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곡의 연주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을 전한는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듣는 이의 감동의 정도가 틀려지는데요. 오늘은 아코디언 연주자 최순경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최순경: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그런 걱정을 하겠지만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면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요. 집에와서 동영상 보다가 또 자고…
최 씨는 이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집안이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면서 지난 2007년 탈북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의 25살 되던 2011년 남한에 도착하는데요. 탈북해 중국생활을 경험하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남한을 알았기 때문에 정작 그가 남한에 갔을 때는 별 커다란 놀라움은 없었답니다. 오히려 태어나 자란 북한에서의 모습이 간접적으로 연상됐습니다.
최순경: 그냥 환경은 북한하고 똑같았어요. 저희가 평양 옆에 살아서 다른 것은 몰랐는데 여기는 자본주의니까 벌어야 사는 세상이잖아요. 제가 북한에서 대학입학 통지서까지 받고 못 갔거든요. 집안 형편이 안좋아서요. 오자마자 배우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더라고요. 대학을 간다는 생각까지는 못했고 그냥 배우고 싶다. 그래서 컴퓨터를 먼저 배웠어요. 그런데 일단 돈을 벌어야 하니까 1년동안 생산직에 가서 일도 하고요.
북한에서부터 어렸을 때 음악을 했던 최 씨는 우연한 기회에 아코디언을 다시 하게 됩니다.
최순경: 종로 3가 그쪽에 가면 음악학원이 많은데 아코디언 선생님을 알게됐어요. 그분이 제가 아코디언 하는 것을 보고 잘한다 이러면서 여기 와서 강사하지 않을래? 이런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코디언 학원에 가서 3개월 정도 배우러 오시는 분들 가르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내가 할일이 이것이 아니다 대학을 가자 했어요. 아무래도 여기서는 학력도 있어야 하잖아요. 대학을 가면서 아코디언 연주를 본격적으로 하게됐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한에 가서도 2년은 아코디언 연주를 안했다는 최 씨. 북한에서는 음악 신동이란 말을 동네사람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최순경: 제가 5살때부터 했는데 절대음감이 있어요. 텔레비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는 연주를 했나봐요. 우리집에는 음악하는 사람이 없어서 엄마가 옆집에 바이올린 하는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잘한다고 했데요 그래서 집에서 아코디언을 시킨거예요.
노래만 들으면 음을 알아맞춥니다. 악보가 보지 않아도 듣기만 하면 연주가 가능하다는 말이죠. 돈을 벌어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한생활을 통해 돈 못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자면 학벌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닳고 대학에 진학합니다.
최순경: 명지대학교 공연예술학과가 하나는 남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공연예술학과고 하나는 북한사람들이 모여서 따로 공부하는 학과예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북한사람이예요. 교수님만 남한사람이고요. 저희가 뮤지컬 학과예요. 배워주는 것이 이론도 배워주고 성악도 배우고 부전공으로 피아노도 있고요. 배우는 것은 같아요. 남한 아이들과 똑 같은 교재로 공부하는데 저희는 공연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편의를 봐주는 거죠. 공연하고 공연 확인증만 가져가면 인정을 해줘요. 학교 다니는 것으로요.
(배경음악: 최순경의 아코디언 연주)
이제 탈북 연주인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애써 공연할 곳을 찾지 않아도 섭외가 들어오는 단계에 있답니다.
최순경: 예술단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개인적으로 부르는 분도 있고 아니면 협연연주를 해달라고 연락도 오고, 유튜부에서 찾아서 연락을 해오는 분도 있어요. 제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어느 지휘자분이 네이버에 제 이름을 검색해서 물어물어 연락을 해오셨더라고요.
남한의 사회정착교육 시설인 하나원을 나와 서울에 정착한지도 5년. 바쁘게 살아온 시간을 생각해 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만큼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됐습니다.
최순경: 좋다는 것이 그냥 먹고 살수 있다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잘은 못살았어도 중산층에 있다가 좀 못사는 기간이 있었는데 탈북이 먹고 살기 위해 탈북한거지 자유를 찾아 탈북한 것은 절대 아니예요. 자유를 몰랐어요. 한국에 오는 순간까지 한국이 좋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냥 여기와서 먹고 살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점에서 남북한의 틀린 생활을 비교할 수 있지만 한가지만 고르라면 먹는 음식문화입니다.
최순경: 북한에 치킨이 없어요. 치킨이 제일 맛있어요 기름에 튀겨가지고 버무리는 양념치킨. 저희 엄마가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한국에 치킨집좀 망했으면 좋겠데요.
기자: 그 이유는 뭡니까?
최순경: 제가 살찐다고요. 살을 빼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 좋아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튀긴 양념통닭을 먹어줘야 힘이 나는 순경 씨. 자꾸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해도 맛있는 것, 자신이 좋은 하는 닭튀김을 먹는 행복은 지키고 싶답니다. 무거운 악기를 가지고 무대에 서려면 체력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북한에서 연주할 때와 틀린 점이 있을까요?
최순경: 감정도 달라요. 여기 사람들이 반응이 좋아서 좋아요. 북한에서는 박수만 치는 데 여기선 잘하면 잘한다고 소리지르고 재청하고 그러잖아요. 그렇때 엄청 좋고 북한에서는 아코디언이 선동 수단으로 쓰이는데 여기선 옛날 향수를 느끼는 악기라 슬프게 해야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빠른 음악을 해서 그 슬픔의 감정이 안나오는 거예요. 연주법이 다르거든요.
기자: 개인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최순경: 지금부터는 바빠요. 3월부터는 공연이 많아요. 그래서 올해는 공인중계사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등록해서 단장님한테 공연을 안하겠다고 했어요.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불러주는 곳만 혼자 연습을 하면 되니까 그런 것만 하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순경 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순경: 저는 아코디언 교수 되는 것이 꿈이예요. 여기는 아코디언이 활성화 되지 않고 전공하는 대학 학과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최초로 한 번 만들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아코디언 연주자 최순경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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