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저명한 유럽 인권단체 중의 하나인 노르웨이의 라프토 인권재단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김대중: 국왕 폐하, 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 위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 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 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12월10일 저녁,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이날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햇볕정책의 추진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노벨평화상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상입니다. 당시 주요 언론이 노벨상에 보도 역량을 집중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간과한 노르웨이의 또 다른 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는 지적합니다. 같은 해 9월 28일 김 대통령이 수상한 2000년 라프토 인권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라프토 인권상은 노르웨이의 라프토 인권재단이 주관하는 상으로, 특히 이 상의 수상자가 이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는 사례가 과거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면, 1990년 라프토 인권상을 받은 버마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3년 라프토 인권상을 받은 동티모르 주민들에 이어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인 주제 라모스오르타 씨와 카를로스 벨로 주교가 1996년 노벨상을 공동수상했습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본부를 둔 라프토 인권재단이 김 대통령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경위를 묻자, 한마디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였다는 뜻밖의 대답이 나옵니다. 라프토 인권재단의 테레세 젭슨 사무총장입니다.
테레세 젭슨: 저희 단체는 1998년 북한 인권 상황이 끔찍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북한에서 인권 개선에 기여한 인물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북한에는 그런 인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도대체 인권상황이 얼마나 나쁘기에 인권운동가 하나 없단 말입니까? 그 이후 한국을 방문해 여러 탈북자를 만나면서 북한 실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그러면서 김 대통령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활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김 대통령의 방식이 매우 건설적으로 보였습니다.
젭슨 사무총장은 ‘당시에는’이라는 구절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해답은 젭슨 사무총장이 2005년 한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 엔케이’와 한 회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젭슨 사무총장은 “김 대통령의 방식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던 겁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라프토 인권재단은 북한 내 인권운동가나 한국의 지도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노력에 직접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결정의 첫 번째 열매가 2006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회의입니다.
테레세 젭슨: 인권단체뿐 아니라 여러 나라 정부의 인권 담당 관리들과, 정치, 경제, 과학, 예술, 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습니다. 200여 명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접근을 논의한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기존의 북한인권 상황을 폭로하거나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북한인권의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고나 할까요.
이 회의에는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한국정부 인사들이 처음으로 참가해,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또 정치, 경제적 접근 외에 스포츠, 예술, 문학을 통해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시도했습니다. 탈북자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의 아리랑 연주,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조너선 반브룩 씨의 북한을 주제로 한 작품 등이 회의 동안에 선보인 것은 좋은 예입니다.
이 국제회의를 통해 좋은 생각을 얻게 된 라프토 인권재단은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하는 기록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겁니다. 수소문 끝에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기록영화 거장인 안드레 피딕 감독을 찾아냅니다. 피딕 감독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던 1988년 평양을 방문하고, 이듬해 ‘행렬’이라는 기록영화를 내놓아 국제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한 인물입니다.
테레세 젭슨: 북한 인권과 관련한 기록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더니, 피딕 감독이 서울에서 탈북자들이 관련 음악극을 만들게 하고, 자신은 음악극 준비과정과 음악극 공연장면을 찍겠다고 역 제의했습니다. 북한 강제수용소 탈주자들의 증언을 담은 기록영화 ‘요덕 스토리’는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2009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35분 길이의 이 영화는 지금까지 수십 개 국제영화제에 출품돼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노르웨이의 인권운동가 소롤프 라프토 박사의 유지를 기려 창립된 라프토 인권재단. “새장 속의 새는 자유를 노래하고, 자유를 얻는 새는 비상한다”라는 신념으로 구소련과 동유럽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평생을 바친 라프토 박사의 꿈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라프토 인권재단이 올해 '인권 안보'라는 새로운 주제로 북한인권 국제회의를 개최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렇게 한발자국씩 밟다 보면 북한 인권을 개선할 새로운 길이 열리고, 어느새 북한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기에 라프토 인권재단은 지금도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