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데이비드 알톤 영국 상원 의원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데이비드 알톤 영국 상원 의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보통 정치가들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겸손함과 진솔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린 시절 영국 리버풀에서 자라면서, 가게마다 "흑인이나 아일랜드인은 출입금지"라는 광고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자라서일까? 소속정당인 자유민주당이 낙태 합법화를 당의 정책으로 채택하자, 자신이 가진 가톨릭 신앙의 양심을 거스를 수 없다면서 18년간 지녀왔던 의원직을 버리고 당을 떠날 만큼 원칙주의자여서였을까?
그간 북한 인권의 실상을 영국 전역에 알리는데 기여한 노력 가운데 자신 있는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니, 머뭇거리다 불쑥 고대 그리스의 전설을 풀어놓습니다. 옛날, 한 소년이 살았는데, 이 소년이 날마다 태양이 하늘에 뜨도록 열심히 피리를 불었다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전설 속의 소년이 피리를 불지 않았어도 어차피 태양은 떴지만, 그 공적을 인정받았듯이, 자신 역시 딱히 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좋게 평가해준다면서 살며시 웃습니다. 그런 그도 자유아시아방송이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으니, 하는 수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섭니다.
David Alton: I have been able to initiate debates in Parliament... (더빙) 굳이 꼽으라고 하면, 제가 영국 의회에서 비참한 북한의 인권 현실을 주제로 논의하는 일을 처음 시작한 점입니다. 기회만 되면 북한의 인권 상황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알톤 의원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은 2000년대 초 웨스트민스터 의회 건물에 찾아온 탈북 남성을 면담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출판한 ‘열정과 고통: 고난받는 교회’라는 책자를 통해 북한 기독교인의 끔찍한 실상을 알렸고, 2004년에는 초당적 모임인 영국-북한의회그룹을 만들어 5년간을 위원장으로 뛰었습니다. 2008년에는 북한 보고회를 개최해 탈북자들의 인권 활동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알톤 의원을 북한 인권과 관련해 강경파라고 쉽게 판단하면 큰 오산입니다. 알톤 의원은 북한 인권에는 분노하지만, 동시에 소위 ‘건설적 대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입니다. 알톤 의원이 2003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최태복 의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인권 문제를 논의하고, 2008년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섭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북한 학생을 영국으로 데려가 영어를 배우게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정권의 통치방식에 분명히 반대하지만, 그래도 건설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 ‘무엇인가’는 알톤 의원이 몇 년 전 판문점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써놓은 글에 잘 반영돼 있습니다. 그 뜻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David Alton: When I visited Panmunjom and wrote in the visitor's book that “it's better to build a bridge than to build a wall”... (더빙) 판문점 방명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장벽을 세우는 것보다 다리를 놓는 게 훨씬 좋습니다. 라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다리를 놓는 일보다는 장벽을 세우는 게 훨씬 쉽습니다. 장벽을 세우는 데 특수한 재능이나 대단한 공학적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놓는 데는 더 많은 창조력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다리를 놓을 때는 사람들이 다리 위를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그게 다리의 운명입니다. 지금이라도 정치인, 공공기관, 인권활동가들이 장벽 반대쪽에 서서 소리 지르기보다는 다리는 놓는다는 시각으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2007년 런던에서 성황리에 열린 북한 예술작품 전시회를 밀어주고, 2008년에 추진됐다 중단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영국 공연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가 하면, 영국 주재 북한 자성남 대사를 초청해 사상 처음으로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도록 주선했습니다. 또 북한 관리를 만나거나 평양을 방문할 때면 탈북자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태도를 보이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북한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알톤 의원은 이런 건설적 대화와 다리 놓는 노력을 통해 그래도 자그마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다는 전제하의 평가입니다.
David Alton: We've seen some little progress on, for instance, religious freedom... (더빙) 지난 몇 년간 종교적 자유 부문에서는 아주 자그마한 진전을 보았습니다. 북한에 첫 러시아 정교회 교회당과 기독교 신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또 지난해 성탄절에 북한에 들어갔다가 억류됐던 미국인 로버트 박 씨를 석방해달라고 제가 북한 당국에 탄원했는데요, 북한 당국이 박 씨를 풀어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머나먼 북한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불의에 무관심한 채 얼마든지 자신의 정치적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알톤 상원 의원. 그럼에도 열정을 가지고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를 듣고 보고서를 내고, 북한 관리들과 만나 인권을 개선하라고 설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적 신앙심 때문입니다.
David Alton: Two things are inseparable to me. I am a Democrat. I passionately believe in democracy... (더빙) 두 가지는 제게 있어서 분리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저는 민주당원입니다.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신봉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자유와 권리가 보장돼야 합니다. 이런 신념은 어디서 나옵니까? 다름 아닌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1990년대에 20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강제 노동수용소에는 3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갇혀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북한 내 상황을 염려하는 일은 기독교인으로 당연합니다.
알톤 의원은 북한 수용소에서 태어난 탈북자를 만날 약속이 있다며 서두릅니다. 신앙의 양심과 인권을 억압하는 체제 안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의 현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불의한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알톤 의원. 그의 노력이 열매 맺을 고지가 바로 저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