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으면 어디나 천국

탈북자들이 만든 도시락 공장 '행복나눔식당'에서 탈북자 등 직원들이 도시락에 반찬을 담고 있다.
탈북자들이 만든 도시락 공장 '행복나눔식당'에서 탈북자 등 직원들이 도시락에 반찬을 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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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하자면 돈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직업도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요소는 되겠지만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늘은 식당일을 하면서 자신이 사는 곳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탈북여성 박영희(가명)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박영희: 먹을 것이 없어서 사실 중국에 넘어갔어요. 2001년 11월 29일에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굶어죽는데 강을 건너니 중국 땅에선 개들도 하얀 쌀밥을 먹고 있습니다. 나진선봉 출신의 박영희 씨는 탈북해서 중국생활을 하다가 2004년 남한에 갑니다.

박영희:(남한에 도착했을 때)그때 제가 많이 놀랐어요. 우리는 북한에서는 평양도 못가보고 비행장도 처음이었는데 하늘에서 보이는 풍경이나 차를 타고 갈 때 본 창밖의 모습이 한국이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북한에는 민둥산이 많은데 여긴 산에 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어요. 또 사람들 말하는 것이 예의범절이 느껴졌어요.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것이 급해서 도덕보다 주먹이 앞선다고 했는데 여기 한국에 와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노인이나 임산부를 보고 자신의 자리를 그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관공서엘 가면 공무원들은 어서 오십시오,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며 대화를 시작하는데 상대가 누구건 간에 차별 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연스레 북한의 생활과 비교가 됐다는 겁니다.

40대 초반에 남한생활을 시작하면서 익숙한 것보다는 어설플 것이 그리고 아는 것보다는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란 점이 초기정착에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겁니다.

박영희: 어려움이란 것이 북한 사람 말투가 세다 보니까 남한 사람과 달라서 알아보니까 신경이 쓰이죠.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잘 적응하는 데 남과 북이 갈라져있다 보니까 크게 어렵다기 보다 뭐랄까요? 남북이 갈라져있다 보니까 명절 때 가족이 보고 싶어서 외로움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북한과 남한생활의 차이를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집단생활과 개인생활입니다. 북에서는 생활총화요 또 무슨 회의가 많아 집단으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한은 불러도 안가면 그만이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이 자신의 자유의사에 달렸단 말이죠. 이런 생활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역시 남북한은 차이가 큽니다.

박영희: 지금은 조금 괜찮은데 처음에는 저도 대화에서 오해를 하고 했어요. 우리는 직설적인데 남한 사람들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람 앞에선 좋은 얘기를 하는데 뒤에서 딴 소리를 하더라고요. 저는 다른 것이 없어요. 천국이 따로 없다 내 마음이 기쁘면 천국이고 슬프면 지옥이다고 해요. 교회가도 내 마음이 즐거워야지 나한테 가자고 강요하지 말라고 해요. 북한에서 센 조직생활을 하면서 얽매여 살았는데 자본주의 자유민주국가에서 누군가 나한테 강요를 하는가? 그건 아니다고 내가 말하죠.

남한에는 맞벌이 부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여성도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즉 사회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 이들을 부를 때 맞벌이 부부라고 합니다. 그만큼 남한에서는 모두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한다고도 볼 수 있는 건데요. 탈북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지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살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박 씨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박영희: 북한에서 결혼하면 대부분 직장을 안 다녀요. 시집 가지전에는 일하다가 결혼하면 일을 안 하는데 저는 옷 만드는데 취미가 있어서 재봉틀을 좀 했어요. 옷 수선하고 했죠. 남한에서도 처음 일한 것이 미싱회사를 다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수술을 받고 쉬다가 전자제품 회사에 다니고 그렇게 적응했는데 여기 와서 느낀 것이 자기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어요.

큰 수술을 받고 건강을 추스르다가 다시 취직을 하고 힘들면 좀 쉬다가 또 일하면 됩니다. 박 씨는 원하기만 하면 일할 곳은 많다는 겁니다. 물론 편하고 급료가 많은 일자리를 원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항상 감사하며 살자"는 말을 합니다.

박영희: 남한에서는 자기만 잘하면 사는 것은 괜찮아요. 단지 우리는 가족이 북한에 있어 외롭다 뿐이지 남한에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우리는 정부에서 집도 주고 했지만 진짜 여기서 살아보니까 북한에서는 웬만한 일반노동자 집에는 텔레비전, 냉장도 있는 집이 없는데 여기는 일반 노동자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북한에 비하면 책임비서 수준이지요.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북한은 딱 갇혀서 눈귀를 막아 놨기에 보지 못하는데 저희는 세상 밖에서 다 느낀 거죠.

박영희: 신유 노래를 좋아해요. 일소일소 일로일로

(가수 신유의 노래)

요즘은 박씨는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북한식 표현으로 하면 접대원입니다.

박영희: 식당일이란 것이 손님이 많을 때는 힘들고 적으면 한가하고요.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고 힘들긴 해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쉬는 날에 몰아서 일보고 빨래하고 그래요. 그래도 북한에서 살 때보다는 나아요.

북한 청취자 여러분이 들을 때는 하루 10시간씩 한 달에 두 번 휴식하면서 뭐가 좋은 생활인가 하겠지만 박 씨는 여행도 다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전혀 불만이 없다고 하네요.

박영희: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 북한에서부터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지금도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빨리 남북이 통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박영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