국경을 넘자마자 중국 농촌으로 팔려가 성 노예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중국 공안에 잡혀서 북한에 송환돼 강제노동소에 수감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공개처형까지 당합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선전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주인공인 탈북 여성 ‘영순’도 결국 깨닫지만 북한같이 악랄한 정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난해 한국말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한 ‘저 강을 건너리라’는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된 8월 8일보다 3개월 앞서 출판돼, 미국 내에서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워싱턴에서 열린 2008년 북한자유주간행사에서도 절찬리에 팔렸고,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중국 내 탈북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플린트바흐 씨는 북한과 관련한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북한 밖으로: 탈북 소년이 그림으로 전하는 구출 이야기(Out of North Korea: A Korean Boy Tells His Rescue Story in Picture)"입니다. 플린트바흐 씨는 책이 현재 출판 막바지 단계에 있으며, 책표지 디자인, 편집, 교정 작업을 거치고 올 겨울에 선보일 예정이라면서, 책의 주인공처럼 부모를 잃은 북한의 고아에게 사려 깊은 관심이 기울여지기를 기대했습니다.

Hope Flinchbaugh

: There is nothing that can strike our hearts like the pictures and the life story of a child who has lived...

(더빙)

1990년대 말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넌 북한 소년이 이모의 강제송환, 어머니의 정치범 수용소 이송, 재탈출, 유엔 기구 난민 신청을 통하며 겪은 이야기와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충격은 큽니다. 이 소년이 그린 그림이 상당히 포함된 만큼 어떻게 보면 그림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잔혹한 장면이 많은 있어 무리가 있습니다. 어린 소년의 눈으로 본 북한의 처참한 상황을 놓고 ‘이게 진짜일까?’라고 물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살 떨리는 고통의 나날을 보낸 이 소년과 친척은 지금은 한국에서 꿈에 그리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고통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북한에 많이 있습니다.

플린치바흐 씨는 요즘에는 책을 쓰는 일 말고도 북한 고아를 돕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를 통해 버마 출신의 난민 고아 두 명을 위탁보호하기 시작한 겁니다. ‘위탁보호’란 대리가정을 통해 아동에게 가정과 부모-자녀관계를 제공해 주고 입양으로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북한 고아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올 수 있게 미국의 정부 방침이 세워질 경우를 대비한 준비작업인 셈입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미국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호프 플린치바흐 씨를 찾아가 봤습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