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부서지는 현장 보도)
서베를린을 동베를린과 그 밖의 동독에서 분리하는 장벽인 '베를린 장벽.' 1989년 11월 9일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냉전의 상징이자 독일의 분단을 상징해온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붕괴했다는 역사적 소식을 생생히 전했습니다. 이 장벽이 붕괴한 지 일 년도 채 안 돼, 동서독 통일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시각, 독일의 통일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 된 한반도의 남쪽, 서울의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아시아 경제를 연구하던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독일과 관련한 잇따른 보도를 접하며 내놓는 한국인 동료들의 일관된 태도를 다소 의아하게 느꼈습니다.
Marcus Noland
: At that time, I would go to lunch every day with my colleagues at KDI and I thought they were greatly optimistic about South Korea's ability to handle an Eastern German-style collapse...
(더빙)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에 관한 소식이 나올 그맘때, 저는 거의 날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있는 동료 연구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서독이 동독의 체제 붕괴에 따라 동독을 흡수 통일했듯이, 남한도 북한을 같은 방식으로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상당히 낙관적인 관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놀랜드 박사의 그런 의아심은 그때까지만 해도 주로 아프리카의 가나와 남아공화국과 관련한 지역을 연구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일본 경제를 연구했던 놀랜드 박사로 하여금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습니다. 얼마 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여러 학술재단을 접촉했습니다. 경제학자로서 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보이는 재단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엔 아직 때가 일렀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자문역을 맡으면서 북한과 관련한 연구 과제는 놀랜드 박사의 뇌리에서 잠시 잊히는 듯 했습니다.
Marcus Noland
: About the time I was getting to leave (the government)...
(더빙) 정부에서 막 떠나려던 때였습니다. 1994년 7월께였는데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수백만 아사자 발생 등으로 북한이 몇 주, 혹은 몇 달 안에 붕괴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몇 년 전에 제가 접촉했던 재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북한과 관련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겠냐고요.
이 연구 결과, 놀랜드 박사는 1996년 "한국경제: 남북한 비교"라는 제목의 보고서와 이듬해인 1997년 "북한의 경제개혁 모델링," 그리고 2000년 "정밀 고찰: 북한 경제의 붕괴와 부활"과 "남북통일 모델링," "종말 피하기: 남북한의 미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명실공히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북한 경제전문가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놀랜드 박사는 경제학자로서 '모델링,' 쉽게 말해 경제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포함해 사회과학적인 계량분석만 갖고는 북한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크게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Marcus Noland
: As I studied North Korea, I came to believe that one could not understand the economy without really understanding the political system and through that the human rights problems...
(더빙) 제가 북한을 연구하면 할수록, 북한의 정치체제와 이에 따른 인권문제를 이해하지 않고는 북한의 경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북한의 경제문제와 인권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놀랜드 박사는 북한 주민들이 당면한 수많은 인권 문제 가운데 특히 식량권에 주목했습니다. 북한에는 자유세계에서 누리는 양으로나 질로나 적절하고 충분한 식량, 신체적·정신적으로나 개인적·집단적으로나 존엄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식량, 이런 식량에 대해 정기적이고 영구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인 식량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포착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놀랜드 박사는 일련의 면담과 심층 조사를 통해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 당시,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가 지원한 원조 식량의 25-30%를 북한 주민들에게 지원하지 않고 군대나 특권층에게 전용됐음을 알아냈습니다. 놀랜드 박사는 2005년에 출판한 "기아와 인권: 북한 기아의 정치학"에서 특히 당시 한국 정부의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을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한국의 식량 지원은 북한 내의 지원 조건에 대한 구체적 평가, 취약 지원계층에 대한 설정 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원 식량 분배에 대한 아주 형식적인 감독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과 식량부족으로 인한 북한 경제의 파국을 알게 된 놀랜드 박사의 눈길은 자연스레 탈북자들로 옮겨집니다. 놀랜드 박사는 2006년 발표한 "북한 난민 위기: 인권과 국제 사회의 반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의 수가 적게는 2만 명에서 많게는 40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이들이 갖고 있는 최대의 두려움이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질 것에 대한 우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놀랜드 박사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가 당장 북한이 붕괴하는 게 아니라 다만 현재 북한 정권이 취하는 길 이외에도 북한이 안정적이고 잘 사는 다른 길이 있음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합니다.
Marcus Noland
: I think what's important to emphasize is not that human rights...
(더빙)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인권 논의를 한다고 해서 이게 북한을 때리는 일종의 무기로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북한 정부 역시 국제사회가 가장 기본적인 핵심 가치와 표준으로 여기는 인권 관련 국제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이걸 지켜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은 현재와 같이 호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교류하면서 국제사회에 통합돼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기 바라는 것입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선임연구원을 찾아가 봤습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