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 다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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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잘 살던 사람은 어딜 가도 사는 데 문제가 없는 모양입니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평양에서 무역회사 지도원으로 있으면서 고려호텔에서 가족외식으로 하루 1천 달러를 쓰고, 살던 집도 150평 아파트였다고 하는데요. 그의 남한 생활은 어떤지 탈북자 김명철(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평양에 살면서 달러를 쓰고 살았던 김 씨는 남한에 가서도 그냥 열심히 살고 있다며 적응하는 데 별다른 비결은 없다 말합니다.

김명철: 처음 시작한 것이 식당일인데 하나원에서 나와 5일 쉬고 식당일을 했어요. 식당에서 고기 써는 일부터 시작해서 3개월 후에 주방장이 돼서 그때는 월급을 배로 받게 됐죠. 그때는 돈을 담배 사는 것 빼고는 거의 쓰지 않고 모아 집을 옮기고 학원 다니고 면허증 따고 그렇게 살다가 1년간 하고 회사로 옮겨서 회사생활을 했죠.

기자: 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언제죠?

김명철: 여기 와서 성균관 대학 야간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어요. 내가 잠이 많지 않아요. 회사일은 아침 9시에 시작해 5시에 퇴근 하니까 시간도 많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어요.

잠자는 시간 빼고는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잠시도 그냥 있질 못합니다. 김 씨는 39호실 돈을 가지고 중국에 나갔다가 문제가 생기면서 탈북 합니다. 북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탈북을 결심하고는 가족부터 불렀습니다.

김명철: 올 때 5개 나라를 거쳤어요. 돈이 다 떨어져서 집사람 손목시계, 반지 다 팔았어요. 북한에서는 몇 만 달러짜리였는데 금값 받고 다 팔았어요. 여기 와서 첫 월급 타서 사준 것이 목걸이, 반지 그런 것 사줬어요. 태국에 가서 대사관 찾아갔던 거죠.

자신은 맘의 준비가 됐지만 가족 설득이 문제였는데요. 일단 결심이 서니 미래에 대한 괜한 걱정보다는 눈앞에 놓인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김명철: 여기 오는 것을 몰랐어요. 내가 하도 외국으로 돌아다니니까 거짓말 하고 데려왔죠. 일단 미얀마까지 가니까 어디 가나하고 물어봐서 한국 간다고 하니까 엄청 울었어요. 나한테 딱 물어보는 것이 거기 가면 북한에서처럼 살 수 있는가? 이거였어요. 내가 알기론 북한하곤 대비가 안 될 정도로 발전이 이뤄진 나라니까 한 번 가보자. 오는 동안 많이 울었어요. 와서도 적응을 못할 줄 알았어요. 북한에선 가사 도우미가 있어서 밥도 안 해본 사람이에요. 일체 북한 돈도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여기 와서 학원 졸업하고 자격증도 열 개 넘어요. 한국 분들보다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회사 가서 나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까 마음도 놓이고.

북한에서 먹고 사는 것 걱정 안 하고 살던 무역회사 지도원이 남한에 가서 느낀 소감은 어떤 것일까?

김명철: 처음 방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방이잖아요. 솔직히 우리 집(평양) 창고보다 못하더라고요. 어쨌든 잠은 자야하니까 쓸고 닦고 자고 한 3일째부터 교회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 만나서 사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여기 한국에 같이 나온 친구들 집에 오면 회사 관뒀다고 해서 물어보면 스트레스 쌓여서 관뒀다는 거죠. 나한테 북한 사람이라 더 잔소리 하는 것 같고 일한 만큼 돈을 안주는 것 같고 이런 생각이 있고 그리고 또 생활환경이 정말 못 먹고 못살다가 형편이 나아지니까 저축이란 것을 모르고 살아요. 나한테 돈 빌려 주라고 하면 친구 잃기 싫으니 돈 얘기 하지 말라고 하죠.

평양에서 우유목욕도 해보고 호텔에서 가족과 외식을 해도 돈 걱정 않고 살았지만 항상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런 불안이 현실이 돼서 탈북하게 됐고 남한에 갔는데 이젠 자유롭게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남한에 가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하는데요.

김명철: 거기(평양)서 잘 살았다 하는 것도 그냥 공짜로 생긴 것이 아니고 정보를 얻으려니까 두 발로 뛰고 내가 벌은 돈의 30%는 무조건 보위기관 보안기관, 당 기관에 상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썼어요. 그런데서 매일매일 정보를 주니까 원산항 남포항 물자 들어오는 것 다 아니까 확인하고 시장으로 뛰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들 잘 때 한 번 더 일어나서 현지에 갔다 오고 그런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여기서도 그런 심정으로 남들 잘 때 알바를 몇 시간 더 하면 그만한 수입은 더 나오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기자: 혹시나 주위 사람들이 김 선생님이 평양 살았고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정부에서 뭔가 지원을 해준 것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명철: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정부에서 뭘 해주냐는 거죠. 저는 차도 집도 내 돈으로 샀어요. 회사에서 부장급이었는데 열심히 벌고 집사람도 한국 사람들 다 제치고 과장급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거죠. 나하고 집사람은 그렇게 벌지만 밤에는 또 야간 알바도 새벽 2시까지 하고 있어요.

남한에 사는 탈북자수가 2015년 12월 현재 3만 명에 육박합니다. 최근에는 새로 입국하는 탈북자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꾸준히 일정 수가 남한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전부 다르겠지만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마음자세에 있어 무역회사 지도원이었던 김 씨는 동료 탈북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김명철: 갑자기 생활환경이 달라지다 보니까 놀고 ...이런 소릴 들어보면 그냥 앞날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본인들 앞에선 그런 말 못하죠. 그냥 농담 식으로 하루 커피 한잔 마시는 돈이라도 모아라 그럼 일 년에 한 번 여행갈 돈이 생긴다. 난 세탁할 때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없는 돈으로 생각하고 돼지저금통에 넣어요. 그리고 휴가철에 그거 털어서 놀러가는 거예요.

김명철 씨가 말하는 남한정착에 대한 마음 자세는 단순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남들 커피 마실 때 뭐라도 하나 지어 나르는 사람은 돈을 좀 더 벌 수 있다' 입니다. 이런 마음이 오늘의 김 씨를 웃을 수 있게 만들었난봅니다.

김명철: 본인들 생각과 노력, 열정이 아닐까요? 살아가는 방식이 북한이나 여기나 비슷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통제하고 갈취하고 그런 문제지 사람 사는 세상은 한국이나 북한이나 다 비슷한 거 같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무역일꾼 김명철(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